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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문학상] ② 황순원문학상 예심위원들의 릴레이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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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고양이가 단련되기까지
-김금희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문학동네’ 2015년 겨울호)
이 소설에서 고양이는 사라졌거나, 아니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무엇이다. 주인공 모 과장은 자신의 직장 업무와는 무관하게 누군가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되찾는 ‘고양이 탐정’ 일을 한다. 모 과장이 고양이 탐정 일을 하는 이유는 여러 차례 삶을 포기하고자 했었던 그가 고작 고양이의 작은 간섭에 의해 여태껏 살아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그 이후로 모 과장에게 있어 “고양이에 집중하는 것은 삶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양이 탐정’이라는 역할은 삶에 있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모 과장에게 있어서 가장 역설적인 ‘남겨진 삶’의 형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여분의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그처럼 가까스로 안-죽은 인물이 그의 주변에 편재한 ‘잔존’의 자리를 새롭게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조심스레 나아간다. 시작은 어느 때처럼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모 과장을 곤경에 빠트린 의뢰인 순태의 고양이는 소설 어디에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에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순태의 고양이는 이미 사라졌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역설적인 의미의 위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고도 죽었다고 말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 고양이의 ‘잔존’이야말로 실상 모 과장의 삶의 형태이며, 그가 처한 현실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안-죽은 형태의 잔존이 언제고 타인의 삶에까지 간섭한다는 역설이야말로 지금-여기의 삶을 단련하는 연약한 진실이다.

실제로 모 과장은 직장 내에서는 최장 근속을 자랑하지만 정작 구조조정되는 주변 동료들에 대하여 어떤 관심도 기울여 본 적 없었다. 모 과장이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비로소 동료들의 ‘사라짐’에 대하여 신경 쓰게 되는 것은 그의 ‘남겨진 삶’이 비로소 타인의 ‘잔존’의 자리에 간섭하게 될 준비 과정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해고자들이 굴뚝에 매달려다 만 현수막에 보이지 않는 글자를 끝내 읽어내지 못했음에 답답함을 느낀 모 과장은 끝내 그것을 읽어내기 위하여 굴뚝을 오른다. 완전히 읽히지 않은 글자의 ‘잔존’이 “다른 건 중요하지 않고 그냥 그것을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충동으로 그를 이끈 탓이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어떤 것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쇳물처럼 끓어” 오를 때, 비로소 우리 안의 고양이는 단련되는 것이다.

남겨진 시간을 살아가기
-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

‘먼 곳’이라는 표현은 흔히 장소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의미를 함께 지닌다. 이미 우리가 지나온 곳,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 따라서 ‘먼 곳에서 온 노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복할 수 없는 시간성의 노래는 어떤 방식으로 귓가에 남겨질까? 이야기는 주인공 소은이 대학교 선배였던 미진이 머물렀으나 이제는 죽고 없는 도시 페테르부르크를 다시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은은 페테르부르크에서 미진과 가장 가까운 사이었던 율랴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과거를 복기하지만, 오히려 두 사람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장 강력한 순간은 미진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이미 죽었으며 극복할 수 없는 상실의 방식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잊어감’에 대한 것이며, 따라서 추억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후회와 상실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이 된다.

따라서 소은이 미진과의 과거를 되새기는 과정은 흔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그 과정은 우리의 현재를 의미 있게 하는 방식으로 조화로운 과거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종결되지 않은 과거가 남겨져 있으며 그것이 현재와 화해하지 못한 적대적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날 선 자각에 있다. 마찬가지로 소은이 미진을 그리워한 만큼이나 미진의 그림자가 소은의 삶에 드리워졌으며, 그것은 두 사람이 그저 ‘함께’하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의미한다. 두 사람이 타협할 수 없었던 대학교 시절 노래패의 허울뿐인 ‘연대’가 아니라 차라리 아무리 예민한 방식으로라도 서로를 구분하는 적대가 그들을 먼 곳에서나마 함께 하게 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배는 멀리에 있으면서도 내게 너무 가까웠다”는 표현은 어떤 모순도 없는 표현이다. 이 소설은 ‘뒤늦음’과 후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것은 그저 과거가 아니라 언제고 ‘현재화’된다.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으로 사는 것으로 불가능성만큼이나 결벽증적인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내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언제고 종결되지 못한 타인의 ‘남겨진 시간’을 우리가 살아간다는 자각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불화를 통해 그러한 중층의 시간을 나란히 사는 방법이다.

언급한 두 편의 소설은 여러 가지 미덕들을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존재’나 ‘부재’라는 이항대립이 아니라 중간지대인 ‘잔존’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자들을 비춰주는 작품들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상실에 대한 주체의 두 가지 대처방식으로 ‘애도’와 ‘우울증’을 구별하면서, 애도가 죽은 자를 떠나 보내기 위한 산 자의 방편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 ‘애도’는 단순히 망자를 떠나 보내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자들과의 견디기 힘든 공존의 방식에 방점이 찍힌다. ‘우울증적 애도’라고 부를 법한 이러한 남겨진 삶의 감각은 언제나 현재에 해결되지 못한 과거를 동시적으로 살아가는 시대착오와 시차(時差)를 통해서만 경험된다.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고 말하는 미약한 진실이야말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윤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 ‘남겨진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러한 시간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낯선 미래로 초대한다. 소은과 율랴가 함께 ‘첫 번째 여행’을 떠나는 결말은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남겨진 시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것은 다시 그칠 줄 모르는 노래처럼, 먼 곳의 메아리처럼 다시 어딘가의 남겨진 자들에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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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성
문학평론가. 광주광역시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과 대학원.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재 서강대·서울예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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