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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런웨이, 런웨이를 벗어나다


기발하게 혹은 허름하게
백화점 복도·중세 사원·변두리 중국 식당···색다른 무대 ‘헌팅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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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구찌는 다이애너와 찰스 왕세자가 결혼식을 올렸던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2017 봄여름 크루즈 컬렉션을 열었다. [사진 구찌]

더 새롭게, 더 특별하게. 패션 하우스들의 아이디어 전쟁은 이제 옷이나 가방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패션쇼가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느냐 그 자체로도 브랜드의 창조성은 빛날 수 있다. 런웨이가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종합 예술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운 광경이든 신기한 일이든 혹은 끔찍한 테러 현장까지도 요즘엔 일만 벌어졌다 하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퍼날라지는 세상이다.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더이상 소수의 바이어와 패션 매거진 에디터, VIP에게만 허락되는 폐쇄적인 이벤트가 아니라는 말이다. 과거의 패션쇼는 겉은 그저 화려하게만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치열한 신상품 설명회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좀더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입소문이 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대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가 됐다. 바로 이런 이유로 패션계는 어떤 장소에서 패션쇼를 해야 더 기발하고 특별한 광경을 연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경쟁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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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하바나에서 5월에 열렸던 샤넬의 2016/17 크루즈 컬렉션 피날레 장면. 파세오 델 프라도 거리를 무대로 활용했던 샤넬은 쇼 맨 마지막에 모델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추는 파티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달 4일 프랑스 파리 오트 쿠튀르 쇼 기간 동안 요즘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인 베트멍(Vetements)의 패션쇼가 파리의 유명 백화점인 갤러리 라파예트에서 열렸다.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쇼는 대개 무슨무슨 팔레(Palais, 궁전이란 뜻의 불어) 정도는 되어야 명함을 내밀 판이었는데, 이 당당한 베트멍은 지난 시즌엔 파리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변두리의 허름한 중국 식당에서 쇼를 하더니 이번에는 거꾸로 인파가 몰리는 백화점 복도에서 쇼를 진행했다.

베트멍이라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가 단숨에 유명해진 건 이 브랜드를 이끄는 형제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가 지난해 가을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목되면서부터다.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20대 청년 뎀나 즈바실리아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슈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그는 영민한 선택을 했다.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장인의 상징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 기간에 가장 상업적인 공간인 동시에 기성복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에서 쇼를 진행한 것은 기존 질서의 허를 찌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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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루이비통 2017년 크루즈 컬렉션이 펼쳐졌던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의 니테로이 현대미술관. 건축가 오스카 니메이어가 설계한 원반 형태의 건물은 미래주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기성복 컬렉션의 판매가 시들할 때를 대비해 마련하는 크루즈 컬렉션이나 프리(Pre) 시즌 컬렉션에도 ‘장소의 전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지난 5월 루이비통은 2017년 크루즈 쇼를 위한 장소로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의 니테로이(Niteroi) 현대뮤지엄을 골라 패션계를 놀래켰다. 미국 뉴욕 UN 본부의 공동 설계자로도 잘 알려진 건축가 오스카 니메이어(Oscar Niemeyer)의 설계로 1996년에 완공된 이 공간은 흡사 SF 영화 속 비행 접시 모양을 하고 있어 루이비통의 디자이너 니콜라스 제스키에르가 창조한 미래적인 컬렉션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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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패션쇼장으로 선택한 이유를 “런던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찌는 한 술 더 떠 다이애너와 찰스 왕세자가 결혼한 장소로 유명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2017 봄여름 크루즈 컬렉션을 진행했다. “역사란 가장 쿨한 개념이죠. 웨스트민스터는 이 도시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은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라고 해야 할까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영국 일간지 이브닝 스탠다드에 이렇게 쿨한 소감을 남겼다. 구찌는 이로써 11세기에 지어진 이래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이 중세의 사원에서 패션쇼를 개최한 첫 번째 브랜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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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2016~17 크루즈 컬렉션이 열렸던 날 쿠바 하바나 시내에선 초대 손님들을 태운 1950년대 빈티지 클래식 자동차들의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샤넬이야말로 패션계 장소의 전쟁을 부추긴 프런티어라 불릴만 하다. 샤넬 크루즈 컬렉션은 최근 몇년 간 미국 달라스를 비롯해 잘츠부르크, 에딘버러, 상하이, 서울 등 말 그대로 지구를 돌며 패션쇼를 선보여 왔다. 지난해 서울에 이어 올해 샤넬이 점 찍은 곳은 바로 쿠바의 하바나다. 지난 5월 하바나에서 열린 샤넬의 2016/17년 크루즈 컬렉션에선 쿠바를 상징하는 50년대 빈티지 클래식 자동차들이 아름다운 파스텔 색을 입은채 전 세계에서 초대받은 600여명의 손님을 태우고 시내 한복판에서 한바탕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클락션을 빵빵 울리면서 말이다. 덕분에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다.

이 광경은 각국에서 온 셀레브리티들과 소셜 인플루언서들의 SNS 계정을 타고 전 세계에 실시간 전송됐다. 샤넬 패션쇼를 홍보하는 동시에 쿠바의 현재 이미지를 전파하는 데도 톡톡히 역할을 해낸 셈이다. 54년간 단절되었던 미국과 쿠바의 재수교 직후 마치 잠자는 공주 하바나가 이제 막 깨어났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자명종 같은 행사였다고 할까.

몇 해 전 영국 에딘버러 링리쓰고(Linl ithgow Palace) 성에서의 샤넬 공방 컬렉션에는 직접 가볼 기회가 있었다. 마치 팀 버튼의 영화 세트장인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중세 스코틀랜드를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은 무대 세팅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세시대 성 안 뜰에 횟불을 피워놓고 진행한 모델들의 워킹을 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곳이 21세기인지 13세기인지 혼돈스러울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패션쇼가 끝난 후 거대한 중세식 막사에 마련된 디너는 사슴고기·토끼고기를 투박한 나이프와 포크로 먹으며 청동으로 만든 듯한 중세식 글래스에 와인을 따라 마시는 식이었다. 마치 영화 ‘브레이브 하트’나 ‘킹덤 오브 헤븐’에 나오는 중세 귀족 코스프레를 하듯 말이다! 샤넬의 패션쇼는 이 20분간의 쇼 하나를 위해 영화 촬영 규모의 적잖은 스태프들이 해당 도시에서 여러 달 머물며 조사와 기획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도 지난해 샤넬 덕분에 서울 동대문의 DDP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류 트렌드로 서울이 주목받으며 급부상하기 시작할 때 샤넬은 아주 시기적절하게 패션쇼 장소로 서울을 지목했고 전 세계는 샤넬쇼를 통해 서울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미국과의 재수교 덕에 그간 세계 속에 고립되었던(그래서 아마도 패션계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곳이었을) 하바나애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급증했을 때 샤넬은 또 전략적으로 쿠바를 패션쇼 무대로 낙점했다고 생각한다. 이걸 보면 패션 브랜드가 장소를 고를 때는 단순히 쇼가 벌어지는 무대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이제는 그 도시의 ‘시장성’을 보고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궁금하고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 곳, 그래서 앞으로 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곳, 그 곳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느낌이랄까. 지난해 서울이 그랬듯 샤넬이 컬렉션을 개최한 도시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긍정적인 홍보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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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4가의 세운대림상가 건물 내 복도에서 패션쇼를 열었던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 스티브 J&요니P.


국내 패션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시즌 디자이너 스티브J & 요니P는 을지로 4가의 세운대림상가 건물 내 복도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최근 글로벌 패션계로 고속 진입하고 있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도 영등포의 폐공장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패션쇼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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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에 위치한 대선제분 폐공장에서 독특한 퍼포먼스와 함께 쇼를 진행했던 한국의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


정기 패션쇼가 아닌 이벤트적 성격의 패션 프레젠테이션 행사에도 패션 브랜드들은 장소를 비밀에 부치면서 서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남들이 손대지 않은’ ‘특별한’ 그리고 ‘발견되지 않은’ 장소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1970년대 정미소였다는 성수동 대림창고 같은 곳이나 연남동의 허름한 주택가 등도 이런 브랜드들의 핫한 장소 유치 경쟁으로 유명해진 경우다. 지난해 말 에르메스도 성북동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을 패션쇼 무대로 골랐는데, 여기엔 다른 브랜드들이 기존에 수없이 진행했던 장소가 아닌 어딘가 특별한 곳이라는 이유도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패션쇼에서의 ‘장소’란 분명히 물리적 환경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해당 컬렉션의 테마를 가장 잘 표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목적도 중요하겠지만 더 나아가 장소가 가지는 신선함과 특별함까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끌어오고자 하는 마케팅의 전략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요즘엔 사람이든 장소든 물건이든 포토제닉해야 살아남으니까!

글=강주연 제이콘텐트리 영상사업실장
사진=각 브랜드
 
뒤집음의 미학, 江南人流(강남인류) 새로운 시작

평소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연히 시 창작 수업 내용을 시 형식으로 정리한『이성복 시론』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시’와 ‘시인’이라고 쓰여진 자리에 ‘기사’와 ‘기자’를 대신 써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성복 시인은 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상정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다 하지요. … 독자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러닝 소매에 머리를 집어넣으려는 아이나 뭐 다르겠어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피상적인 사고밖에 안 나와요. … 진정성을 가지고 뒤집으면, 모든 게 뒤집어져요. … 시가 안 되면 나에게 뒤집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시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시론(詩論)에 대해 늘어놓는 건 오늘(10일) 독자 여러분들에게 처음 선보인 중앙일보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섹션 江南人流(강남인류)를 만든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소속 기자들의 마음가짐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언론환경을 탓하거나, 거꾸로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신문이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는 고루한 접근을 하는 대신 오로지 독자가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제호 江南人流에서 江南(강남)은 지역적 의미를 넘어 차별화한 생활 방식을 나타내는 보통명사로 썼습니다. 결국 江南人流란 남다른 취향과 눈높이를 가진 사람들(人)을 위해 일류(一流)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담은 신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기존의 江南通新과 번갈아가며 격주로 발행하는 江南人流,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안혜리 부장·라이프스타일 데스크 ahn.hai-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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