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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미 물씬… 스펙터클 발레 보러 오세요”

‘발레’라 하면 새하얀 튀튀에 핑크빛 토슈즈를 신은 가녀린 발레리나가 먼저 떠오른다. 많은 고전작품이 발레리나 중심으로 짜여졌고, 그녀들을 받쳐주고 들어주고 돌려주는 게 발레리노의 소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발레가 대중화되고 레퍼토리도 다양해지면서 발레리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얼마 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이 한국?남자무용수 최초로 발레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하자?발레리노의 매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무대에 대한 팬들의 갈증도 더욱 커지고 있다.

‘스파르타쿠스’ (2012)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새 주역 이재우·박종석

그런 갈증을 한 방에 날려줄 무대가 찾아온다. 국립발레단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스파르타쿠스’(8월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33년 동안 이끈 ‘살아있는 신화’ 유리 그리가로비치(89)가 로마시대 영웅담에 발레리노 대군단을 투입해 역동적이고 웅장한 스펙터클 안무의 진수를 보여주는 무대다. 클래시컬한 전막 발레인 만큼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빠지지 않지만, 영웅담답게 두 남자의 대결 구도가 관전 포인트다. 자유를 갈망하는 카리스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와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인 로마장군 크라수스가 각자 개성적인 춤으로 실력을?겨룬다. 혈기왕성한 25살,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든 동갑내기 발레리노 이재우와 박종석이 그 주인공들이다.



 

박종석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 선화예중 3학년 때 미국의 워싱턴 키로프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워싱턴 발레단에서 2년, 펜실베니아 발레단에서 3년간 활동하다 2014년 귀국, 유니버설 발레단을 거쳐 올해 초 국립발레단에 코르드발레로 입단했다. 이재우 195㎝로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 한예종 재학 중이었던 2009년 연수단원으로 국립발레단 생활을 시작했다. 2013년 ‘라 바야데르’ 초연 때 러시아 안무가 유리그리가로비치의 눈에 띄어 라자 역에 발탁됐고, 2014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정의롭고 순정적인 검투사와 잔인하고 향락적인 로마장군.?작품 속 캐릭터처럼 두 남자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인터뷰 콘셉트로 잡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선화예중을 함께 다녔다는 두 친구는 촬영시 “서로 째려보라”는 주문에 “마주보니?설렌다”는 너스레로 답했다. 잠시 정색했다가도 금세 입꼬리가 올라갔다. 빡빡한 연습 스케줄 때문에 점심도 걸렀다며 빛의 속도로 식사를 해치우는 모습엔 무대에서 멋지게 각을 잡던 무용수들은 간데없고 장난기 많은 중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워낙?남성 무용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무대일 뿐 아니라, 러시아 스태프진이 2012년 공연 당시와 동일한 환경을 요구하는?바람에 캐스팅이 바뀔 뻔한 사연도 있다. 두 사람은 강수진 단장의 적극적인 지지로 재신임(?)을 받은 만큼 책임감도 무거울 터. 하지만 부담감은 느낄 수 없었다. 2012년 공연에서 크라수스를 맡았다가 이번에 스파르타쿠스에 도전하는 이재우도, 크라수스 역할뿐 아니라 작품 자체를 처음 본다는 박종석도 “힘든 만큼 매력적인 작업”이라 입을 모았다.



두 역할이 비중이 비슷한데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가요.재우: 이번에 둘 다 하고 싶어서 혼자 갈등이 많았어요. 크라수스도 재밌는 캐릭터거든요. 유리 할아버지는 악역을 더 매력적으로 그리는 면이 있어요. 막상 스파르타쿠스가 되고 보니 다행이다 싶어요. 사실 크라수스가 굉장히 힘든 역할이거든요. 음악 카운트에 맞춰 딱딱 떨어지는 동작이 정말 많죠.



종석: 크라수스 역할은 스파르타쿠스보다 힘들어서 오히려 매력적이에요. 내면 연기가 많은?것도 강점이죠.계속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내적인 싸움을 하거든요. 스파르타쿠스는 좀 더?성숙한 역할인 것 같고요.



재우: 스파르타쿠스를 소화하기에 제가 아직 어린 걸 느껴요. 중후한 캐릭터에 영웅심도 있어야 되거든요.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연구를 엄청 해야 하죠. 그 덕에 새로운 남자로 태어나는 느낌도 있어요. 다른 작품에서는 남자들이 좀 가벼운 느낌이고, 이렇게 진지한 역할은 달리 없거든요. 남성미가 물씬?넘쳐나도록 몰입하다 보니 실제로도 새로운 감성과 감정을 다지게 되는 것?같아요.



안무도 독특하던데.재우: 유리 할아버지는 쉴 타이밍을 전혀 안주는 게 특징이에요. 박자 하나하나에 동작이 다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감정 표현까지 해야 하죠. 스파르타쿠스도 전체적으로 독백 신이 많은데, 내면을 보여주어야 하는 게 관건이에요.



종석: 크라수스야말로 못 쉬어요. 퇴장이 거의 없거든요. 무대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머물러야 되죠. 내면 연기 끝날 때쯤 돼서 봉을 주면 좋다고 솔로를?하고, 그걸 뺏기면 뺏겼다고 또 뭘 해야 하고…한번 시작하면 더 이상 못할 때까지 버텨야 나가게 해 주네요.



다른 작품에 비해 남성 무용수에게 요구하는 게 많겠죠.재우: 힘들어도 성취감이 크고 공연 중에 느끼는 희열도 커요. 크라수스가 특히 더 그래요. 이성과 악을 왔다갔다하는 연기를 하는데, 연기는 무대에서 자기 맘대로 해도 누가 뭐라고 제지할 수도 없으니까요. 확 질러버리고 나면 쾌감이 장난 아니죠.(웃음)



구순의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직접 지도‘스파르타쿠스’는 하차투리안의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1968년 탄생한 작품이다. 안무 난이도가 워낙 높은 탓에 아시아에서는 공연되지 않다가?2001년 최초로 국립발레단이 소개했다. 2007년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 합동 공연을 거쳐 2012년 공연 때 비로소 독자적인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4년 만에 올려지는 이번 공연은 강수진 단장 부임 이후?업그레이드된 기량을 자랑하는 국립발레단이 최고의 라인업으로?무장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구순 노장인 유리 그리가로비치도 직접 내한해 지도할 만큼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유리 할아버지는 그 나이에도 엄청 예민하세요. 2013년 ‘라바야데르’?때도 오셨는데, 지팡이 짚고 다니시다가도 리허설에서 틀리니까 소리 지르며?무대로 뛰어 올라오시는데, 진짜 무서웠어요. 러시아어 자체가 느낌이 세잖아요.(웃음)”(재우)



스파르타쿠스와 크라수스의 대립 못잖게 여주인공인 프리기아와 예기나의 매력 대결도 볼거리다. 스파르타쿠스에게 헌신적인 청초한 매력의 프리기아에 비해 크라수스의 애첩 예기나는 교활하고 섹시한 팜므파탈로, 각자의 캐릭터에 걸맞는 개성넘치는 춤 대결이 팽팽한 긴장을 더한다. 이재우는?그간 고정 파트너였던 이은원이 워싱턴발레단으로 떠나 최고의 발레리나?김지영을 파트너로 맡게 됐고, 박종석과 커플을 이룰 예기나는 김리회로 낙점됐다.



“사람들이 단짝 은원이가 떠나 섭섭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말괄량이 길들이기’ 막공 때 은원이한테 편지를 썼는데, 새출발하는 거?박수쳐 주고 어차피 돌아올 텐데 좋게 만나자고 했어요. 5학년 때부터 친구였는데, 항상 은원이랑 했으니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는 건 제게도 새로운 시작이거든요. 그게 지영누나여서 무겁긴 하죠.”(재우)



각자 파트너 자랑을 해볼까요.재우: 국립발레단 김지영이라고 하면 그냥 끝나는 거죠.(웃음) 프리기아는 사랑하는 남자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마음을 파드되 두 번과 솔로?두세 번 안에서 다 보여줘야 해요. 유명한 3막 파드되 아다지오 전에 프리기아가 솔로를 추는데, 저를 향한 사랑이 느껴져서 눈물나게 감동적이었어요.(일동 박장대소)



종석: 리회 누나는 일단 예쁘고요, 예기나도 크라수스를 몹시 사랑하죠. 크라수스가 쫓겨나니까 직접 몸을 팔아 스파르타군을 교란시킬 정도로 크라수스를 사랑하는 여자예요.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 군들을 처단한 뒤에 예기나에게 뽀뽀하는 신도 좀 찡하구요.



각자의 관전포인트를 꼽는다면.종석: 3막 시작 부분이죠. 완전히 어두운 상태에서 핀 조명 두 개만 켜지고 예기나와 둘이 감정표현을 하는데, 복수하러 가기 직전 굴욕과 분노·슬픔을 같이 표현하는 게 매력적이에요. 예기나는 무너진 크라수스를 일으켜 세워줘야 하고요.



재우: 저는 세 번의 독백 신이 있거든요. 노예가 된 절망, 영웅이 돼서 프리기아를 되찾은 기쁨, 믿었던 군인들이 배신했을 때의 절규인데, 리프트 같은 건 관객들이 어차피 보게 되지만 독백 신은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봐야 하는 장면들이니까요. 무용수 입장에선 그런 부분이 더 중요하죠.



중후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선화예중에 함께 입학한 이들은 3학년 때 종석이 미국 유학을 떠나고, 재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으로 가면서 헤어진 이후 올해 국립발레단에서?선후배로 해후했다. 두 사람은 ‘파격발탁’의 아이콘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재우는 2014년 ‘백조의 호수’ 커튼콜 때 이례적으로 강수진 단장이 무대에 올라 수석무용수 승격을 발표했고,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올해 국립발레단으로?넘어온 종석도 코르드발레(군무진) 신분으로 입단 4개월 만에 신작 ‘세레나데’ 주역으로 발탁돼 화제가 됐다.



“종석이는 단원들도 당연히 될 꺼라 생각했어요. 가진 게 좋으면 관객에게 보여줘야 되니까요. 저도 크라수스 할 때 코르드발레였는데, 서열이 어떻건 잘하면 무대에 올려서 성장시키는 게 발레단 특성이거든요. 어떻게 변하고 성장해갈지 기대하면서 지켜보는 거죠.”(재우)



“그 당시에 작품이나 역할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다만 유니버설을 거쳐 왔다는 미묘한 시선이 있으니까,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죠.”(종석)



죽마고우가 좀 도와줬나요.재우: 안 도와주죠. 어떤 세계인데요. 혼자 살아남아야 되요.



종석: 그냥 있어 주는 것만으로 행복했어요.



재우: 재밌는 게 중학교 동기 4명이 지금 국립발레단에 다 들어와 있어요. 그?때 형들이랑 엄청 사고치고 다녔는데.(웃음) 공부는 안해도 발레는 열심히 했어요. 일요일마다 나와서 연습하고 삼겹살 구워먹고 PC방에 몰려가서…. 더?얘기하면 관객들이 공연 안 보러 오실 것 같네요.



종석: 그때 같이 놀던 멤버들이 지금 다 주역급이 됐어요. 유니버설의 이동탁·강민우 형, 국립의 김윤식 형 등이죠.



재우: 예원 다니던 김기완 형까지 택시 타고 선화에 자주 놀러왔어요. 선화 급식이 더 맛있다나요.



종석: 돈을 내고 먹었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어릴 때부터 서로 남다른 점을 알아봤나요.종석: 재우는 지금 남달리 키가 큰데, 그때는 저보다 작았어요. 그때도 노력은?많이 했지만 미국에 갔다 오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됐고요. 이렇게 크면 발레하기 힘들거든요. 뼈가 늘어나는데 근육이 못 따라가서 대부분 부상 당하고 그만두는데, 정말 많이 노력하는 거 같아요.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열심히 하는 것 같네요.



재우: 어릴 때는 춤을 춘다는 개념보다는 발레를 하면서 놀았죠. 음악 틀어놓고 우리끼리 동영상 흉내 내면서 재밌게 놀았는데, 요즘 같이 춤추면서 느낀?건 종석이 눈빛이 살아있다는 거예요. 무용수가 가장 중요한 게 감정표현인데, 눈빛으로 먼저 시작해 호소력 짙게 연기를 하는 게 놀라웠어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김기민은 같은 발레리노가 보기에도 특별한가요.종석: 체공시간은 정말 타고난 것 같아요.



재우: 실험대에 올려놓고 연구해 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뛰는지 모르겠어요. 한예종 동기였는데 진짜 연습벌레긴 하죠. 외국인들은 유전적으로?타고난 게 있거든요. 지금 트레이너로 와 있는 볼쇼이의 전설 이렉 무하메도프도 50살 넘은 사람이 직접 뛰는 걸 보면 역시 유전자가 다르다 싶은데, 기민인 오직 연습인 거죠.



요즘 발레리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 피부로 느끼나요.재우: 저희 어릴 때만 해도 흰 타이즈 입은 발레리노를 좀 우습게 봤잖아요. 요즘은 ‘발레돌’이란 단어도 나오더라고요. 그런 단어가 생길 정도로 대중화됐구나 싶어요. ‘스파르타쿠스’가 전석 매진된 것만 봐도 그렇고요.



종석: 관객들의 관심은 모르겠어요. 아직 우리 관객이 발레에 익숙해진지 얼마?안 된 건데, 한국도 좋은 작품을 많이 올리거든요. 우리 발레단들이 외국?유명 무용단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좋은 공연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박귀섭(Baki)·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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