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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먹인 소'는 잘못···그 빚 갚으려 독거노인 곰탕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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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박사’ 송한영씨가 곰탕을 우려내고 있다. 잔칫날인 일요일에 맞춰 700~800인분을 마련하려면 목요일부터 대여섯 번 끓어야 한다.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감북동 배다리 평화마을. 삼각지붕 단층건물에서 마을잔치가 열렸다. 진하게 우린 곰탕 한 그릇에 불고기·잡채·김치 등이 담긴 식판을 받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자원봉사자들도 바빴다. 떡이며, 술이며,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을 부지런히 날랐다. 인근 마당에선 머리를 손질하는 노인도 눈에 띄었다. 매달 첫째 일요일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효 잔치’ 풍경이다.

건물 바깥에는 소달구지를 끄는 촌부(村夫)를 그린 벽화가 있다. 동그란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빛, 이곳의 주인장 송한영(57)씨를 닮았다. 송씨는 하남시 일대 독거노인 600여 명을 매달 초청해 소머리 곰탕을 대접해왔다. 2002년 2월 시작했으니 올해로 15년째다. “오전 9시만 되면 어르신들이 오시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두 달 건너뛴 것을 빼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어요.”

배달봉사도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 150여 명을 위해 곰탕을 집에까지 가져다 준다. 준비조·서빙조·운전조·미용조 등 자원봉사자를 합하면 900명 가까이 모이는 큰 잔치다. “한 번 치르는 데 1000만원 정도 듭니다. 1년이면 1억2000만원, 지금까지 15억원 남짓 들어갔어요. 제가 소로 번 돈을 사회에 돌려드리는 거죠. 소에게 물을 먹이는 몹쓸 짓을 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 빚을 갚는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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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가 준비한 음식을 즐기고 있는 하남시 어르신들.

송씨는 하남 토박이다. 초등 5학년 때부터 소장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다녔다. 고등학생 때는 양재기나 호스로 소에 강제로 물을 먹여 고기량을 늘리기도 했다. “그때는 다 그렇게 했어요. 아버지가 시켜서 한 일이지만 산짐승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당시 직장인 봉급이 보통 1만원이 안 됐는데 소 한 마리에 물을 먹이면 20만원(약 60㎏)을 더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70~80년대 ‘물 먹인 소’는 단골 뉴스거리였다. 소고기 부정유통의 대명사였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당국이 집중 단속에 나섰고, 92년 한우 품질개선을 위한 쇠고기 등급제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송씨는 82년 해병대 제대 후 소장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농가에서 소를 사다가 전국 우시장에 내다 팔았다. 어려서부터 쌓은 수완과 인맥을 바탕으로 사업을 넓혀나갔다. 강원도 철원에 소목장을 차렸고, 하남에 정육식당을 6개까지 열었다. 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꿰고 있다는 뜻에서 ‘소박사’란 별명도 얻었다.

“물 먹인 소는 금방 알아봐요. 설사를 하거나 오줌을 많이 싸죠. 전국 장터를 돌면서 ‘이제 그만하자’며 설득도 했습니다. 정육식당을 하며 어르신들께 자투리 고기를 대접하기 시작한 게 오늘까지 왔네요. 황소고집 아시죠, 눈 감는 순간까지 잔치를 계속 열 겁니다.”

글·사진=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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