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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무단통치 원흉 아카시 헌병사령관 친필서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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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모토지로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사진 독립기념관]

일제강점기 의병탄압과 무단통치 주범으로 알려진 일본군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의 친필서한이 공개된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12일 기념관 자료실에서 아카시의 친필서한을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서한은 가로 11.17m, 세로 18㎝ 크기의 두루마리 형태로 일본 고어 초서체 문건이다.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올해 초 일본 교토(京都)의 개인연구가로부터 입수했다.

연구소는 서한이 1910년 경술국치 전후 아카시의 무단통치 정책의 핵심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 침략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서한은 1909년 8월 3일 아카시가 후임자로 임명된 사가키하라 쇼조(?原昇造)에게 보낸 것으로 자신이 2년간 재직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지배를 위한 정책조언을 담고 있다. 서한에서 아카시는 의병탄압을 마무리하고 식민통치 기반을 구축하려면 한국주차헌병이 조선반도 치안권을 장악하는 헌병경찰제 시행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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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의병탄압과 무단통치 주범으로 알려진 일본군 한국주차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의 친필서한. 서한에는 아카시의 무단통치 정책 핵심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박민영 수석연구위원은 “아카시는 헌병총수로 의병을 탄압하고 무단통치를 총지휘한 악명높은 인물”이라며 “친필서한을 통해 일제의 통치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아카시는 서한에서 ‘불측한 백성을 제어하고 분쟁과 소요의 화근이라 할 수 있는(중략)…, 이 새로운 보호국에서 군도의 광채와 다갈색을 싫어하여 보통의 경찰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문관기질은 배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 출신인 아카시는 1907년 10월 9일 헌병대장으로 부임, 왕상과 허위 등 의병장을 직접 신문하는 등 탄압주역으로 활동했다. 그는 ‘기포성산(碁布星散·바둑판 포석과 하늘의 별처럼 헌병을 총총히 배치함)’ 탄압방식으로 악명을 떨친 뒤 1918년 대만총독으로 부임, 이듬해 사망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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