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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쾌지수 확 올린 “에어컨 3시간만 켜라”

채희봉 산업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그제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면 ‘요금 폭탄’이란 말은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도시 4인 가구가 벽걸이 에어컨을 하루 3시간30분 틀면 한 달 전기요금이 5만3000원에서 8만원으로 늘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할 경우 전기소비량이 적은 가구의 부담만 늘리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상위 1%를 위한 부자 감세와 같다”고도 말했다.

 안 그래도 무더위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확 끌어올리는 발언이다. 올해 폭염은 사상 최악인 1994년에 버금갈 정도다. 서울에선 7월 22일부터 오늘까지 이틀만 빼고 열대야가 지속됐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금세 두세 배로 뛰는 전기료가 무서워 멀쩡한 에어컨을 모셔두고 산다. “누진제를 완화해 에어컨 좀 틀게 해달라”는 여론이 빗발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최저-최고 요금의 차이를 12배 가까이 두는 건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그런데 정부가 기껏 내놓은 답이 “전기료 폭탄을 피하려면 3시간30분만 에어컨을 틀라”는 것이다. 가정용 전력은 ‘무조건 줄여야 하는 소비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보다 정책을 관철시킬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마저 느껴진다. 한국의 가정용 전력은 전체 소비 전력의 13%에 불과하다. 가정당 사용량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절반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아끼고 있지 않은가.

 누진제 개편을 ‘부자 감세’로 몰아가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전기는 필수품이다. 개인의 소비 성향보다 식구 수가 소비량을 좌우한다. 가전제품의 수와 용량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도시 4인 가구의 월평균 사용량은 350킬로와트시(㎾h)다. 전체 가구 평균(230㎾h)보다 많아 보이지만 평균 가구원수(2.7명)로 견줘보면 큰 차이가 없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자녀가 많거나 노인을 모시는 집들이 전기료 폭탄을 맞아도 싼 부자들이다.

 누진제에 대한 정부 고민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한전의 엄청난 영업이익도 유연탄값 하락과 삼성동 부지 매각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고, 향후 신재생에너지 투자 재원을 감안하면 전기요금을 함부로 내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낡은 요금 체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합리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산업·업소용과 형평성이 제기되면서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대형 이슈가 될 수 있다. 정부와 한전은 최대한 민의를 경청하고 국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2013년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겠다”고 했다가 역풍을 불렀다. 이로 인해 세법개정안이 누더기가 되면서 면세비율만 기형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정부와 한전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에어컨 3시간만 켜라”는 식의 잘못된 발언으로 혼선을 빚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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