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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올림픽 ‘국뽕’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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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문화부 차장

14일 올림픽 대표팀이 온두라스에 0-1으로 지자 이영표 해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선취점을 넣었다면 온두라스도 ‘침대 축구’를 하지 못했을 거다. 우리한테 책임이 있다.” 픽픽 쓰러지며 시간을 질질 끈 상대편에게 잔뜩 뿔이 났는데, 시원하게 욕은 못해줄 망정 ‘저렇게 얘기해도 되나’ 싶었다.

10년 전인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음에도 스위스의 두 번째 골이 인정되자 온 국민은 들끓었다. 모 해설가는 “이건 사기”라며 목청을 높였다. 유독 신문선 해설가만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골이 맞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고는 결국 퇴출당하고 말았다.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분출구였다. 그래서 이영표의 입바른 소리가 이번에도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까 싶었던 게다. 하지만 인터넷엔 “진 건 아쉽지만 ‘국뽕’(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로 국가주의를 비꼬는 말) 해설은 사양” “이영표는 팩트 폭격기”라며 이 위원을 옹호하는 여론이 훨씬 높았다.

스포츠 애국주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도 세태가 달라졌다. 16년 만에 올림픽 개막 첫날 ‘노 금메달’에 그쳤지만 신화통신은 “중국 선수단은 차분함을 보였다. 이는 금메달보다 값진 소식”이라고 보도했다. 때마침 스무 살 수영선수 푸위안후이(傳園慧)의 등장은 변화의 상징이었다. 그는 8일 여자 배영 100m 준결승에서 3위로 통과하고는 “결승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미 홍황지력(洪荒之力·태고의 힘)까지 다 써서 (메달은) 불가능하다. 오늘 성적에 만족한다”고 말해버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와 같은 손발 오그라드는 소감은 이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수명을 다한 모양이다.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도 올림픽만 열리면 모든 국내 이슈는 덮어지곤 했다. 오직 금메달 따는 것만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인 양 싶었다. 물론 지금도 열기가 뜨겁긴 하다. 하지만 치열한 메달 레이스가 사드(THAAD) 논란을 사그라지게 하진 못하며, 전기요금 누진제는 외려 더 시끄러워졌다. 지상파 3사의 올림픽 시청률도 영 시원치 않다. 특수는커녕 적자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 심지어 중계 대신 내보낸 드라마의 시청률이 더 높다고 한다. 전용배(스포츠경영학) 단국대 교수는 “이젠 올림픽에서 자유로워질 때 아닌가. 리우가 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도 올림픽이 열리면 우리는 태극 전사를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때론 붉은 옷을 입고 광장에 나갈 것이며, ‘할 수 있어!’라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뭉클해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승부에만, 금메달 숫자에만, 순위에만 목을 매지도 않을 듯싶다. ‘10-10’에 도달했다고 우리네 일상이 달라지지 않음을, 스포츠 강국이 됐다고 나의 저질 체력이 나아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뭣이 중헌디’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우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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