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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등급만 받으면 된다” 한국사 10일 완성 강의도 등장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학생이 없어졌어요. 암기과목이 된 거죠.” 서울 A여고의 한 역사교사는 지난 1학기 한국사 수업 풍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됐지만 정작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절대평가인 데다 문제까지 단순해져 학생들이 단순 암기과목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청소년들에게 바른 역사인식을 정립하게 하자는 취지가 무색해지고 역사 경시 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여름방학 한국사 방과후 학교를 3학급 편성했던 서울의 한 자사고는 올해엔 1개 학급만 개설했다. 이 학교 역사교사는 “지난해엔 5초 만에 수강신청이 마감됐지만 이번엔 정원도 못 채웠다”고 말했다. 이 학교 3학년 김모(18)군은 “시험이 쉬워져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 수능 직전에 벼락치기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울 일반고 B고 교사 역시 “1학기 수업 중 질문 없이 필기만 하거나 영어나 수학 책을 펴 놓고 공부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또다른 자사고의 교사는 “수업 시간 토론·발표 수업을 하려 해도 학생과 학부모가 ‘시험에 안 나온다’며 싫어한다”고 전했다.

학원가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한국사는 내용이 방대하고 맥락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스토리텔링식 강의가 인기였다. 그러나 단기 암기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명 강사도 강의를 접는 추세다.

종합학원인 D학원 관계자는 “신청자가 없어 방학 중 한국사 단과를 폐강시켰다. 대신 추석 기간 단기 강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원 관계자는 “역사에 대한 이해보다 ‘이거 나오니까, 저거 외워’ 하는 식의 암기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들이 자리를 채웠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방학기간 인기 있는 강의는 ‘한국사 10일 완성’ ‘10시간 속성 코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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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사가 단기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가장 큰 이유는 절대평가로 치러지는 데다 문제까지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여고 교사는 “지난해까지 난이도를 10으로 보면 지금 한국사는 6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수능 한국사 안정권’은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도 3·4등급(전체 9등급) 선이다. 고려대·연세대 등 주요 대학이 요구하는 최저학력 기준이 보통 인문계열은 3등급(50점 만점 중 30점), 자연계열은 4등급(25점)이기 때문이다. 6월 모의평가 기준 54만여 명의 전체 수험생 중 77%가 4등급 이상을 받았다. 서울대 등 55개 대학은 수시모집에서 한국사 응시 여부만 확인한다.

전문가들은 필수과목 지정으로 한국사 수업이 모든 학생에게 확대됐다는 의미는 있지만 단순 지식을 평가하는 방식에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사립고 역사교사는 “단순 유형으로만 출제돼 역사교육이 파행된다”며 “집현전 사진을 보여주며 왕이 누군지 맞히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역사수업의 내실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우 양주고 교사는 “쉬운 출제 기조를 이어가더라도 탐구력을 유도하고 지적 수준을 유지하는 문제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첫 시험이다보니 문제가 쉬워져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도교육청과 함께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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