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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동화 속 그림같은 샤토 1500개 … “등급 따라 과실·허브향”

전 세계 와인의 성지 프랑스 메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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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라피트 로칠드’ 양조장 뒤에는 포도나무가 심어진 언덕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무덥지만 습도 없는 날씨 ‘신의 축복’
보통 4~5가지 포도 품종 섞어 만들어
100년 넘은 빈티지 수 천 만원에 거래도


초승달 모양의 지형 때문에 ‘달의 항구’라 불리는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이곳에 전 세계인의 와인 성지(聖地) 메독이 있다.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마고’ ‘샤토 라피트 로칠드’ 등 전 세계 최고의 명품 와인으로 알려진 보르도 5대 그랑크뤼 와인 5개 중 4개가 이 메독에서 만들어진다.

보르도 공항에 도착한 7월 25일, 한국에선 폭염특보가 발령됐지만 같은 시간 메독의 체감온도는 전혀 달랐다. 30도를 넘나드는 더운 날씨였지만 습도가 낮고 그늘 아래 서면 서늘해서 불쾌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기후 조건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축복에 가깝다.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지롱드강과 가론강에서 부는 바람은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고, 랑드 숲의 빽빽한 나무들은 덥고 습한 바닷바람을 막아준다. 낮에는 30도를 웃돌다가도 새벽이 되면 온도가 14~15도까지 내려간다. 북부 지롱드강가에서 만드는 ‘샤토 생 크리스톨리’의 소유주 상드린 에로는 “포도가 뜨거운 낮의 열기와 밤의 서늘함을 반복해서 견디다 보면 당도가 높아지고 농축미가 생겨 복합적인 맛의 와인을 만들기에 최적의 상태로 익는다”고 말했다.

메독 와인이 보여주는 고유의 개성은 바로 이 포도에 있다. 메독의 와인들은 허용된 4~5가지 포도 품종을 섞어 만든다. 껍질이 두껍고 가장 늦게 익어 와인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는 카베르네 소비뇽, 풍부한 과일 맛을 더하는 메를로, 스파이시한 풍미를 주는 카베르네 프랑이 주요 품종이다. 포이약에 위치한 ‘샤토 그랑 퓌 뒤카스’의 티에리 부댕 디렉터는 “메독에서 블렌딩은 연금술의 영역”이라며 “두 가지 포도 품종을 섞었는데 딱 두 가지 맛만 나기도 하고, 1백 가지 맛이 나기도 하는 게 와인”이라고 말했다.

메독은 8개 아펠라시옹(AOC, 원산지 통제 명칭 제도)으로 나뉜다. 지롱드 강을 따라 북쪽부터 메독, 오메독, 생테스테프, 포이약,생 쥘리엥, 리스트락, 뮐리스엉메독, 마고 마을과 보르도시가 차례로 위치해 있다.

국도를 따라 보르도에서 메독 북부까지 차로 달리다 보면 창밖으로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에 나올 법한 동화 같은 풍경이 쉴 새 없이 펼쳐진다. 13세기 고성을 개조한 ‘샤토 리브랑’, 13세기 수도승들이 동 냄비 가득한 부엌에서 요리를 했다는 ‘샤토 프리외르 리신’, 유명한 건축가 앙리 뒤포가 19세기에 지었다는 ‘샤토 라느쌍’까지 저마다의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샤토(와이너리·와인 양조장)들이 고풍스러운 자태로 방문객을 홀린다.

메독에는 이런 샤토가 1500개 넘게 있다. 이들 와인의 맛과 품질을 판별하는 기준은 1855년 이후부터 적용돼온 세 가지 등급이다. 크게 그랑 크뤼(Gran Cru),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 크뤼 아르티장(Cru Artisan)으로 나뉜다. 그랑 크뤼는 1855년 제정됐다. 샤토 무통 로칠드를 제외한 59개 와이너리가 160년 동안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그랑 크뤼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에릭 콜레 디렉터는 이 등급을 두고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와인의 역사와 양조자의 철학이 결합된 신성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랑 크뤼 와인들은 메독에서도 가장 빛이 잘 드는 경사진 언덕에서 재배한 포도를 하나하나 손으로 수확해서 생산한다. 와인에 따라 100년 넘게 숙성 가능한 것도 있고, 실제로 경매를 통해 100년 전 빈티지가 수 천 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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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와인도 보관하고 있는 ‘샤토 라비요트’의 와인 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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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숙성하고 보관하는 ‘샤토 그뤼오 라로즈’의 지하 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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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라피트 로칠드 양조를 총괄하는 에릭 콜레 디렉터가 출시 전인 2015년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사진 포토그래퍼 황재성]

크뤼 부르주아는 가격대비 맛있는 품질로 대중들에게 접근성이 더 뛰어난 등급이다. 이 등급에 해당되는 메독의 ‘샤토 루소 드 시피앙’, 오메독의 ‘샤토 팔루메’와 ‘샤토 리브랑’, 뮐리스엉메독의 ‘샤토 라 가리크’를 테이스팅해 보니 잘 익은 체리·라즈베리 과육에서 느껴지는 신선함과 기분 좋은 산도가 느껴졌다. 샤토 리브랑의 소유주인 올리비에 미숑 대표는 “타닌과 산도가 조화롭고, 시간이 지날수록 완숙한 과실 향이 느껴지는 게 이 등급 와인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메독에서 딱 44개의 샤토만 승인을 받은 크뤼 아르티장 등급도 있다. 크뤼 아르티장 협회의 맥심 생마르탱 회장은 “소규모 양조장에서 전통방식인 수작업으로 와인을 만드는 양조 장인만 이 등급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조장에서 테이스팅해 본 크뤼 아르티장 등급 와인에서는 공통적으로 흙과 허브 같은 자연 그대로의 풍미가 올라왔다. 생마르탱 회장은 “숙성되면서 향신료와 동물 가죽 같은 복합적인 향이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일정 마지막 날엔 ‘샤토 그뤼오 라로즈’의 니콜라 시노케 디렉터와 함께 샤토에 위치한 유리 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에선 녹색 융단처럼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메독의 포도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올 여름엔 비가 많이 내려 예년에 비해 평균 당도가 덜하다”고 말했다. 건조하고 더워야 농축미가 생기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2016년 빈티지를 망쳤다는 건 아니다. 매년 가뭄이나 병충해 등 셀 수 없는 위기가 포도밭에 찾아오지만 그 때마다 여름 내 일교차가 더 커진다든가 하는 자연으로부터의 처방전이 있기 때문이다.

시노케 디렉터는 “메독이 워낙 유명한 와인 산지다 보니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노하우를 궁금해하는 이가 많지만, 그건 메독 와인의 일부예요. 신의 축복을 받은 땅과 함께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매년 한 편의 역사를 써내는 것 뿐이죠”라고 말했다. 메독에서 만난 다른 농부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수 세기에 걸쳐 같은 땅에서 같은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어 온 메독 와인의 매력은 ‘천·지·인(天·地·人)의 조화’ 바로 그것이었다.

메독=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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