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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9년 묵은 액젓이 최고라는데, 구할 데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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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액젓을 생각하면 감칠맛보다 비린내가 먼저 떠오른다. 모 TV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까나리액젓을 벌칙 소재로 삼는 복불복 게임에서 출연자의 고통을 배가시키기 위해 멸치액젓을 사용하고, 출연자들은 냄새가 괴로운 듯 인상을 찡그린다. 하지만 발효 숙성이 잘된 멸치액젓은 비린내가 거의 없다. 구역질날 정도로 비린내가 난다면 발효가 잘못됐거나 개봉 후 산패가 진행된 것이다. 출연자들이 헛구역질을 하는 건 냄새보다 액젓에 20% 이상 포함된 소금의 짠맛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멸치액젓을 흔히 짙은 커피색으로 떠올리는데 실제론 숙성이 될수록 진한 붉은색을 띤다. 숙성할 때 물이 들어가거나 잡균이 침입했을 때 혹은 숙성이 덜 된 경우에 검은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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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액젓과 비교해 까나리액젓의 맛과 향은 약하다. 보통 때 복불복을 까나리로 하는 이유다. 까나리는 농어목(멸치는 청어목) 생선으로 한여름에 주로 잡힌다. 크기는 최대 20cm까지 자라고 소금에 절여 숙성하는 것은 멸치액젓과 같지만 맛을 내는 성분이나 향은 멸치액젓에 비해 떨어진다. 대신 향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근래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에 맞춰 멸치액젓도 향이 여린 것을 생산하는 이가 있는데 바로 경주 감포에서 50년간 멸치액젓을 만들어 온 김명수(78) 사장이다. 소금 농도에 따라 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내륙과 바닷가에 사는 소비자를 위한 두 종류로 나눠 생산한다. 소금 농도 23% 이하로 멸치액젓을 담그면 꼬릿한 향이 나 비린내에 익숙한 바닷가 사람들이 선호한다. 소금 농도를 24~25% 정도로 높이면 상대적으로 비린내가 덜 나 내륙 사람들이 좋아한다. 소금 농도에 따라 작용하는 미생물이 달라 발생되는 차이인 듯하다.

멸치에 소금을 뿌리고 시간을 더해 만드는 감칠맛 조미료가 멸치액젓이다. 만드는 방법은 콩과 소금으로 만드는 간장과 비슷하다. 한반도의 삼면 바다에서 멸치가 나고 액젓을 담근다. 어느 지역, 어떤 때에 잡히는 멸치인지는 중요치 않다. 숙성 기간이 멸치액젓의 맛을 좌우한다. 이는 김명수 생산자뿐 아니라 충남 광천에서 수십 년간 멸치액젓을 생산하고 있는 광천수산의 고성규 대표 또한 공통된 의견이다.

싱싱한 멸치에 20~25%의 소금을 가해 숙성한다. 소금은 멸치가 상하는 것을 막으면서 삼투압 작용을 통해 세포벽을 파괴한다. 세포벽 안에 있던 핵산과 아미노산이 용출된다. 멸치에 있던 소화효소와 미생물이 단백질 등 고분자 물질을 분해해 맛을 내는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향기 성분이 생성된다. 간장도 오래 묵은 것이 맛이 나듯 멸치액젓도 오래 묵을수록 글루탐산이 증가해 숙성 9년차에 최대치를 이룬다. 하지만 재고와 자금 문제로 인해 시판되는 멸치액젓 대부분은 1년 6개월 정도 숙성한 것이다.

다만 감포의 김명수 생산자는 재고 순환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3년 숙성된 것을 낸다. 액젓은 발효 기간이 길고 희석하지 않은 것이 맛이 좋지만 마트에서 저렴하게 파는 것 대부분이 소금물에 희석하거나 혹은 멸치액젓 찌꺼기에 소금물을 가해 반복 추출한 것들이다(수입 피시 소스도 대부분 희석액이다). 소금물(혹은 MSG)을 더해 한 병을 두 병으로 만들어도 국가에서 정한 식품 공정상 기준인 총 질소 함량 1.2%를 충족시킬 수 있어서다. 법정 기준치가 낮은 걸 악용한 것이다. 멸치액젓을 1년 이상 숙성시키면 총 질소 함량이 2%가 넘는다. 3년 이상 숙성시키면 4% 가까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질소 함량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맛 성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 숙성시킬수록 아미노산 및 핵산이 증가하고 향은 부드럽게 변한다. 하지만 희석한 제품들은 감칠맛보다는 짠맛이 도드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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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멸치젓갈은 안초비(anchovy)다. 멸치를 손질하고 염장한 다음 올리브유에 담근 것이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지만 발효와 숙성 과정을 더 거쳐 액젓으로 만든 콜라투라(colatula)도 있다.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이름만 달리할 뿐 멸치에 소금을 더해 피시 소스(fish sauce)를 만들고 다양한 요리에 이용한다. 동남아의 대표적인 음식인 쌀국수는 피시 소스의 감칠맛을 이용한 대표적인 요리라 할 수 있다. 고기에서도 감칠맛이 나오지만 피시 소스는 글루탐산 외에 핵산 등 다양한 맛내기 성분이 있어 맛이 훨씬 풍부하다. 쌀국수 국물 맛이 입에 착착 붙는 이유는 서로 종류가 다른 감칠맛이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식문화에서 멸치액젓은 외국과 달리 용도가 주로 김치에 국한된다. 독립적인 조미료라기보다 김치를 담글 때 쓰는 발효 보조제로 쓰인다. 이는 간장이라는 훌륭한 조미료가 있기 때문이지만 음식문화가 소스의 다양성까지 추구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은 탓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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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액젓은 김치 발효 보조제뿐 아니라 쌀국수·열무김치 국수·쇠고기 미역국(사진 위로부터) 등 다양한 음식에 감칠맛을 더해 주는 조미료로 활용 가능하다. [사진 김진영]

필자는 여름이면 깍두기와 열무김치를 종종 담근다. 국수가 생각날 때 잘 익은 열무김치 국물에 멸치로 육수를 내 국수장국을 만들곤 했는데 이번에는 방법을 바꿨다. 마른멸치를 끓여 육수를 내는 대신 멸치액젓을 희석해 장국을 만들어 봤다. 김치의 새콤한 맛과 의외의 궁합을 보였다. 살짝 풍기던 멸치액젓의 꼬릿한 향은 김치향 뒤에 숨고 감칠맛이 국물에서 우러났다.

쇠고기 미역국을 끓일 때 간장과 같이 사용하거나 멸치액젓만으로 간을 하면 국물에 감칠맛이 돌면서 시원한 맛까지 난다. 고수와 쌀면만 있으면 쌀국수를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 3년 숙성한 멸치액젓으로 깍두기를 담가 봤더니 향이 달랐다. 김치를 담가 바로 먹으면 젓갈 향이 강한데 3년 숙성 멸치액젓은 여러 재료들과 섞여 향이 은은해졌다. “멸치액젓은 시간이 만드는 훌륭한 조미료”라던 김명수 생산자의 말이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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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 식탁’ 대

지난 4월, 한 달에 한 번 제철 식재료를 소개하는 모임인 ‘한 그릇에 담다’라는 곳에서 멸치를 주제로 요리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김성남 셰프가 멸치액젓으로 밥을 볶고 다른 재료와 비벼낸 요리가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멸치액젓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엿본 자리였다. 필자가 다년간 멸치액젓을 조리에 사용해 본 경험으로는 처음부터 간장 대용으로 쓰는 것보다는 간장 보조로 사용하면서 익숙해졌을 때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비린내는 조리 과정에서 사라지고 감칠맛만 오롯이 남는다. 음식을 조리할 때 슬쩍 넣은 멸치액젓 한 방울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음식상식 붉은 색 띤 멸치액젓으로 소량 구매해야

발효가 잘된 멸치액젓은 붉은 색을 띤다. 개봉 후에는 산화가 일어나 색이 검게 변할 수 있다. 좋은 멸치액젓을 사려면 각 단위 수협 제품이나 지자체에서 추천하는 상품으로 고르는 게 방법이다. 가급적 소량으로 자주 구매하는 것이 좋다.

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 식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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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