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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포트리스(The fortress) #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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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리스(The fortress) #1. 프롤로그

낡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한 명은 골프웨어를 입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60대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40대 남자였다. 골프웨어를 입은 남자가 자신 앞에 있는 소주잔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원진아, 우리가 같이한 지 얼마나 됐노?”
 
원진이라 불린 정장의 남자가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포근한 미소로 대답했다.
 
“사장님을 만난 게 열일곱 살이었으니까, 거의 30년이죠.”
 
사장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비웠다. 원진은 소주병을 들어 사장의 술잔을 채웠다. 그걸 빤히 바라보며 사장이 말했다.
 
“마이 됐네. 내도 마이 살았고.”
 
원진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직 일흔도 안 되셨는데 많이 사시다니요... 요샌 일흔은 넘어야 노인으로 취급 한다더군요...”
 
사장은 테이블에 놓여있는 신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시국에 이만큼 살았으면 장수한 기다.”
 
신문에는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벌어진 유혈사태의 소식이 헤드라인으로 떠 있었다. 원진은 픽 웃으며 말했다.
 
“이젠 생활인데 아직도 대서특필이군요. 다들 관심도 없는데.”
 
“정부 입장이야 계속 저리 떠들어야 시민들이 겁먹고 시민군에 가담하는 일이 없제. 이기 다 그놈의 전염병 때문 아니겠나. 병 때문에 전부 쳐 돌아삐리갖고 살인이나 해 싸코 폭동이나 일으키고…. 그래서 우리 사업도 망한기다. 맞제?”
 
원진은 회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에 잠긴 듯 술잔을 만지작거리다 단숨에 비운 원진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러신 겁니까?”
 
원진의 입가엔 희미하게 미소가 남아있었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사장은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집은 잘 지어졌나? 애들 말로는 요새처럼 지어 놨다 카든데.”
 
“네. 원하는 대로 잘 나왔어요. 집들이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맞나.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 내는 못 보겠지?”

 
원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처음에 했던 질문에 이어서 물었다.
 
“사업이 더 이상 안 될 거, 사장님이나 저나 모두 알았잖아요.”
 
사장은 원진의 빤히 바라보다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사 마 남사스러버서 내 입으로 말하기 쪽팔리긴 한데… 니는 내가 거의 아들처럼 키웠다 아이가. 삼십 년을 의지하고 지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만둔다고 카니 엄청 서운하더라고. 내하고 상의라도 한마디했으모 싶었는데 한 마디 말도 없다가 갑자기 은퇴하겠다 카니까….”
 
사장은 혼자 씁쓸한 미소를 짓다 말고 고개를 가로젓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기래서 그랬다. 버림받은 것 같아가.”
 
“그럼 말씀을 하시지...”

 
사장이 원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니를 모르나? 말했으면 뭐 달라졌겠나?”
 
“최소한 이렇게 뵙는 일은...”

 
사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니 말이 맞다. 니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고?”
 
“사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사장이 씩 웃었다.
 
“그지. 내가 제일 잘 알지.”
 
원진은 사장의 술잔을 테이블 한가운데로 끌어와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 필터부터 잔에 꽂았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야, 내가 이 향 피우는 걸 직접 다 보네. 이래두면 얼마나 있다 꺼지노?”
 
“1분입니다.”
 
“억수로 짧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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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말없이 연기를 뿜고 있는 담배를 바라보았다. 필터에서부터 젖어든 소주는 몸뚱이를 타고 오르다 불꽃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담뱃불이 순간적으로 잠깐 밝아졌다가 꺼졌다. 원진은 사장의 목을 향해 큰 칼을 휘둘렀다. 사장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잘린 사장의 머리가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져, 먼저 쓰러져 있던 다른 시체에 닿았다.
두 사람이 앉아있던 식당 바닥엔 세 구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곳곳에 칼과 권총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하얀 벽에는 칼질로 튄 핏물이 형이상학적인 형태로 뿌려져 있었다. 칼 손잡이를 손수건으로 닦은 원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고통은 없었을 겁니다.”
 
그는 목이 잘린 채 앉아있는 사장을 향해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하고는 식당 문을 열고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마자 최루탄 가스 냄새가 원진의 코와 눈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거의 매일을 맡다 보니 웬만해서는 이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원진은 건너편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그때 어디선가 거칠게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원진은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무리인지 알 수 있었다.
 
놈은 가까이 오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원진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원진은 고개를 옆으로 숙여 쇠파이프를 가볍게 피하고는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지만 살인을 하면 처벌을 받는 애매한 시기였기에 쉽게 죽일 수도 없었다.
주먹을 맞고 옆으로 쓰러진 놈은 괴로워하면서도 원진을 노려보며 다시 일어나려 했다.
 
분노로 충혈된 눈, 살점이 떨어져 나가 너덜거리는 주먹, 금이 간 이빨.
보기에는 괴물처럼 보였지만, 극도의 흥분 상태가 지속되어 이성이 마비되었을 뿐, 원진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이게 모두 그놈의 신약 때문이었다. 메르스처럼 급속도로 퍼지던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급히 만든 신약의 부작용이었다. 놈은 또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원진의 발을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
 
손을 턴 원진이 차 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귀찮아진 원진은 재빨리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문을 닫자마자 또 다른 놈이 창문에 얼굴을 들이받으며 두들겨댔다. 출발하는 차에 떠밀려 바닥을 굴렀다가 벌떡 일어나 쫓아왔지만 차의 속도를 따라잡을 리가 만무했다.
 
원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시내 곳곳에 불타고 있는 차를 피하며 외곽으로 빠졌다. 시내 곳곳에서는 방패와 진압봉으로 무장한 계엄군과 빨간 띠를 두르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민군이 싸우고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들은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분노한 놈들이 달려들면 힘을 합해 물리치고는 또 다시 싸우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그런 과격하고도 괴상한 모습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휘말리면 골치 아프니까 피하는 동네 싸움 정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원진은 혀를 차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력을 올렸다.
집에 가려면 계엄군의 검문소를 최소한 세 개는 지나쳐야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원진에게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곳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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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중앙대학교 졸업. IT 회사 입사, 경영기획, 전략기획, 사업제휴 등의 다양한 직무 경험.
1999년 포털사이트에 <왼팔> 연재. 2001년 출간. 이후 소시오패스를 전면에 내세운 액션 스릴러 <Business is business>(2010), <유령 리스트>(2015)로 액션물 출간.
 
2001.08 「왼팔」
2003.03 「왼팔II」
2005.07 「적경」
2008.06 「피해의 방정식」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
2010.01 「위험한 오해」 (한국 스릴러문학단편선II)
2010.10 「Business is business」
2013.11 「사이비」 (원작 : 연상호)
2014.03 「조난자들」 (원작 : 노영석)
2015.08 「유령 리스트」
2015.10 「살인의 기원」 2015 부산영화제 북투 필름 피칭작 선정
2016.04 「왼팔 rebuild」
2016.04 「블랙러시안」, 「증오」, 「복수의 미학」 (맨 헌터 태성 시리즈)
2016.05 「십이 죄」
2016.07 「세일즈 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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