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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평생교육 패러다임, 대학 주도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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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전 세계은행 컨설턴트

이화여대가 교육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직장인을 위한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설립하려다 백지화했다. 학생과 교직원들의 높은 반대 여론에 부닥친 탓이다. 이를 두고 ‘학생들의 대학 브랜드 이기주의’라는 비판과 ‘학교 측의 일방통행식 행정편의주의가 부른 결과’라는 시각이 맞선다. 지금은 100세 시대다. 인생 2모작이나 3모작을 위해 고등교육 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 구성원의 협력 없이는 개혁과 변화가 불가능함을 이번 사건이 보여준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고 대학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국가 차원에서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의 취지는 좋다. 산업시대를 넘어 정보시대가 되면서 일과 학습은 통합돼 가고 있다. 일하다가 학교로 배우러 갈 수 있고 학교에서 배우다가 직장으로 일하러 갈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통받는 대졸 청년실업자가 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로 진출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대학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대학에서 학위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교육환경이 질적으로 다른 일반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주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하버드대의 익스텐션 스쿨(Harvard Extension School), 시카고대 그레이엄 스쿨(Graham School), 영국 옥스퍼드대의 해리스맨체스터(Harris Manchester)대학과 유사한 평생교육 성인 대학을 한국의 명문대학들이 앞장서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이른바 명문대학들이 각종 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을 통해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성인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소외계층인 고졸 직장인의 ‘선취업 후진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자율적으로 추진한다면 사회 양극화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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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고질적인 입시 병폐도 해결할 수 있다. 능력주의 사회가 되려면 대학을 향해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모노레일(mono-rail) 시스템을 여러 길을 밟을 수 있는 멀티트랙(multi-track) 시스템으로 개편해야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로 나갔던 사람이 다시 성인 고등학교를 갈 수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로 나갔던 사람이 성인 대학에 갈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을 만드는 것이 멀티트랙이다. 멀티트랙 시스템이 정립되면 적령기 학생들을 대학을 향해 한 줄로 세우지 않아도 된다. ‘선취업 후진학’을 위해선 낮에 다니는 대학만이 아니라 야간이나 주말 대학원 같은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직행한 사람만이 대학에서 학문을 할 수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은 학문이 아닌 직업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학문의 특성에 따라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회사에 다닌 적이 없는 학생들이 기업회계학을 배우는 것보다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학생들이 기업회계학에 더 흥미를 가지고 공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전공과정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분야 외에는 실용적인 역량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다만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에서 개설할 수 있는 전공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불통 정책은 곤란하다. 적어도 10년 앞을 내다보는, 대학 주도의 자율적 개혁이어야 평생교육을 정착시킬 수 있다. 정부와 대학이 소통과 화합의 과정을 생략하면 이해당사자로부터 개혁의 공감대를 얻어내기 어렵다. 대학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다. 미국 미시간 주립대는 1981년 주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학기제를 바꾸기로 했다. 1년 4학기 쿼터(quarter)제도를 2학기 시메스터(semester)제도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데 10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대학을 당장 개혁하려면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 어렵지만 충분한 기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동의를 받기 쉽다. 단기간에 대학 개혁을 하려다 실패한 이화여대 사례를 교훈 삼아 적어도 10년 앞을 내다보고 개혁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젠 관료가 주도하던 산업화 시대의 대학 개혁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각종 재정 지원 사업권으로 대학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대학 스스로가 집단지성을 통해 대학 개혁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분리된 학교회계와 법인회계를 일원화해 개혁을 지원할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대학이 주도적으로 자율적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헌법 가치인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전 세계은행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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