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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② 미당문학상 예심위원들이 릴레이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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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거기 실린 글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예심 대상에 오를 작품을 추천하기 위해 꽤 많은 문학잡지를 훑었다. 거기에는 시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잡지를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지면에서도 간절하게 쓰인 목소리들이 있었다. 사실 ‘시’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이제 드물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시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각자의 무엇이 있다. 그러나 내가 접한 수많은 지면은 그럼에도 여전히 힘을 다해 시를 쓰는 사람이, 그렇게 쓰인 시를 아껴 읽는 사람이 남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말이 위안으로 오는 날들이다.

예심에 오른 대부분의 작품들은 각자의 절실함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으니, 최고의 시는 아닐 수 있지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던 시들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시’ 자체에 대해 질문하던 시들이 인상 깊었다. 이준규의 시는 쓰는 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시론과 상념과 일기를 오가는데, 그것이 신기하게도 시에 이른다. 그 신기함의 정체에 대해, 나아가 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이준규의 시는 생각할 것들을 준다. 이성미의 ‘돌고래라니’는 세월호에 대해 시가 무엇일 수 있으며 무엇을 쓸 수 있는가를 직설적으로 묻는다. 마침내 이 시가 “이 시를 찢어야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끝맺을 때, 후련하고도 무거운 이상한 심정이 우리를 찾아온다. 지금 언급한 작품뿐이 아니다. 많은 예심 대상 작품들에게서 나는 시에 관한 저마다의 질문을 들었다. 거대한 비극 이후로서의 지금, 여전히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지금, 또 시의 영역이 협소해진 지금이어서일까. 많은 시들이 시에 관한 질문과 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듯 보였다.

이제니의 시에 눈길이 가던 이야기도 하고 싶다. 잃은 것이 있는 자가 더 많은 것을 버렸기에 가능한 무엇, 더욱 단단한 형태로 휘몰아치는 무엇이 거기 있었다.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건조한 진술들 사이에서 이제니 특유의 감성이 만져질 때, 오래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본심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응원하고 싶은 시들도 있다. 황인찬의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이 주던 쓸쓸함을 기억한다. 이 시는 하나의 끝나가는 관계를 미세한 시선으로 실감시키는데, 그러는 동안 시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드러난다. 백은선의 ‘불가사의, 여름, 기도’는 끝까지 절망해버린 마음과 거기에 다가온 희미한 희망 사이에 자리한다. 여러 번을 읽었고, 읽을 때마다 말로 옮기기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

끝으로 신용목과 강성은의 시를 소개한다. 신용목의 최근 시에서 압도적인 것은 ‘남겨진 자’에게 찾아 드는 슬픔, 좌절감, 책임감 같은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느새 그러한 감정을 이어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슬픔은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오는 걸까. 신용목의 시는 어떤 슬픔은 손쉬운 말로 대신할 수 없음을 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직접 발화하지 않고 겹겹의 이미지로 단단히 감싼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용목의 시에서 슬픔이라는 감정뿐 아니라 그것을 시에 담기 위해 존재했을 긴 침묵의 시간까지와 만난다. 무엇보다 신용목의 시에는 슬픔이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또 슬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닐 때 생겨나는 힘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이가 남겨져 있다. 이런 슬픔은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우리에게로 조금씩 스며드는 것이다.

강성은의 시를 생각하면 삶의 자리를 끝없는 잠의 세계로 옮겨두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의 시는 대부분이 잠에 들어 있거나 꿈을 꾸는 중이다. 간혹 잠에서 깨어나기도 하지만 그가 깨어난 자리가 다시 꿈인 것만 같은 조금 이상한 세계 속에 그 시들은 자리한다. 그곳에 대해서는 거기 있는 자조차 알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렴풋하게 그곳의 시간이 여기와는 다르게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곳에서 시간은 없는 것과 같거나 정지된 것이어서, 어떤 계절도 결코 끝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 끝나지 않는 계절 속에서 오히려 선명해지는 것들이다. 깨어나 현실을 사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고 실감되지 않던 것들, 가령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피 흘리는 순간, 누군가의 울음 같은 것들이 그곳에는 차올라 있다. 그곳에서는 아직 끝난 것이 없다. 그렇기에 강성은의 시가 별것 없는 일상의 순간을 담담히 읊을 때, 그 평온함 속에서 우리는 가려져 있던 진실이나 우리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게 잃은 것들과 마주친다. 그 마주침이 섬뜩하면서도 아름답다.

믿는 것이 없는 사람보다 믿는 것이 있는 사람이 두려울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믿는 것을 결코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는 두렵다. 예심 과정을 거치면서, 그래서 우리가 시를 읽게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만난 것은 무언가를 확신하고 믿는 마음이기보다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절망의 근처에서 일단 진심으로 헤매어보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헤매다 보면 생겨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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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2012년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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