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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정자 꼬리에 붙어 난자 상봉 돕는 ‘스펌봇’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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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블스튜디오 영화에 등장하는 앤트맨(Ant Man)은 독특한 수퍼 히어로다. 앤트맨은 허리 벨트에 장착한 가스 형태의 미립자를 분사해 1㎝ 이하로 몸을 축소시킨다. 몸은 작아져도 신체의 힘은 원래 크기 그대로다.

100만분의 1m 크기로 인체 탐험
문제 있는 세포 공격, 질병 치료까지
망막병변 환자 눈에 머물며 약 투입
스위스, 시력 상실 막는 로봇도 개발
국내선 전남대·한양대·DGIST 주도
“먼저 상용화하면 신성장동력 될 것”

최근 의료계에 앤트맨과 비슷한 차세대 수퍼 히어로가 등장했다. 마이크로 로봇(micro robot)이다. 이름 그대로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로봇을 말한다. 작은 사이즈를 활용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앤트맨과 유사하다.

마이크로 로봇이 차세대 수퍼 히어로로 각광받는 이유는 ‘크기’다. 인체 내부를 탐험하듯 돌아다니는 로봇을 상상해보자. 일반 기계나 로봇이 접근할 수 없는 국소 부위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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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체 세포에 달라 붙어 있는 나노 크기의 로봇. 자기장을 이용해 외부에서 로봇을 조종하면 특정 세포를 움직일 수 있다. [유튜브 캡처]

특히 의료 분야에서 마이크로 로봇에 주목하는 것은 인체 조직 자체가 거대한 마이크로 세포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심장이나 간·폐 등 인체의 모든 장기는 물론 근육·혈관·뼈, 심지어 혈액까지 모두 세포 덩어리다. 마이크로 크기의 로봇을 활용한다면 세포 단위에서 진단이나 치료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랜 기간 마이크로 로봇에 큰 관심이 없었다. 기술적 제약이 워낙 많아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단 마이크로 로봇에는 센서나 모터, 동력 생산기(actuator) 등이 들어 가는데 이런 장치를 마이크로 수준으로 작게 만드는 것부터 어렵다. 또 이렇게 작은 물체가 자체 추진력을 갖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기기는 안전성 기준이 까다롭다.

반전의 전기는 나노 기술(Nano Technology)이었다. 나노는 10억분의 1의 수치를 나타내는 단위다. 나노 기술은 이렇게 미세한 나노 입자를 쪼개거나 서로 조립하는 기술이다. 나노 크기의 소재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마이크로 크기의 로봇 개발도 가능해졌다.

물론 나노 물질을 다룰 수 있게 됐다고 마이크로 로봇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 로봇 연구진은 로봇 자체를 최대한 단순한 구조로 만들었다. 대신 외부에서 마이크로 로봇을 제어하는 방법을 택했다. 로봇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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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연구되는 로봇 제어 방식은 자기장이다. 못에 코일을 감고 전류를 흘리면 자석이 된다. 똑같은 원리로 외부에서 코일 시스템을 만들고 전류를 흘려 자장을 만든다. 이어 로봇 내부에 자성 물질을 집어넣으면 외부에서 로봇을 제어할 수 있다. 다음엔 혈관단층촬영(CTA)을 이용해 로봇이 탐험할 생물의 혈관 지도를 그린다. 생물체 내에 들어간 로봇은 X선 촬영을 이용하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마이크로 로봇의 활용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초기 마이크로 로봇은 혈관에 들어가 혈관에 쌓인 콜레스테롤 등 이물질을 뚫는 역할을 했다. 로봇 앞부분에 총알처럼 생긴 뾰족한 물질을 장착하면 가능한 일이다.

내시경 분야에선 마이크로 로봇의 상용화도 이뤄졌다. 알약 크기의 캡슐을 사람이 꿀꺽 삼키면 캡슐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 로봇이 소화기관을 따라 내려가면서 인체 내부를 촬영한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메틴 시티 교수 연구팀과 이탈리아 성안나고등과학원(SSSA)의 파울루 다리우 교수 연구팀 등은 자기장을 활용해 원하는 부위로 캡슐을 이동시킬 수 있는 능동형 캡슐 내시경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캡슐 내시경을 개발한 뒤 인트로메딕이란 전문회사에 기술을 이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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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내부를 ‘탐험’하는 로봇도 더 이상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브래들리 넬슨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 교수는 눈 속에서 수개월 동안 머물면서 망막병변에 걸린 환자의 눈에 약물을 전달하는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했다. 티끌만 한 이 로봇은 눈동자 속에서 헤엄치다가 망막에 도착하면 로봇 겉면에 코팅했던 약물이 녹아들어 시력 상실을 막는다.

불임치료에도 로봇이 이용된다. 일부 난임은 정자가 힘차게 꼬리를 움직(편모운동)이지 못해 발생한다. 독일에서 개발된 스펌봇(spermbot)이라는 마이크로 로봇은 이런 정자를 위한 일종의 ‘터보 엔진’이다. 이 나선형 금속 로봇은 자기장을 제어해 정자 꼬리에 달라붙는다. 이 장치를 장착한 정자는 좌우로 힘차게 활개치며 난자와 상봉할 수 있다.

이밖에 후쿠다 도시오 일본 나고야대 교수 연구팀도 세포의 핵을 빼거나 넣는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 로봇(Cell Surgery Robot)을 개발 중이다.

바이오기술(Bio Technology)은 금속 덩어리였던 마이크로 로봇의 정의도 바꿨다. 반은 기계고 반은 인간인 로보캅처럼 살아 있는 세포와 로봇을 조합한 ‘박테리아 마이크로 로봇’이 등장했다.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조작해 치료제를 주입한 뒤 여기에 형광물질을 투입해 박테리아의 위치를 파악하고 박테리아를 원하는 부위로 옮기는 방식이다. 암을 공격하는 성향이 있는 살모넬라 박테리아 등이 주로 활용된다. 하지만 박테리아를 생명체의 몸에 주입한다는 사실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요즘엔 마이크로 로봇에 박테리아 대신 면역세포를 결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남대·한양대·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이 마이크로 로봇 연구를 주도한다. 전남대 로봇연구소는 한국에서 마이크로 로봇을 가장 오랫동안 연구했다. 제조 기술력은 세계적인 연구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박석호 전남대 로봇연구소 교수는 KIST 시절부터 13년 동안 마이크로 로봇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한양대는 마이크로 로봇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구동부를 담당하는 전기 모터와 자기 이론 시스템 분야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연구에 강점을 가진 DGIST는 마이크로 로봇 제작 공정에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 최근에는 발이 여러 개 달린 마이크로 섬모 로봇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들이 마이크로 로봇에 매진하는 이유는 암세포처럼 문제가 있는 세포를 직접 공격하거나 유전자(DNA)를 고쳐 질병을 치료할 수 있어서다. 먼 미래에는 뇌에 들어가 치매를 치료하는 마이크로 로봇이 나올 수도 있다.

기존 의료용 로봇은 이미 선진국에서 특허장벽을 세워 우리나라가 끼어들 틈이 없다. 반면 최신 연구 분야인 마이크로 로봇은 기술 개선 여지가 많아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 세포 로봇 등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이 앞서고 있기도 하다.

박석호 교수는 “의료용 로봇이라는 특성상 상용화가 쉽지 않지만 다른 국가보다 먼저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마이크로 로봇은 미래 세대가 먹고살 수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의료용 진단이나 치료에 사용하는 수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로봇. 나노 기술과 바이오 기술, 미세 전자기계제어 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지름 1㎜ 이하의 로봇 제작이 가능해졌다.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은 전자기 구동 시스템을 이용해 원하는 위치로 이동하거나 혈관 속에서 치료제를 주입하는 등 신체 내부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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