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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킥 스페셜리스트'에서 이젠 어엿한 사장님 된 김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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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은퇴 후 골프웨어 사업을 시작한 김형범(32) [일간스포츠]


"오랜만에 공 차니까 새롭네요.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얼음찜질을 해야 할 거 같은데… 하하"

한때 프리킥으로 국내 프로축구를 호령했던 남자, 김형범(32)이 오랜만에 축구공을 차고 한 말이다.

지난해 1월 조용히 현역에서 은퇴했던 그는 최근 경기도 남양주의 한 축구장에서 중앙일보의 리우 올림픽 기획, 무회전 프리킥 분석을 위해 축구화를 신고 시원하게 공을 찼다. "예전엔 늘 함께 축구공과 함께 했는데 지금은 왠만하면 안 찬다"던 그는 "한 번 뛰면 무릎에 물이 찬다. 몸이 근질근질할 때 아플 각오하고 차는 것이다. 오랜만에 차니까 기분 좋다"며 웃었다.

김형범은 국내 프로축구에선 '프리킥 마술사' '무회전 프리키커'로 통한다. K리그 통산 국내 선수 중엔 가장 많은 프리킥 골(13골)을 터뜨렸다. 특히 2006년 12월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오클랜드(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공에 회전이 없는 '무회전 프리킥' 골을 터뜨려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K리그 통산 175경기에 출전해 35골 24도움을 기록하면서 정확하고 날카로운 프리킥을 장점으로 내세워 자신만의 플레이스타일을 구축했던 김형범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랬던 김형범이 언젠가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감췄다. 울산 현대, 전북 현대, 대전 시티즌, 경남 FC 등에서 뛰고 2014년 태국 부리람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그는 지난해 초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조용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다. 잠시 숨을 골랐던 김형범은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골프웨어 사업을 시작한 그는 "말도 많이 나올까봐 조심스러웠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괜찮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른에 은퇴를 결심했던 김형범은 "2014년 시즌을 마치고 국내 구단에서 몇 군데 제의가 있긴 했다. 무릎을 자주 다쳤다보니 관리를 받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경기를 나가고 훈련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그런 모험을 하면서 구단이나 감독님들에게 부담을 드리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현역 시절 거친 플레이를 하다가 자주 몸을 다쳤다. 2007년 3월 수원과의 경기에서 수비수와 충돌해 오른 무릎 인대와 십자 인대를 다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11월 오른 발목 인대 부상, 2009년 7월엔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던 김형범에겐 늘 부상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는 "돌이켜보면 내 자신한테 소홀했던 것 같다. 프로 선수답게 조금 더 관리하고 신중하게 생활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내가 정말 프로 선수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했던 심영성이 병상에서 "형님도 재활하셔서 뛰는데 저도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 형님이 저한테 희망을 주신 것 같다"는 말에 스스로 더 반성하게 됐다. 더 힘든 고통을 겪은 동생인데 나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 데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컸다. "인생에서 축구를 가장 오래 했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 그는 "축구 말고도 살아갈 방법과 가정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를 먼저 낳고 결혼식을 올렸을 만큼 아내에게도 늘 미안했다. 은퇴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행복하고 좋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네일아트 일을 하고 있는 아내 서규린 씨와 결혼해 아들 민준 군을 낳았고 최근 둘째를 가졌다. 골프에 대해 그는 "운동만 하는 갇혀있는 삶을 살다가 지인의 소개로 골프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남들이 한다고 해서 한두번 해봤지만 골프를 제대로 친 적은 없었다. 축구처럼 역동적이진 않지만 푸른 잔디를 보며 위안도 삼고, 예의와 배려를 중시하는 매력도 느꼈다"고 말했다.

김형범은 스스로 "2006년과 2008년, 유일하게 다치지 않고 시즌을 치렀던 게 기억난다. 반면에 2008년 6강 플레이오프 때 오른 발목을 다치고, 다음 시즌을 거의 통으로 날렸던 게 가장 아쉽다. 그 부상으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자평했다. K리그에서 4개 팀을 거쳤지만 김형범은 전북 현대에 있으면서 가장 빛났다. 2006년부터 11년까지 전북에서 활약하면서 '무회전 프리키커' '프리킥 스페셜리스트'의 명성을 쌓았다. 일부 전북 팬들은 "김형범을 위한 은퇴식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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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범은 "(은퇴식에 대해) 서운하거나 아쉬운 건 전혀 없다. 구단뿐 아니라 팬들이 이야기해주고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언제든 전북 팬들에게 고개 숙일 자신이 있다. 언젠가는 전주성(전북 현대 홈구장인 전주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을 한 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키워준 최강희 전북 감독에 대해선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오랜 기간 함께 했던 감독님이다. 감독님이 원하는 만큼 따르지 못했던 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골프 사업을 하지만 김형범은 언젠가 축구 지도자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는 "지도자 1급까지 따는데 보통 2년, 길게는 3년 걸린다고 들었다. 준비하는 기간동안 가장으로서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없다보니 가정을 이끌고 갈 기둥이 필요해 골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느 정도 안정되면 지도자, 행정 등 축구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 축구는 내가 가장 자신있어하고 잘 아는 종목이니까 꼭 다시 찾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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