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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조는 매처럼 병든 호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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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3번기 1국> ●·커제 9단 ○·스웨 9단

10보(127~147)=하변 패가 발생한 장면을 빗대어, 스웨가 즐겨 읽는다는 『채근담(菜根譚)』 중 견디는 것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늘여볼까 싶다. 『채근담』은 책 제목 그대로 식물의 뿌리를 씹어 음미하는 것 같은 이야기가 많다. 그 안에는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이란 문장도 있는데 ‘매는 조는 것처럼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것처럼 걷는다’는 뜻이다.

27부터 47까지, 커제의 태도가 그렇다. 형세는 커제의 우위가 분명한 상황이고 승부의 흐름이라는 게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이치를 따르게 마련인데 앞서 가는 커제의 움직임은 조금씩 더 느슨해진다(31, 37, 46…▲ / 34, 44…28). 조는 듯 앉아있는 매는 맹금이요, 병든 듯 걷는 호랑이는 맹수다. 언제든 사냥감을 덮쳐 제압할 수 있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지만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게 고수의 풍모다.

커제의 행마는 오직 하나의 원칙만을 유지한다. 두텁게 조금 더 두텁게. 박영훈 9단은 46 때 흑이 ‘참고도’의 진행을 밟았으면 백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는데 커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든 호랑이처럼 느릿느릿 47로 한걸음 내디뎠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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