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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② 와이탄, 유럽처럼 모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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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와이탄은 1920~30년대에 지은 유럽풍 건물이 죽 늘어선 거리다.


“와이탄(外灘)을 걸으며 런던 유학시절을 떠올렸어요. 앞으로 런던이 그리울 땐 상하이에 오려구요.”
출판사 에디터 S와 나는 지난 봄부터 상하이 여행책을 만들고 있다. 나보다 한발 앞서 상하이에 다녀온 그녀는 이 한마디와 함께 우리 책에 ‘유럽처럼 여행하는 상하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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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조계 시절 건물 옥상에는 이제 오성 홍기가 나부끼고 있다


와이탄은 상하이를 반으로 가르는 황푸강(黃浦江)의 서쪽에 있다. 정확히는 1.5에 이르는 강변대로로, 1920~30년대에 지은 유럽풍 건물이 죽 늘어선 거리다. 당시는 상하이가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의 공동 조계지였던 시절이다. 중국 사람들은 이곳을 ‘외국인이 점렴한 물가’라는 뜻에서 와이탄이라고 불렀는데, 이 거리는 지금도 80년 전 그대로다. 1호부터 33호까지 횡렬종대로 늘어선 와이탄의 건물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유럽에라도 온 듯하다. 물론 모든 건물 옥상에 ‘내 땅이오’라고 외치듯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긴 하지만. 
 

와이탄의 시계탑 빅칭은 런던의 빅벤을 본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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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의 여러 건축물 중에서 한때 런더너였던 에디터 S를 자극한 것은 빅칭(Big Qing)이었다. 빅칭은 상하이 세관 꼭대기에 있는 시계탑이다. 이 건물은 1927년 완공됐고, ‘칭(Qing)’은 청나라를 뜻하는 중국어에서 따왔다. 명칭과 4면에 모두 시계가 박힌 외양에서 보이듯 빅칭은 런던 시계탑 빅벤(Big Ben)에 대한 오마주다. 댕­댕­댕­. 15분마다 황푸강변에 울려 퍼지는 빅칭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20세기 와이탄과 21세기 와이탄을, 런던과 상하이 사이를 오갔을 것이다. 
 

1923년 건립된 와이탄 12호 푸동발전은행. 와이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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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 시절 세계 각지를 다녔지만 유럽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S의 말을 빌린 것은 이 때문이다. 와이탄은 내게 풍문으로 듣던 유럽풍을 보여주었다. 고전주의 건축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건축가의 개성을 반영한 네오 클래식(Neo Classic), 미식의 척도라는 미쉐린 레스토랑, 말로만 듣던 삼단 트레이의 애프터눈티 등등. 아, 그리고 재즈 카페도 여럿 있다. 1930년대  와이탄은 아시아의 뉴올리언즈라 불리는 재즈의 도시였다.
 

옛 영국 조계지였던 와이탄 북쪽에는 영국의 마을 교회 건축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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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은 언제부터, 왜 조계지가 되었을까? 예상외로 와이탄이 멋지고 탐나서 영국 사람들에게 뺏긴 것은 아니었다. 1843년 난징조약으로 상하이가 강제 개항하면서 서양인들이 앞다퉈 밀려들어왔다. 상하이 사람들은 이때 푸른 눈에 금발을 한 외국인을 처음 봤다. 세상에 그런 인간의 형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대부분이었을 거다. 외국인에게 쏟아진 관심은 슈퍼스타급이라 길을 지나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 영사는 결국 외국인만 거주하는 조계지 개설을 제안했다.

상하이 관청에선 외국인들을 규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합의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기가 들끓는 진흙땅을 내주었다. 농사에도 어업에도 적합하지 않은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을 벌러 온 외국 사업가들은 이 땅이 장차 세계적인 항구가 될 것임을 알아봤다. 와이탄 영국에는 1845년 영국 영사관을 시작으로 1930년대 말까지  은행, 무역 회사, 관공서, 호텔 건물이 가득 들어섰다. 조계지는 와이탄 영국 조계를 중심으로 미국 조계, 프랑스 조계, 공공 조계로 점점 확장되어 1914년에는 1845년보다 무려 18배나 커졌다. 상하이는 그렇게 식민 도시가 되어갔다. 
 

와이탄에는 세계적인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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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상하이 사람들이 조계지 시절을 암흑기로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1930년대 상하이는 혼란스러운 무법 도시였지만, 반면 여러 문화가 충돌하며 자유로운 사상이 싹튼 중국 최초의 모던 시티였다. 상하이에서 이 시기를 ‘황금 시대’ 혹은 ‘올드 상하이’라 하는데, 이를 테마로 한 상점이나 카페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시기 와이탄에는 중국 전역, 세계 각국에서 사업가, 여행자, 모험가, 예술가가 모여들었다. 특히 호텔에 명사들이 남긴 흔적이 많다. 1936년 3월 찰리 채플린은 모던타임즈의 여배우 파울레트 고다드와 함께 와이탄 20호 캐세이호텔에 묵었다. 현 페어몬트피스 호텔(Fairmont Peace Hotel)의 잉글리시 스위트룸은 그가 묵었던 당시 그대로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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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 북쪽의 상하이 우편 박물관. 와이탄 주변은 웨딩 화보 촬영지로 인기다.


페어몬트 피스 호텔 바로 옆은  팰리스 호텔(현 스와치 아트피스 호텔)이다. 1927년, 국민당 총재이자 타이완 총통을 지낸 장제스(蔣介石)가 쑹메이링(宋美齡)과 결혼식 피로연을 올린 곳이다. 반면 루쉰은 남루한 행색으로 이 호텔에 갔다가 문전 박대를 당하곤 그 경험을 서양놈 따까리라는 작품으로 쓰기도 했다.
 

누군가는 런던을 떠올렸다는 와이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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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 건물 대부분은 여전히 호텔과 은행, 고급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는 중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틈이 거의 없다. 장조지나 조엘 로부숑 같은 미쉐린 셰프의 레스토랑, 오후 2시면 일제히 시작되는 애프터눈티를 즐기는 것이 와이탄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미술 애호가라면 와이탄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자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푸동발전은행, 현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상하이 갤러리 오브 아트(SGA)도 여행 일정에 추가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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