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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프로들이 만들고 참여하는 가장 공정한 대회

98회 PGA 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뉴저지 스프링필드 발투스롤 골프장. 이 대회는 초창기 B급 골프장에서 열렸으나 21세기 들어 최고 명문 코스에서 4대 메이저 중 최고 선수들이 겨루는 무대가 됐다. 성호준 기자


일본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송영한(25·사진)은 28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이저대회에 출전했다. 미국 뉴저지주 스프링필드의 발투스롤 골프장에서 시작된 PGA 챔피언십이다. 그는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와 로리 매킬로이 옆에서 연습을 하니 현실 같지 않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이상한 점도 있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공을 치다 보면 프로 같지 않은 선수들도 더러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이 골프 프로이기는 하다. 그러나 투어 프로가 아니고 클럽 프로다. 골프장을 관리하거나 레슨을 해주는 프로들이다. 투어 프로가 되려다 실패한 사람들도 많다. 아무래도 골프를 치는 능력에서는 투어 프로에 미치지는 못한다. 송영한 같은 투어 프로가 보기에는 프로 같지 않은 선수들이다. PGA 챔피언십에는 그런 사람들이 매년 20명씩 나온다. 약간 기가 죽어 있다. 연습그린에서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도 주로 구석에 있다. 29일 최경주와 한 조로 경기한 클럽 프로 토미 샤프는 7오버파를 쳤다. 그리고는 최경주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성적은 대부분 좋지 않다. 실력도 부족한데다 메이저대회에 나와 느끼는 긴장감도 투어 프로에 비해 훨씬 클 것이다. PGA 챔피언십에서는 이 스무 명이 거의 최하위를 채운다. 만약 클럽 프로 중 누군가 컷 통과할 것 같으면 다른 클럽 프로들이 쫓아와 응원을 할 정도다.


PGA 챔피언십에 클럽 프로들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PGA 챔피언십을 개최하는 PGA(Professional Golfers Association)는 투어 프로들이 아니라 일반 클럽 프로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는 것이다.


1968년까지는 투어 프로들도 PGA 소속이었다. 그러나 TV시대가 되면서 프로 골프 대회가 커다란 돈줄이 됐고 소수인 투어 프로들의 힘이 세졌다. 투어 프로들은 “재주는 투어 프로들이 넘고 돈은 일반 프로들이 가져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다 1968년 독립해 ‘PGA 투어’를 만들었다. 투어 프로들은 기존 스폰서들을 설득해 대회 운영권도 가져갔다. 그러나 PGA 챔피언십은 주최 자체가 PGA여서 어쩔 수 없었다. PGA 챔피언십은 메이저대회로 PGA 투어에 남았다.


PGA와 PGA 투어는 다른 것이다. PGA는 “PGA 투어와 우리를 혼동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국 미디어에서는 아직도 이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PGA 챔피언십이 시작된 해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6년이다. 미국의 프로골퍼들이 그들만의 협회(미국 PGA)와 대회(PGA 챔피언십)를 만들었다. 당시는 아마추어리즘이 지배하는 시기였다. 스포츠로 돈을 버는 프로골퍼들의 위상은 매우 낮았다. 당시 4대 메이저대회는 영국과 미국의 오픈 대회(디 오픈, US오픈)와 영국과 미국의 아마추어 챔피언십이었다. 모두 아마추어 단체가 주관하는 대회였다. 프로가 만든 대회는 프로들 돈 내기 정도의 천박한 대회로 여겨졌다. 그래서 PGA 챔피언십도 초라하게 시작됐다. 디 오픈(1860년 시작)이나 US 오픈(1895년 시작)에는 전통에서 뒤진다. 마스터스는 1934년 시작되어 PGA 챔피언십보다 역사가 짧지만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가 만들어 빠른 시간에 권위를 얻었다.


PGA 챔피언십은 1916년 초대 대회를 연 후 2년간 쉬었다. 1차 대전 때문이다. 이후에도 PGA 챔피언십은 다른 메이저대회들에 틈바구니에 끼여 대회 시기와 코스 선정 등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1960년대까지는 7월에 열렸다. 디 오픈 바로 다음 주였다. 당시 교통 여건 상 디 오픈에 나간 선수들은 PGA챔피언십에 나갈 수 없었다.


71년엔 메이저 개막전이 되려고 2월에 대회를 열기도 했다.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골프 팬들은 겨울에 열리는 메이저대회에 심드렁했고 진정한 골프 시즌의 시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건 마스터스의 반발을 샀다.


 

뉴욕 부자들의 놀이터인 발투스롤. 성호준 기자


PGA 챔피언십은 이후 대회를 8월로 미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또 폭탄을 맞았다. 8월에 열리는 올림픽 때문에 7월에 대회를 열게 됐다. 디 오픈 2주 후다. 선수들은 “큰 메이저대회가 3주에 두 번이나 열리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특급 선수들은 메이저대회를 앞두고 미리 코스를 방문해 둘러본다. 그러나 올해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PGA 챔피언십이 열린 발투스롤 골프장을 미리 답사한 선수는 거의 없다.


각 메이저대회는 개성이 있다. 마스터스는 꽃 피는 봄에, 과거 나무 육종장으로 쓰였던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만 대회를 연다. US 오픈은 장비 발전에 대항한 골프의 전통과 파(Par)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했다. 최고의 난코스라는 특성도 있다. 미국에선 마스터스를 ‘정상에서의 즐거음(Fun at the Summit)’, US 오픈은 ‘정상에서의 공포(Fear at the Summit)’라고 한다. 디 오픈은 골프 대회의 효시이자 자연이 만든 코스에서 비바람과 맞선다는 특성이 있다.


PGA 챔피언십은 1958년까지 유일하게 매치 플레이로 치러지는 메이저 대회였다. 그러나 무명 선수 두 명이 결승을 치르거나 경기가 맥없이 일찍 끝나는 등 TV의 관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빈번히 생겼다. 결국 스트로크 대회로 바뀌면서 이 개성은 사라졌다.


PGA 챔피언십이 열린 코스는 최고 코스가 아니었다. 명문 코스는 프로들이 하는 PGA 챔피언십에 코스를 빌려주지 않았다. 흥행도 잘 되지 않아 일부 대회에서는 관중을 모으려 비키니 모델을 데려다 놓기도 했다.


PGA 챔피언십은 메이저대회 중 가장 마지막에 열린다고 해서 ‘영광의 마지막 샷’, 혹은 ‘마지막 메이저의 기회’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4대 메이저 중 네번째 메이저대회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특히 실력이 부족한 클럽 프로 20명을 참가시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다.


PGA는 이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클럽 프로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최대한 뛰어난 선수들을 참가시키려고 노력한다. 세계 랭킹 100위 이내의 선수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초대한다. 올해 대회에는 세계랭킹 100위 이내 선수 중 98명이 참가했다. 역대 메이저대회 사상 가장 강력한 선수층이 나온 대회로 꼽힌다.


올해 한국 선수는 8명이 참가했다. 양용은은 2009년 우승자 자격, 김시우는 PGA 투어 상금 랭킹으로 나올수 있었지만 최경주·김경태·안병훈·이수민·송영한·왕정훈은 PGA 챔피언십의 초청 형식이다. 조직위는 최종 초청 선수를 대회 전주에 선발할 정도로 끝까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송영한도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코스 세팅도 정직하다. 코스를 특별히 꼬아 놓지 않는다. 코스는 길고 페어웨이도 비교적 넓기 때문에 잘 치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낸다. 로리 매킬로이나 더스틴 존슨, 제이슨 데이 등 이른바 최고 선수들이 다른 대회보다 PGA 챔피언십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 타이거 우즈는 “가장 공정한 대회가 PGA 챔피언십”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스프링필드=성호준 기자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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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