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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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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 #1

으슬으슬 춥고 몸이 떨렸다. 기다시피 움직여 방문을 열고 일꾼을 찾아 불을 더 지펴 달라 청했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들어와 화로에 숯을 넣고 기다렸다. 주섬주섬 몸을 뒤졌다. 주머니를 찾아 돈을 꺼내는 단순한 동작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아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일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처음 길을 떠날 무렵과 많이 달라졌다. 여관에서 손님 잔심부름을 하거나 청소 따위를 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없는 집에서 굶지나 말라고 보낸 어린 자식들이었다. 여관 주인은 숙식을 제공할 뿐 따로 돈을 주지 않았다.

객들이 마음 씀씀이가 곱거나 똘똘한 아이들에게 순전히 호의로 몇 푼 쥐여 주곤 했다. 나도 그랬다. 아이들은 대체로 순수하게 기뻐하거나 어쩔 줄 몰라 사양했다. 어느 순간부터 달라고 요구하는 아이들이 생기더니 이제는 당연해져 돈을 주지 않으면 시중도 들지 않았다.
 
“의원 불러 드려요?”
 
아이가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멀뚱히 보다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돈을 받아 나갔다. 그러고 보니 같은 방에 머물던 객들이 어느 틈에 슬금슬금 옆방으로 사라졌다. 혹시 몹쓸 병이라도 옮을까 겁났나 보다. 자리에 눕는데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스물아홉 해를 살아오며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이불 속에 몸을 말았다.
아무도 없는 휑한 방에서 화로만 타닥타닥 불을 피웠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맺혔다. 내 신세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됐단 말인가?
 
나는 나면서부터 제자리에 있질 못했다. 머리도 못 가눌 갓난아이 때부터 사방으로 눈을 굴리더니 마침내 기기 시작한 후로는 온 집안을 헤집으며 뭐라도 잡고 일어서려다 밥상이며 찬장을 엎었고, 수없이 넘어져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마침내 제대로 걷고 뛰게 되자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세 살 이후로 삼일이 멀다하고 바깥에서 잠을 자 부모 속을 무던히 태웠다. 들판을 헤매고, 겁도 없이 혼자 산에 올랐다.

엄마는 그때마다 매를 들며 정 쏘다녀야겠으면, 집에 보탬이 되는 거라도 가져오라 했다. 나도 그러려 해 봤다. 버섯을 캐거나 머루 따위를 따 모으기도 했지만 들고 다니기 성가셨다.

몸이 가벼워야 멀리 갈 수 있었다. 나는 한두 끼 먹을거리, 아빠의 낡은 겉옷 외에는 지니지 않았다. 아빠 겉옷은 가볍고 따뜻해 저녁이면 걸쳐 입고, 밤에는 잠자리로 하기 딱 좋았다. 그렇게 온 사방을 돌아다니다 집에 가면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다. 나는 이리 피하고, 저리 피했다. 누나가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놈 자식! 밤마다 들개가 물어갔나, 호랑이한테 먹혔나,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나 마음 졸이며 살아야겠어? 이리 안 와?”

 
엄마가 제풀에 지쳐 악을 썼다.
 
“그거 때린다고 나을 병 아니요.”
 
울타리 너머에서 40줄에 이른 사내가 말했다. 등에는 지게 가득 한 짐을 메고 있었다.
 
“뉘시오?”

엄마가 물었다. 사내가 자기 집처럼 싸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 꼬마 나 주쇼.”
 
“뭐요?”

 
엄마가 넋을 잃고 되물었다. 누나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사내는 평상에 주저앉아 등짐에서 크고 작은 머리빗, 차곡차곡 쟁인 여러 가지 모양의 항아리, 나무 상자, 주걱, 배내옷, 색색깔 향료를 끝없이 꺼내 늘어놓았다. 나는 먹이에 홀린 짐승처럼 한 발짝, 한 발짝 사내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날 잡아 치마 뒤에 숨겼다. 아빠가 낫을 쥔 채 달려왔다. 누나가 숨이 턱에 차 뒤따라 들어와 사내를 가리켰다. 사내는 살기등등한 아빠를 보고도 기죽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 태연자약하게 맞이했다.
 
“이 병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소이다.”
 
사내는 절대 한곳에 붙어살지 못하는 병이 있다고 했다. 자기도 달고 사는 병인데 매로도, 의술로도 고칠 수 없고, 억지로 가두면 병들거나 기어이 뛰쳐나가 짐승 밥이 될 팔자나 자기가 데리고 다니며 장사를 가르치면 먹고는 살리라 했다.
 
“저 코흘리개가 어디 셈이나 제대로 하겠소?”
 
아빠가 묵직하게 말했다.
 
“나도 저 병이 어떤지 아는지라 차마 지나치기 못해 들렀으나, 솔직히 저런 비실비실한 꼬마를 데리고 다니며 장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오. 말대로 셈도 못 배우는 놈은 영 못 배워. 그런 놈이 하나 있었어. 몸도 약해, 짐도 못 들어, 지 손가락도 제대로 못 세 열을 헤아리고도 손가락이 남으니, 정말 하다 하다 그렇게 한심한 놈은 처음 봤소. 그래도 어쩌겠소. 그냥 등에 짐 하나 더 얹었다 치고 데리고 다니다 지 살 길은 열어줬다오. 아, 일단 날 따라나섰으면 내 아들인 것을, 당연한 일이지. 그 뒤 몇 번 이 병을 타고난 애들을 봤지만 다 못 본 척 지나쳤소. 그게 어디 두 번 할 짓인가. 그런 연, 또 맺을까 겁난다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난 이대로 짐승 밥이 되어 장례 치를 시신도 못 찾거나 병들어 죽을 팔잔데, 저 사내는 내가 작고 마른 데다 행여나 멍청할까 싶어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 아빠도 화들짝 놀라 여직 쥐고 있던 낫을 내려놓더니, 날 데려가 부디 사람 구실이나 하며 살게 해 달라 사정했다.
 
“저래 보여도 아주 미련한 놈은 아니요. 키야 자랄 테고 또래에 비해 아주 작지도 않소.”
 
아빠가 말했다.
 
“내가 저놈 가졌을 때 유독 입덧이 심해 제대로 못 먹어 낳은 데다, 저놈이 쏘다니느라 붙어 있질 않으니 뭘 먹일 틈이 있어야지. 객이 데려다 잘만 먹이면, 아, 애들 크는 거야 대나무 저리 가라지.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먼 길 오시느라 목이 칼칼하시지?”
 
엄마가 부리나케 부엌으로 가 있는 데로 상을 차려 왔다.
 
“이이도 힘이 장사라오. 젊었을 적에 씨름 대회에서 황소도 탈 뻔했다니까?”
 
“어허,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하고 그래.”
 
아빠가 슬쩍 헛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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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없는 소리 했소? 아, 글쎄 그놈이 응? 심판 놈 사위가 될 놈인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라고. 그놈의 심판이 글쎄, 이이 무릎이 땅에 스치지도 않았는데 이이가 졌다며 그놈 손을 번쩍 들지 않겠소? 이이가 사람이 좋아 심판이 잘못 봤다는 걸 알면서도 마을 잔칫날 괜히 시끄럽게 하지 말자 해서 나도 넘어갔는데……, 글쎄 다다음 달인가, 그놈이 심판 놈 딸과 혼인하며 떡하니 그 황소를 타고 오는데……. 내가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뒤집혀서…….”
 
“어허, 거, 그만 하래두, 지난 일은 왜 자꾸 꺼내나 그래.”
 
아빠가 말은 그만 하라 하면서도 술잔을 따르며 은근슬쩍 팔뚝을 걷었다.
 
“나도 저 나이 땐 저놈만 했소.”
 
“우리 한동네서 자랐잖소. 이이는 저보다 더 작았지. 아, 아들이 아빌 닮지, 누굴 닮나.”
 
엄마가 잽싸게 맞장구쳤다.
 
“저걸 어째……, 부모님이 홀렸네…….”
 
지켜보던 누나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물었다.
 
“보면 몰라? 가끔 떠돌이 장사치들이 없는 집에서 짐꾼으로 쓸 애를 사. 보통 그런 경우 자기가 돈을 지불하는데 널 몸값까지 받아 데려가려 들잖아!”
 
“우와! 그런 거야?”

 
누나는 언제나 똑똑했다.
 
“안 되겠다.”
 
누나가 나서려 했다. 난 누나를 잡았다.
 
“나 저 사람, 따라갈래.”
 
“뭐?”

 
누나가 기겁해 되물었다. 나도 깜빡 속아 내가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제발 부모님이 저 사내가 날 데려가게 설득하길 바랐다. 아니, 그 이전에…….

엄마가 또 부엌으로 가더니 작은 단지를 품어 나왔다.

 
“소금 단지야. 저자는 사기꾼이야!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세 치 혀를 놀려 널 소금까지 받아 데려가려 들잖아! 저런 자를 믿고 집을 떠나겠다고?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누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어라 더 말했지만 나는 사내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내 목표는 고작해야 큰 고개 넘기였다. 저 사내는 수없이 많은 고개를 넘어 여기까지 왔다. 사내가 신은 가죽신은 늘 같은 곳을 오가느라 낡고 헤지지 않았다. 사내의 머리와 옷에 내려앉은 먼지는 세상 온갖 곳에서 쌓였다. 수염은 덥수룩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꼬질꼬질하고 악취가 났다. 사내에게 나는 냄새는 한두 곳에서 묻은 게 아니다. 등짐에 저토록 다양한 물건이 들었을 줄 몰랐다. 도무지 어디다 쓰는지 모를 물건도 보였다. 이대로 집에 머물면 어디서 왔는지 영영 알 길 없는 물건들이었다.

“나 산에서 잘 때 한 번도 같은 데서 잔 적 없어. 늘 큰 고개를 넘고 싶었는데, 매번 기운이 딸려 못 넘었어. 집에 올 적마다 언제쯤이면 저 고개를 넘나 그러면서 왔어.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이제야 알았어. 누나, 저자가 한 말 중 한 가지는 맞아. 나, 한 곳에선 못 살 팔자야. 나는 저자와 갈 거야, 가야 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안 올지도 몰라. 일꾼이 필요해서 날 데려간다며, 가서 소금 도로 뺏어 봐.”
 
“정말이니? 정말로 따라가야겠니?”
 
“응, 누나, 걱정 마, 근사한 장사꾼이 되어서 올게. 누나가 혼인할 때 가져갈 빗이랑 거울도 마련해 줄게.”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누나는 오래도록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그럼, 그냥, 이대로 있자.”
 
“소금은?”

 
누나가 서글프게 웃었다.
 
“내가 저런 자를 말로 어떻게 이기겠니? 이게 좋아. 부모님도 빈손으로 보내는 것보다 마음 편할 테고…….”

 
누나가 내 손을 단단히 쥐었다.
 
“빗이랑 거울? 약속했다?”
 
“응! 마을에서 제일 큰 거울을 갖고 시집가게 해 줄게!”

 
누나가 내 이름을 부르며 와락 끌어안았다. 누나 몸에서 약초 냄새가 났다.
며칠간 얌전히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몸이 근질근질했다. 한밤중에 몰래 방을 나오면 누나가 기다리다 주먹밥을 건넸다. 처음엔 매일 밤 지켜보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누나는 내가 근질근질하는 때를 알았다. 내가 떠나면 약초를 캐 달여 뒀다가 돌아와 엄마나 아빠한테 두들겨 맞은 종아리에 발라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아빠, 엄마, 삼촌, 고모, 고모부, 마을 사람들, 이장까지 모두 우리 집 앞에 빽빽이 모였다. 같이 놀던 동무들은 괜히 쭈뼛거리며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어른들은 모두 날 잘 부탁한다며 사내에게 온갖 먹을 걸 갖다 안겼다. 사내는 걱정 말라고, 장사치로 만들든, 글줄을 가르쳐 여행가가 되도록 돕든, 한몫 똑 부러지게 하는 사내로 자라게 해 주겠다 큰소리쳤다. 다들 고마워했다. 누나만 불안한 눈빛으로 사내를 지켜보았다.
 
한참을 따라오던 부모와 누나도 마침내 돌아가고 얼마 걷지 않아 사내는 잠시 쉬었다 가자며 수풀로 데려가 날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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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장편 [지우전 : 모두 나를 칼이라 했다], [부엉이 소녀 욜란드],
작품집 [원초적 본능 feat. 미소년], [각인]을 출간하고 다수의 공동 작품집에 단편을 수록한 이 인간의 작업 책상에는 컴퓨터, 프린터/스캐너 복합기, 지난 밤 마신 맥주 캔, 고양이가 있다. 네 발 달린 아해가 책상을 오르내리며 키보드를 밟아도 오타는 모두 작가의 책임이라는 게 냉엄한 현실.

오늘도 글을 쓰며 고양이와 키배, 아니 키보드 쟁탈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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