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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바이오같은 이종교배에 한국 기업 미래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요약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생태계는 미국의 손안에 있다. 13억 거대인구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바뀌면서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스마트폰과 조선·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follower) 전략으로 선전해온 한국 경제는 최근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지 못한 채 한계점에 다다랐다. 19개월 연속 수출감소는 그 한계가 수사(修辭)가 아닌 현실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외국 과학분야 석학들은 이런 한국경제를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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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레지날드 페너, 알리 자베이, 유룡, 줄리아 그리어.

지난 2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국제 소재워크숍에 참가한 8인의 국내외 석학들을 중앙일보가 한자리에 모았다. 해외 저명 학술지 편집장 등도 맡고 있는 이들은 한국을 절망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바이오와 소재산업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일부 한국 기업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석학들은 한국이 신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지는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와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3D프린터 시대, 대량생산은 옛 개념
한국 우주 태양광 발전 참여 가능
기술적 난제도 ‘발상’ 바꾸면 해결
한국, 신성장동력 선정하기 전에
기초기술 전략부터 단단히 다지길

“어떻게 하면 미래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세계 석학들은 가장 먼저 ‘이종교배(hybridization)’를 강조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을 전혀 다른 분야에 응용해보면 신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로 먹고 사는 삼성이 바이오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을 성공적인 이종교배 사례로 꼽았다.

질리안 뷰리악 ‘케미스트리 오브 머티리얼스’ 편집장(캐나다 앨버타대 화학과 교수)은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나노 크기의 미세한 무늬를 찍어내고 설계하는 기술(patterning)을 이미 확보했다”며 “이 기술을 활용해 바이오 기기를 심장이나 뇌·근육·뼈에 접속한다면 생명 질환·치료 관련 기기를 얼마든지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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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질리안 뷰리악, 폴 바이스, 현택환, 해리 애트워터.

석학들은 신성장 동력에 필요한 혁신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했다. 태양광 발전이 좋은 예다. 많은 기업과 과학자들이 태양광 발전의 효율을 높이려고 매달리고 있지만,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태양광 발전 단가와 화석에너지 발전 단가가 같아지는 시점)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구름이 껴서 햇빛이 약해지거나 태양이 지는 밤이면 에너지를 제대로 생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석학이 제안하는 ‘혁신적 발상’은 뭘까. 해리 애트워터 ACS포토닉스 편집장(캘리포니아공대 응용물리학과 교수)은 집게손가락을 치켜들고 하늘을 가리켰다. 그는 태양광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우주’를 꼽았다. “우주엔 365일 태양이 떠 있고 빛도 강력합니다. 삼성 갤럭시S7 만한 크기의 태양전지를 우주에 설치한다면, 상용화된 태양전지보다 9배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애트워터 편집장은 이런 우주 태양전지판 설치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도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극한의 환경인 우주에서 사용할 제품은 상당한 수준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요한다”며 “한국 첨단 소재기업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 여기에 동참하면 10년 안팎에 우주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건설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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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산업에 뛰어들 때는 근본적으로 바뀌는 ‘소비재’의 기준을 유념해야 한다고 석학들은 조언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재화는 대부분 대량 생산을 통해 제품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이 중 상당수의 상품 가치가 사라진다. 미래 먹거리를 고를 때 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대기업이 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든다며 보청기를 만들고 있다면, 이는 명백한 판단 잘못”이라고 줄리아 그리어 나노레터스 편집위원(캘리포니아공대 기계및 재료과학과 교수)은 말한다. “3D 프린터로 자동차 부품을 인쇄하는 것처럼, 보청기와 같은 물건은 개인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대에 필수적인 배터리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석학들은 리튬과 산소의 화학반응을 이용한 ‘리튬에어 배터리’를 적극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리튬에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5~10배 효율이 높아서, 화학업계에서 궁극의 배터리로 꼽고 있다. 리튬에어 배터리가 나올 경우 현재 전기차가 안고 있는 숙제는 모두 해결될 전망이다. 그리어 편집위원은 “삼성SDI나 LG화학이 혁신적인 미래 먹거리를 찾고자 한다면 리튬에어배터리 디자인과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KAIST를 찾은 석학들은 한목소리로 기초 연구와 미래전략 수립을 주문했다. 신성장동력을 선정하기 전에 원천기술 연구와 미래전략 수립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다. 폴 바이스 ACS나노 편집장(UCLA 재료공학과 교수)은 “한국은 상용화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기초 기술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해리 애트워터 편집장은 미래전략의 부재를 꼬집었다. 그는 “첨단 분야는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에너지도 많이 소비한다. 세계를 선도하는 일부 한국 기업마저 장기적 에너지 전략이 부재하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석학들을 초청한 워크숍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KAIST 김일두 (재료공학과) 교수는“세계 과학자들은 지금 세상을 바꿀 새로운 소재를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며 “이들은 한국 기업과 과학계에 미래를 내다보고 비전을 제시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은 이제 기존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빅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며 “정권이 바뀌면 기존에 세웠던 과학기술 정책이 일순간에 뒤집히는 환경 아래에서는 한국 사회를 먹여살릴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나오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전=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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