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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배불뚝이 수영선수, 꼴찌한 난민팀도 올림픽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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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이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몇몇 종목이 예상보다 부진해 한국 대표팀이 세웠던 ‘10-10’(금메달 10개와 10위권 이내 기록) 목표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금메달 지상주의 거부한 2030
성적보다 흘린 땀에 박수·환호
“금메달 꼭 따라” 응원은 9%뿐
“할 수 있다” 되뇌며 끝까지 최선
펜싱 금 딴 박상영 역전 스토리
리우 올림픽 가장 감동적 장면 꼽혀

속상한가요? 아쉽다고요? 우리가 ‘태극 전사’라고 일컫는 이들은 비록 국가대표의 무게를 짊어졌지만, 청춘입니다. 또래라서 그럴까요. 2030들이 선수들에게 전합니다. “금메달요? 따면 좋지만, 경기 자체를 즐기세요.” 권호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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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 속 왼쪽부터 휠체어를 탄 채 양궁 경기장에 등장한 자흐라 네마티, ‘할 수 있다’는 다짐으로 역전승을 일궈낸 박상영, 난민팀 소속 포폴레 미셍가(왼쪽)와 욜란데 부카사 마비카.

“경기에 진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TV를 틀면 중계진이 되려 한숨 쉬고 화내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오히려 불쾌해요. 흘린 땀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리우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8강전을 지켜보던 김진환(29)씨는 TV 해설을 들으며 울분을 토했다.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인 한국의 이용대·유연성 조가 패배하자 “정말 충격적인 결과다” “집중력이 부족했다”며 한숨을 내쉬는 해설 내용에 화가 나서다. 김씨는 “금메달에 집착하는 해설 때문에 기분이 상할 때가 많다. 금메달 지상주의를 벗어나 올림픽을 스포츠 그 자체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쯤 정착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소 각종 운동을 즐기는 대학생 이미은(26)씨는 리우 올림픽이 개최되기만을 기다렸다. 금메달이 유력한 선수들의 명단을 추려 과거 영상까지 찾아볼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지난 7일 사격 남자 10m 공기권총 결선 경기 이후 자신의 금메달 집착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고 한다. 5위를 기록한 진종오(37) 선수가 고개를 떨구며 “죄송합니다”던 모습 때문이다. 이씨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걸 알면서도 어느샌가 금메달이 아니면 의미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메달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가 선수들에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 강령은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강령은 현실과 겉돈다. 올림픽은 금메달을 향해 달리는 무한 경쟁이고, 참가국은 국력 과시의 장으로 여기며 순위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런 ‘금메달 지상주의’에 반감을 갖는 2030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같은 또래인 선수들에게 “경기를 즐기라”고 주문하고,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를 응원한다. 청춘리포트팀이 20~30대 성인남녀 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의 47%는 “국가대표들이 경기 자체를 즐기길 기대한다”고 답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는 응답이 38%로 뒤를 이었다. “금메달을 따서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는 모습을 기대한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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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번 리우 올림픽에선 성적에 관계없이 화제가 된 선수가 유난히 많다. 에티오피아 수영 국가대표 로벨 키로스 하브테(24)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10일 열린 남자 자유형 100m 예선에서 1분4초95의 성적으로 전체 59명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경기를 마쳤을 땐 관중석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최선을 다한 꼴찌’에 대한 응원의 박수였다. 해외 인터넷 중계를 통해 하브테의 경기를 지켜봤다는 김민중(23)씨는 “배불뚝이 아저씨 같은 몸매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를 마친 뒤 뿌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반했다. 저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올림픽 정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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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결성된 난민팀은 ‘메달 없이도 가장 행복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남수단 출신 육상선수와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 난민팀은 16일 현재 단 하나의 메달도 못 땄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승자다. 어릴 때부터 난민캠프에서 지내다 유도선수가 된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욜란데 마비카(28)도 그렇다. 첫 경기에서 이스라엘의 린다 볼더에게 패배했지만 경기를 마친 뒤 환하게 웃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진 뒤부터 유도는 내 마음을 강하게 다잡아주는 도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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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 뽑은 감동의 순간=지난 10일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이긴 박상영(20)은 스타가 됐다. 단순히 금메달을 따서? 아니다. 경기 중 ‘할 수 있다’고 혼잣말을 되뇌던 모습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200명의 청춘남녀 중 42명이 리우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박상영은 헝가리의 임레 게저에게 10-14로 뒤지던 상황에서 혼잣말로 자기를 응원했다. 최면을 걸 듯 ‘할 수 있다’고 되뇐 박상영은 이후 5점을 내리 따내며 한국 펜싱 역사상 최초의 에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그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잡고 싶어서 ‘할 수 있다’고 중얼거렸다”고 말했다. TV로 박상영의 경기를 지켜본 김지영(29)씨는 “땀범벅인 채로 의지를 불태우는 박상영 선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뻔했다. ‘할 수 있다’는 혼잣말이 온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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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나온 몸매로 눈길을 끈 에티오피아 수영 선수 로벨 키로스 하브테. [로이터=뉴스1]

이란의 양궁 국가대표 자흐라 네마티(31)가 휠체어에 탄 채 활시위를 당기던 모습도 2030의 마음을 흔들었다. 28명이 이 장면을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지난 9일 양궁 여자 개인 64강전이 열린 마라카탕 삼보드로무 경기장에 네마티가 휠체어를 탄 채 등장하자 모든 관중이 기립해 박수를 쏟아냈다.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불굴의 의지로 올림픽 무대까지 오른 ‘스포츠맨십’에 대한 존경의 박수였다. 경기에 패배한 직후 ‘휠체어 궁사’ 네마티는 관중의 환호성 속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감동적인 순간으로는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친카이(30·중국) 선수의 프러포즈 장면이 꼽혔다. 지난 14일 친카이는 다이빙 여자 3m 스프링보드에서 은메달을 딴 동료 허쯔(26·중국)에게 청혼가를 부르며 반지를 꺼냈다. 친카이의 노래가 끝나자 허쯔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올림픽 프러포즈’를 꼽은 정효은(32)씨는 “인생 최고의 순간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하는 모습을 보며 나까지 울컥했다. 순위에 치중한 경쟁보다는 이런 에피소드들이 많아야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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