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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야만 하는 이유


월요일에 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산자락에 있는 단골 선술집에 갔지. 바로 맞은편에 새 식당이 생겼더군. 라멘, 돈까스, 카레 등을 파는 일식집인데 특별히 ‘창작요리’라고 하는 메뉴를 붙여 놨어. 단 하나의 글자로 만들어진 간판처럼 미니멀한 외부 장식부터 신선하고 파격적이었어. 식당 주인의 관상과 표정을 보면 그 집 음식 수준이 어떤지 알 수 있다는 대학 은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는데 주인은 ‘꼴’을 볼 수가 없었지. 문이 닫혀 있었거든. 정기휴일이었어. 그런데 그 식당 밖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휴일이 매주 월요일, 화요일 하여 이틀이나 돼.


맞은편에 있는 내 오래된 단골집은 막걸리와 안주를 주로 파는데(물론 막걸리는 우리 전통기법과 효모로 빚은 것만 취급하고 안주는 유기농 재료를 정선해 만들지만) 일년 365일 쉬는 걸 보지 못했거든. 쉬긴 하겠지만 내가 왔을 때는 언제나 문이 열려 있었단 말이지. 내가 일부러 불원천리 단골집이라고 찾아왔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았다면, 그런 일이 두세 번 반복된다면 그 집은 내 단골집 목록에서 지워질 것이 틀림없어. 그런데 그 일식집은 젊은 직장인이 선호할 만한 식단을 내걸고 있으면서도 직장인이 출근하는 평일에, 그것도 이틀이나 쉰다니 용감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잠시 어리둥절했지. 그러던 차에 뒤영벌이 한 마리 붕붕거리고 날아가면서 내 머릿속에 쓸데없이 저장만 돼있던 지식과 현실을 연결시키도록 영감을 줬어.


꿀벌 집단은 한 마리의 여왕벌과 수십 마리의 수벌, 수만 마리의 일벌로 구성돼 있지. 일벌은 여왕벌과 같은 암놈이고 수벌들과는 달리 태어나면서 일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벌이 하는 일은 단 한 번 교미비행을 할 때 말고는 마냥 놀고먹기만 하는 수벌에 비할 수 없이 많지. 청소, 보육, 요리식량 저장, 날개로 바람 불기(꿀의 수분 조절, 벌집 온도 조절, 건조)처럼 집단의 지속과 유지에 필요한 일은 물론이고 집 짓기와 수리, 경비, 전투, 꿀·꽃가루·프로폴리스 채취 등 ‘바깥양반’들이 할 일이 전부 일벌의 몫이야.


그런데 실제로 벌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일벌들이 일만 하고 있는 게 아니고 3분의 2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더라고. 바꿔 말해 일벌은 25~35일 정도 되는 생애의 3분의 2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거지. 일벌인데 일하는 것보다 노는 시간이 두 배 더 많다면 이름을 ‘노는벌’로 바꿔야 하나? 물론 허구한 날 놀고먹는 수벌에 비할 수 없이 많은 일을 하긴 하지만.


꿀벌 집단이 내우외환으로 개체군의 숫자가 줄어들어 약해지면 어린 일벌들이 소녀가장이라도 되는 양 일찍부터 어른들이 하는 꿀 채취 등의 고된 바깥일을 하러 나선대. 대신 그런 일을 한 어린 일벌들은 과로로 수명이 짧아진다는 거지. 말 그대로 ‘죽어라 하고 일만 하다’ 일찍 죽고 마는 거야. 물론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수벌들은 마냥 놀고먹고 있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수벌들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수벌이 고의적으로 놀고먹는 건 아니라는 거야. 수벌은 일벌과 달리 수정이 되지 않은 알에서 깨어나서 여왕벌에게 일벌과 여왕벌이 될 알에 정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지. “마냥 놀고 처먹는데 수정이 되었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하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암튼 수벌이 수벌이 된 게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에 따른 건 아니란 거지. 어쨌든 수벌은 단 한 번 여왕벌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삶이 끝나거나 벌집 밖으로 쫓겨나 얼어죽거나 굶어죽게 돼. 수벌은 평소에 마냥 놀고먹어야만 일생 단 한 번의 결정적인 과업, 여왕벌과의 교미에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 역량을 비축하고 있는 거야.


정상집단의 평범한 일벌이 일생의 3분의 2를 쉬는 이유도 수벌과 비슷해. 남은 3분의 1의 수명 동안 성실하고 꼼꼼하게 다방면의 일을 하기 위해서 잠재능력을 비축하는 거라고 보면 된대. 급격한 환경의 변화나 포식자의 공격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잠재능력을 끌어와 쓸 수도 있는 거지.


물론 식당을 운영하는 건 벌이 아니라 사람이지. 사람의 일에 벌의 사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는 거야. 어떤 식당이 일주일에 3분의 1만 장사를 한다고 하면 단골커녕 구경꾼도 오지 않을 걸. 하지만 일주일에 이틀을 쉰다고 당당히 써붙인 그 일식집, 주인 관상을 보지도 못했고 바깥에 써붙인 메뉴에도 확 끌리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꼭 가서 한 번 맛을 보고 싶어졌어. 특히 그날그날 다른 ‘창작요리’라는 것을.


요리는 서비스와 노동,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활동의 총화지. 쉬면서 발상의 전환도 일어나고 창의적인 실험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의욕도 충전이 되고 말이지. 매일 똑같은 음식을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만큼 창의성을 갉아먹는 일도 없을 걸. 어쩌면 쉬는 게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 쉴 만큼 쉬어야 주인의 수명도 늘 것이고 그래야 손님도 오래도록 이용할 수 있겠지.


과거에 어떤 사람은 무슨 중요한 일을 그리 열심히 하는지 일주일에 ‘월화수목금금금...’을 일한다고 말하기도 했었지. 그 사람 생김새나 언변은 나쁘지 않았는데 붕어도 아니면서 ‘금금금’이라고 발음하는 말을 자꾸 듣고 있노라니 그 사람의 학문적 성과마저 신뢰할 수가 없어졌어. 지금도 입만 열면 ‘바빠 죽겠다, 쉴 틈이 없다’고 자랑하는 인간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 저러다 일찍부터 바깥일을 시작한 어린 일벌처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단골집 여주인에게 앞집 일식당 주인에 대해 물어보니 온 지 얼마 안 되어 잘은 몰라도, 젊고 잘 생겼고 활기차고 똘똘해 보이더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하더군. 밤 10시가 되니까 여주인은 어디 갈 데가 있는 마녀처럼 빗자루를 들고는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하는 거야.


“아니, 막걸리집이 밤 10시까지밖에 안 해요?”


내가 말하자 여주인은 내게 한 번도 10시 넘어까지 있어본 적이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어. 그러고 보니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더군. 그날 저녁 내내 주정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도 없었지. 그 집이 왜 내가 좋아하는 단골집이 되었는지 그 순간 깨달았던 거야. 대오각성, 활연관통(豁然貫通).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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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