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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제8요일의 남자] #3. ‘당신의 어둠 속에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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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서른다섯, 한창 젊고 아름다운 한 여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일곱 명의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이야기다.
월요일은 엠, 화요일은 튜즈, 수요일은 더블, ..쥬디, ..에프, ..쌈디, 일요일은 썬, 여자는 남자들을 그렇게 부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완전한 1이 될까 두려워 여자는 7분의 1로 마음을 나누어 놓았다.  그 정도 지분이라면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변질되고 추해진다는 걸, 온전히 바친 사랑의 결과는 상처투성이라는 걸 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자는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랑 따윈 없다고 믿는다.
그런 여자 미주에게 어느 날,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죄송해요, 아빠.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마지막 말은 죄송해요, 였다. 그 한 마디 말로 아버지를 용서했다. 죽음 앞에 다다른 아버지를 용서하는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대답이라도 하듯 힘없던 아버지 손이 무언가를 잡으려 듯 움찔, 움직였다. 알았다는 말이었을까, 미안하다는 말이었을까.
 
어쩌면 아버지가 미안할 건 없을지도 몰랐다. 시종일관 엄마에겐 곁을 내주지 않던 아버지였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과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별개였을테니까. 아버지로서 나빴던 건 아니었다. 우리는 덕분에 풍족했고 아쉬움 없이 어른이 되었다.
 
견딜 수 없던 건 힘겨워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지방에 있는 사업체를 핑계로 자주 집을 비웠고, 그로 인해 혼자 남게 된 밤을 엄마는 괴로워했다. 꼬박 뜬 눈으로 밤새 뒤척였고 때로 흐느꼈다. 늦게까지 공부하다 자리에 누워도 나는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엄마의 울음이 조금이라도 커지는 날엔 가슴이 울렁거려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아야했다.
 
엄만 아버지에게 지극정성이었다. 늘 아버지가 원하는 걸 엄마도 원했고 아버지 뜻이 엄마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아버지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는 마치 아버지를 놓치지 않으려 살을 깎으며 확보한 피나는 한 걸음의 공간 같았다.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가 어딨니? 너네 아빠는 그래도 먹고 살만큼 벌어주기나 했지. 고모부는 어쩌고 다닌 줄 아니? 알고 보면 너네 아빠 불쌍한 사람이야.... 그나저나 우리 오빠 어떡해... 오빠, 어떡해....
 
갑자기 들이닥친 고모는 힘없이 늘어진 아버지 손을 잡고 그 위에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손등에 물기가 반짝였다. 그 손은 더 이상 누구의 눈물도 닦아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사랑하는 여자도 만질 수 없게 돼버린 손. 향기 나는 머리칼을 쓸어주고 상기한 볼을 쓰다듬었을, 가녀린 어깨와 떨리는 가슴을 안아주었을 아버지의 손.
 
그렇게 움켜쥐고 있던 아버지의 욕망이 힘없이 늘어진 손가락 사이로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몸은 한참 구겼다 겨우 펴놓은 종이처럼 더 이상 어떤 가망도 없어보였다.
 
아버지가 손에서 세상을 놓아버렸지만 세상은 여전했다. 해가 뜨고 꽃이 피었으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세상은 세상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우리는 우리대로 잠시 멈췄던 일들로 바쁘게 움직였다.
 
“왜 이렇게 불덩이야?”
 
차 뒷좌석에서 내게 한참 키스를 퍼부어대던 썬이 갑자기 멈추었다.
 
“누나,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썬과 만나기 위해 어떻게 운전을 해서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디 눕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썬이 아니었다면 죽을 힘을 다해 이렇게 만나러 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누구보다 썬을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 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썬은 내 이마를 짚어보고 가슴에 귀를 대보고 원피스 지퍼를 열어 등에도 손을 넣어보았다.
 
“열이 너무 심한데.... 누나 괜찮아? 병원 가야할 거 같은데?”
 
나는 차 시트에 몸을 의지한 채,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 해열제 있을 거야. ”
 
썬의 집은 늘 그랬듯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썬은 자신의 침대에 나를 편하게 눕혀주었다.
 
“누나 진짜 순진한데가 있어. 이렇게 아픈데 뭐 하러 와.... 누나 와주니 나야 좋지만.”

썬은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 등 뒤로 두 손을 넣고 한참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아프지 마라, 누나....”
 
참으려 했는데 정말 참아야만 했는데 울컹울컹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왜 그래? 많이 아픈 거야? 누나... 왜 그러는 건데?”
 
“나.... 너무 아파....”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울음을 쏟았다.
 
“어디, 어디가 아파? 말을 해야 알지. 안되겠다. 병원 갈까? 병원 갈까? 누나. 말을 해봐.”
 
정말 아팠다. 심장이 아팠다. 명치끝이 저리다는 말은, 살을 도려내는 것 같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팠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온 몸에 갇혀있던 울음이 금방이라도 심장을 뚫고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서른하고도 다섯 해가 지나도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옥 같은 고통이었다.
 
꿈을 꾼 것 같았다. 에프의 삶도, 에프의 죽음도, 에프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꿈인 것만 같았다. 어쩌면 에프가 아니라 죽은 사람은 내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견디고 있는 이 순간이 죽음의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혼미했다.
 
만일 에프가 내 앞에 쓰러졌다 해도 그의 죽음을 바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더구나 그의 죽음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의 죽음을,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는 것을, 그러고도 달려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내게 납득 시킬 수 없었다.
 
에프가 죽고 일 주일이 지났지만 그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현직 국회의원이었고, 어떤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에 관여할 내 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순간 스쳐간 사람일 뿐인 내가, 지금까지 왜 그와 연결된 관계였는지, 왜 계속 만나왔는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밝힐 수도 없었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 하는 일 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그의 죽음이 어떻게 된 것인지 검색해보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5년 동안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며 깊은 감정을 나누어 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세상에서 없어진 이상 그와의 과거 따위는 꿈이나 상상처럼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정말 내 옆에 존재하기나 했는지 혼란스러워졌다.
 
“누나! 눈 떠봐... 나 보여? 정신이 좀 들어?”
 
아득한 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눈을 뜨니 썬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손에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어 손을 올리려했더니 썬이 못하게 손을 붙들었다.
 
“그 손은 움직이면 안 돼.”
 
올려다보니 링거 병이 줄을 매단 채 흔들리고 있었다.
 
“혈관을 못 찾아서 손등에 바늘을 꽂았대. 간호사가 링거 놓고 갔어. 수액이 다 들어가려면 한 시간 쯤 걸릴 거래. 맞고 나면 좀 괜찮을 거야.”
 
자면서 움직였는지 손등은 퉁퉁 부어올라있었다.
 
“못 먹고 못 자고, 왜 그랬어.... 난 그것도 모르고 보자마자 난리를 했으니 어린 녀석, 할 수 없구만, 그랬던 거 아니야?”
 
눈을 감았다. 썬을 만나러 오는 게 아니었다. 한 주 동안 핸드폰을 꺼놓았었다. 에프의 죽음이 현실이라는 걸 확인하고부터 나도 에프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히고 싶었다. 그가 혼자 어둠 속에 홀로 있을 걸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내 현실을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썬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더 안잘 거야?”
 
썬은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어와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나보다 여덟 살이나 적은 썬이 오빠처럼 다정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가슴을 토닥여주었다.
 
“그건 하지마....”
 
“응? 뭐...?”
“손...”
 
“아, 어. 알았어.”
 
썬은 얼른 손을 치웠다. 가슴을 토닥여주는 건 에프의 몫으로 영원히 남겨놓고 싶었다. 그가 남긴 흔적을 아무도 지우지 않았으면 했다. 아버지의 손이 어떤 여자도 만질 수 없게 된 것처럼, 에프도 더 이상 나를 만질 수 없게 되었다. 머리를 쓸어 넘겨줄 수도, 목을 껴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에프는 말했다. 눈을 감고 네 얼굴을 만지면 이상하게 너를 그리는 기분이 들어. 이마에서 귀로, 턱으로 이어지는 선을 그어놓고 코를 세우고 입술을 만들고... 턱에서 목선을 이어주고 어깨로 넘어가는 쇄골을 그려넣고...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마치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내 맘대로 가져도 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거든.
 
눈을 감고 에프에게 얼굴을 내주고 있던 때를 떠올리자 다시 울컹거리며 목으로 울음이 올라왔다. 그가 나를 만질 수 없게 된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내가 더 이상 그를 만 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나도 그의 눈썹을 만지고, 코를 만지고, 수제비처럼 생겼다고 킬킬대며 그의 귀를 만졌다. 나도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어보면 그의 얼굴을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참. 누나. 아까... 누나 몸에서 열이 막 나니까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더라?”
 
썬은 내 한 손을 잡고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첨 봤던 날, 내가 학교 정문에서 누나 차 세웠던 거 기억나지? 지하철까지 좀 태워달라고 했잖아. 사실 그 전에 미술대 건물 앞에서 누나를 봤거든. 누나 다리가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외국잡지에서나 볼 만한 구두를 신고 있더라구. 저런 구두를 멋지게 신는 여자는 어떤 여잘까? 한참 지켜봤는데 하얀 승용차를 타고 휙 날아 가버리더라구. 뭘 먹으러 가던 중이었는데 따라갈 수도 없고, 아쉬웠지만 차 뒤통수만 뚫어지게 쳐다봤지. 다시 한 번 더 보게 되면 그땐 각오해라, 혼잣말 하면서 말야.”
 
지난 11월, 모교 단과대에서 디자인관련 겨울방학특강을 해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었다. 학과장을 만나 강의안을 짜놓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는 길이었다. 시동을 걸고 교문 쪽으로 미끄러지는데 웬 연예인 같은 애가 서 있는 게 보였다. 190쯤? 훤칠한 큰 키에 하얀 츄리닝을 입은 건장한 체격이었다.
 
“아, 그런데 하느님이 나를 도우셨는지 점심 먹고 돌아오다 보니 그 하얀 승용차가 도서관 앞에 주차돼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어쩐 줄 알아? 도서관으로 막 뛰어 들어갔지. 아, 하느님은 내 편이셨어. 하필 누나가 로비에 떡하니 서서 통화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누나가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했더라구. 그게 뭘 의미하겠어? 우리학교라는 거잖아. 우리학교 출신중에 저런 미인이 있었다고? 그 순간 나는 이미 누나한테 내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 같아.”
 
그가 먼저 차를 세우지 않았다 해도 아마 천천히 그 앞을 지났을 것이었다. 예전엔 안경 쓰고 비리비리 공부만 열심히 하는 애들이 모여 있던 학교였는데 요즘은 여자애들 학교 다닐 맛이 나겠구나, 생각했던 참이었다.
 
선배님이시죠? 후배 좀 도와주십시오, 넉살좋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예뻤다. 차를 태웠더니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해놓곤 나보고 몇 학번이냐, 뭘 전공했느냐, 지금은 뭐하느냐 호구 조사를 했다. 8년이나 후배란 걸 알게 되었는데도 가슴이 뛰었다. 이상하게 남자로 느껴졌다.
 
“그날 우리 술 많이 마셨지. 아, 지금 생각하니 좀 민망하네. 차 대리 불러놓고 기다리면서 전봇대 옆에서 누나 껴안고 키스했는데 와 진짜 누나가 너무너무 따뜻한 거야. 좀 추운 날씬데 옷을 얇게 입어 그렇기도 했겠지만 뭐랄까 갇힌 내부에 고여 있던 열기 같은 거? 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뜨거움이 느껴지는데 그때 완전히 반한거지. 그런데 내가... 아까... 누나 심하게 열이 나니까 그날이 생각나더라구.”
 
한참 수다스레 말을 쏟아놓던 썬은 아무 반응 없이 누워있는 내게 민망했는지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쓸어주었다.
 
“다 나으면 아까 못 한 거 할 거야. 아픈 사람 앞에서 이러는 거 보면 나도 참 한심한 짐승인가 봐”
 
썬의 웃음 소리너머로 내 핸드폰 벨이 울렸다. 썬이 얼른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
 
“언니. 죽었니? 왜 매일 전화는 꺼두는 거야? 결혼해서 살림하는 내가, 언니 뒤치다꺼리해야 해? 빨리 엄마한테 전화 해봐. 언니 연락 안 된다고 걱정이 늘어졌어. ”
 
미영이었다. 나는 썬에게 전화를 줘버렸다.
 
“아, 지금 반미주 선생님이 일이 있으셔서 제가 전화 대신 받았는데요. 일 끝나시면 전화 하시라고 하겠습니다.”
 
썬은 전화를 끊고 침대 옆에 핸드폰을 놓아주었다.
 
“동생 분, 곧장 다시 전화하겠대. 아프다고 나중에 하자고 해. 그런데 누나 동생, 친동생 맞아? 와... 성격이 완전 불이시네. 내 취향은 아니야. 오..무서워.”
 
미영은 썬이 말한 것처럼 불같은 면이 있었다. 하지만 금방 사그라지는 여린 성격이었다. 오히려 남에게 완벽하게 잘 하는 대신, 남들도 그렇게 자신에게 하기를 바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썬은 과일이라도 사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썬의 말대로 곧바로 핸드폰이 울렸다. 눈을 감은 채 폰을 터치했다.
 
“내일 내가 할게.”
 
“아, 반미주씨 핸드폰 맞습니까?”
 
모르는 남자 목소리였다.
 
“네? 네.... 누구세요?”
 
“저는 영등포 경찰서 김진수 계장입니다. 장현수 국회의원 자살사건으로 조사 중인데 경찰서로 좀 나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킨다는 게 침대 아래로 곤두박질을 쳤다. 손에 매달린 링거가 넘어지면서 옆의 책꽂이에 부딪치고는 바닥으로 수액을 쏟으며 산산조각 흩어졌다.
손에 매달린 링거 관으로 한 방울씩 핏물이 흘러들고 있었다. 
 
▶ 제8요일의 남자 더 보기
#1. 화요일의 남자, 튜즈
#2. 7분의 1을 넘나드는 남자, 에프


<목요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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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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