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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선돼도 의회·여론 신경 써야, 트럼프 외교정책 넘어야 할 산 많아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신고립주의가 과연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 기조가 될 것인가. 공화당 주류 후보들을 따돌리며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연이어 제기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실효성 의문,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등은 분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켜온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접근법이다.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도 경험보다는 판단이 문제라며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해묵은 이라크전쟁 찬성 전력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켰고, 자신의 외교정책 슬로건을 레짐 교체(regime change) 반대로 내세웠다. 이라크전쟁 실패 이후 미국의 국가 건설(nation-building-at-home)을 강조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임 성공 또한 이러한 미국 민심을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럼프와 샌더스 식의 외교정책 비전은 신고립주의(neo-isolationism)가 아닌 비개입주의(non-interventionism)에 보다 가깝다. 신고립주의가 국제 문제 관여 정책을 철폐하고 오직 미국 국내 문제에만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비개입주의는 미국의 보편적 가치를 국제 관계에 적극 투영하기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 삼아 선별적이고 소극적인 개입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무역, 미국의 힘을 중시해 온 공화당 밑바닥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기에 트럼프의 한국 핵무장 주장 혹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언급은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오히려 언론과 외교 전문가들의 비판만 자초했다. 애초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사실과 다른 선동적 주장 때문에 백인 보수층이 트럼프에게 열광하게 된 것도 물론 아니다. 오히려 고립주의 성향이 강한 중서부 백인 중하층을 제외한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들에게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 제기가 미국의 자존심을 구기는 불평 정도로 들렸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극단적 제안들을 제외한 기타 신고립주의 정책 논의들조차도 이라크 주둔군 단계적 철수, 시리아 사태에 대한 소극적 개입, 전략적 인내라고 불리는 북한정책 등으로 대변되는 오바마 행정부 8년의 안보정책 행보와 크게 다르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분쟁과 갈등에 무모하게 개입하지 말고 중산층 몰락과 이민 개혁 등 미국의 국내 현안들에 집중하기 원하는 미국 국민의 정서를 힐러리건 트럼프건 우선 따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2016년 대선 이후 기존의 오바마 행정부와는 180도 상이한 미국 안보정책 변화가 나타날 현실적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면 미국의 무역정책은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것인가? 무역정책은 셈법이 훨씬 복잡한데 2015년 하반기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위해 무역진흥권한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아시아 지역 무역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중국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든 힐러리든 대권을 위해서는 꼭 승리해야 하는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미시간 등 중서부 격전주(스윙 스테이트) 유권자들이 자유무역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TPP 반대(No! TPP)” 구호는 단골 메뉴였다.


문제는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무역 이슈는 의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후 비준 과정에서의 의회 영향력을 의식해 대통령의 무역진흥권한이 효력 만료되기 하루 전날 타결됐다. 2005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한 반발로 중국 수입품에 27.5% 관세를 부과하려던 시도는 상원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넘어설 60표를 확보하지 못해 아예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했다. 일본과의 무역 역조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화된 상태이고, 한국과의 FTA 재협상 문제는 객관적인 필요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자유무역에 여전히 방점을 둔 공화당 하원과 보호무역을 거부하는 작은 주들의 영향력이 큰 미국 상원의 어젠다로 재론되기 쉽지 않다. 물론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무역 문제를 둘러싼 의회·행정부 관계 및 워싱턴 정당정치가 복잡해질 것이다. 우선 보호무역정책을 들고 나올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은 보호무역 반대와 소속당 대통령 지지라는 상반된 입장 사이에 끼어 난감할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호무역 정서가 강하지만 라이벌 공화당의 비호감 트럼프 대통령 손을 들어 주기에는 정치적 위험이 너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대선 이후 미국 무역정책이 보호무역주의로 돌변하기에는 미국 국내 정치적 시스템과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대통령 중심제이긴 하지만 미국의 경우 대통령도 의회 및 여론의 지지와 견제 사이에서 정책 방향을 늘 고민한다. 분노 정서로 만들어진 트럼프 대권 가능성과 새로운 외교정책 논의가 실제로 미국 정치에서 현실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70%에 가까운 미국 국민이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현직 오바마 대통령 지지도는 50%를 넘나드는 역설적 상황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11월 8일까지 남아 있는 약 100일이 중요하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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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