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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 술탄을 꿈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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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7월 20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비상사태 3개월 발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터키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지난 7월 15일의 쿠데타 실패 이후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르도안이 그렇게 쥐게 된 권력의 칼자루를 반대파를 말살하고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는데만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강화된 권력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자신이 다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가 국정의 최고 목표로 정한 유럽연합(EU) 가입으로 가는 장밋빛 길이 아니라 EU가 가장 염려하는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로 가는 가시밭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대파를 누를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오히려 에르도안이라는 인물의 한계가 빠르게 드러난 것이라는 우려다.

쿠데타 핑계로 비상사태 선포해 독재권 확보: 에르도안은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직후인 7월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와 내각 회의를 거쳐 앞으로 3개월 동안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터키 헌법은 자연재해는 물론 심각한 경제 위기나 폭력 행위로 공공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됐을 경우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내각은 법률에 해당하는 효력을 가진 법령을 자체적으로 발령할 수 있다. 의회 통과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국가비상사태가 발령되는 동안 터키에서 국민의 기본권은 심각하게 제한된다. 국민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다.

정부 당국은 마음대로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경찰이나 정보 요원은 시민·차량·가택을 영장 없이 뒤질 수 있다. 에르도안 통기 기간 중 심각하게 훼손된 언론의 자유도 제한된다. 국가비상사태 기간 중 터키는 중세로 비극적인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는 셈이다.

시간여행의 핵심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다. 터키 세속주의파이자 반이슬람파의 본산인 군과 법조계를 시작으로 교육계까지 숙청의 광풍이 불고 있다. 영국 BBC는 지난 7월 20일 터키 정부가 전국의 대학총장 1577명에게 사임을 명령하는 한편 교사 1만 5200명을 파면해 교단에서 쫓아냈다고 보도했다.

재무부 공무원 1500명, 총리실 직원 257명도 해임됐다. 이미 직위해제된 군인·경찰·판사·검사도 1만8000명에 이른다. 터키 언론 등에 따르면 쿠데타 실패 다음 주에 쿠데타 연루 혐의로 직위해제·파면된 공무원은 4만5000명에 이른다. 터키 정부는 이들이 쿠데타 배후인 이슬람 성직자 펫흘라흐 귈렌의 추종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귈렌은 2013년까지 에르도안을 지지했으나 그해 에르도안의 부패 혐의가 담긴 녹음 테이프를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서로 결별했다. 터키 정부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귈렌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귈렌이 테러 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뿌리까지 뽑아내겠다”고 말했다.

공개된 혐의자들의 모습을 보면 얼굴에 피멍이 들거나 코뼈가 삐뚤어지는 등 구타나 고문을 당한 흔적이 보이고 있다. 중동의 봄 당시 지역 국가들이 ‘중동 민주주의 성공의 교과서’로 여겼던 터키의 모습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술탄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권력: 에르도안 대통령은 법령 발령을 무기로 삼아 마음대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물론 반대파도 무제한 숙청할 수 있게 됐다. 에르도안은 권위주의적인 통치로 ‘술탄(이슬람국가의 정교 일치의 최고 통치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정치와 통치를 보여준 그에 대한 비판이 목소리가 담긴 별명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통치로 ‘차르(제정 러시아의 황제)’로 불렸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일맥상통하는 별명이다. 이제 에드로안은 진짜로 술탄에 버금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에르도안이 권력을 쥐자마자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숙청하면서 역효과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수만 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혐의를 정확히 밝혀내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합법적으로 수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미 수만 명을 쫓아냈으며 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물론 사형제를 부활해 처형하겠다는 것이 에르도안의 발언이다. 누가 봐도 군인·법조인·교육자·행정공무원 등을 미리 사찰해 성향을 분류했다가 쿠데타 실패라는 호재를 만나자 이들을 정확한 범법 사실도 지목하지 않고 무조건 쫓아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공무원을 적절한 수사나 증거도 없이 쿠데타에 연루됐다며 대규모로 쫓아내는 것은 서구 기준으로 보면 독재 자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부정 일색이다. 특히 터키가 가입 협상을 진행 중인 EU 국가들은 펄쩍 뛰고 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나라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다. 독일의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외교장관은 7월 21일 “필요한 시기에 한정해서 비상사태를 유지해야 하며 그 시기가 지나는 즉시 비상사태를 끝내야 한다”며 에르도안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스트리아의 세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도 이날 터키 대사를 초치하기까지 했다. 쿠르츠 장관은 자국 주재 터키 대사에게 “터키 정부가 독재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터키가 정적에 대한 복수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형제 부활 거론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그럴 경우 EU 가입 협상은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시장도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비상사태 선포 직후 터키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춰버렸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7월 20일 터키의 국가신용등급을 ‘BB+’에서 한 단계 낮은 ‘BB’로 강등했다. S&P는 ‘BB+’ 등급 이하는 ‘투기(Junk)’ 단계로 분류한다.

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추가로 등급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S&P는 “쿠데타 시도 이후 터키 정국이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어 터키 경제로의 자본 유입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투자 환경 악화로 이어지면 국제수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 터키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경제와 재정 및 부채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집권당이 과반의석 차지해 비상사태 필요 없어: 어차피 터키 의회는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에르도안이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을 앞세워 원하는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의회에서 야당 의원이나 집권당 내부에서도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덜한 의원들이 자신의 통치 스타일이나 법령에 토를 달거나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것 자체를 보지 않겠다는 에르도안의 의중이 담겨 있다.

터키 국회에선 집권당인 정의개발당 외에 3개의 야당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1야당은 국부인 케말 파샤가 창당해 케말 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중도좌파 정당인 공화인민당(CHP)이다. 집권당의 절반도 안 되는 133석을 차지하고 있어 의회 내 발언권이 강하지는 않다.

터키 공화국이 건국된 1923년 인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했다가 이듬해 공화인민당으로 개명했다.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오랜 기간 집권하며 터키공화국의 개혁과 성장을 이끌었다.

카말 파샤의 유지인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와 사회제도적 자유화라는 개혁주의를 뒷받침해왔다. 1980년 쿠데타로 강제 해산되기도 했지만 1992년 재창당했다. 제3당은 쿠르드계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으로 59석을 차지하고 있다.

주로 쿠르드족 인구가 많은 동부와 동남부 국경지대를 근거지로 한다. 제4당이 극우 민족주이 정당인 민족주의자 운동(MHP)이다.

사회적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 내세운 정의개발당: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550석의 의석 중 317석을 차지하고 있다.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집권당이다.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이 창당했으며, 그의 핵심 권력 기반이다. 에르도안과 그의 정당이 밟아온 역사를 살펴보면 그의 의도를 읽고 그가 이끌 터키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다.

에르도안은 2003년 3월부터 2014년 8월까지 11년 이상 총리를 지내다 2014년 8월 28일 대통령에 올랐다. 터키는 이원집정제 국가로 총리가 국정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법을 고쳐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후 처음으로 직선제를 거쳐 이 자리를 차지했다. 정의개발당의 당헌에 총리를 3선까지만 허용하고 있어 총리 4선이 좌절되자 대통령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에르도안은 2001년 8월부터 201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까지 정의개발당 대표를 지냈다. 그러면서 세 차례의 총선에서 승리해 정치력을 보여줬다.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과 동의어인 셈이다. 에르도안은 2003년 3월부터 2014년 8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 전에는 1994년 3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시장을 지내면서 주민 복지를 강조하는 정책으로 인기를 모았다.

에르도안이 창당했던 정당에는 이슬람 정신 뚜렷: 중요한 것은 그의 정치적 이념이 이슬람주의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정의개발당 이전에 설립한 정당의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1972~81년 국가구제당, 1983~98년은 복지당, 1998~2001년은 미덕당(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 2001년부터 정의와 개발당을 각각 창당했다.

정당 이름이 가진 의미를 살펴보면 그의 정치적인 지향점이 선명히 드러난다. 국가구제당은 이슬람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미의 정당 이름이다. 복지당과 미덕당은 이슬람 정신으로 주민 복지를 구현하고 이슬람의 미덕을 장려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국가구제당은 1980년 군사 쿠데타로 탄압을 받다가 이듬해 문을 닫아야 했다.

복지당과 미덕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다.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정신으로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세속주의 정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군부와 헌법재판소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군부와 법조계의 세속주의 파에 이를 갈아온 이유다. 이는 터키 특유의 세속주의 수호 시스템 때문이다. 1923년 근대 터키 공화국을 건국해 아타 튀르크(터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국부 케말 파샤가 제정을 주도한 이 나라의 헌법은 세속주의를 국가의 근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케말 파샤가 의도한 터키의 서구화가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케멜 파샤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후 문자를 아랍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바꾸었으며 군대·정치·행정·교육 등 분야에서 서구화를 진행했다.

종교만 분리한 게 아니라 사회 분야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애썼다. 최근 풀리긴 했지만 공공 장소에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을 금지했을 정도다. 히잡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이슬람에 대한 사회의 복종을 의미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터키 헌법에도 ‘군은 헌법의 수호자’라고 명시돼 있다. 터키의 정치가 종교 개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거나 개혁정신에서 벗어나 부패했다고 판단되면 군부가 자동으로 개입해 이를 저지하고 세속주의와 개혁주의 정치를 재건하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세속주의라는 대의명분은 정부를 종교에서 분리되도록 하긴 했지만 가난까지 구제하진 못했다. 정부가 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복지와 배려를 받은 주민들은 일련의 이슬람 정당을 지지했다. 이슬람주의와 그 정신을 구현하는 이슬람 정당들은 에르도안의 정치적인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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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출신의 이슬람학자 페툴라 궐렌이 7월 1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세일러스버그 자택에서 실패한 쿠데타 배후세력으로 자신을 지목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정의개발당은 정당 명칭부터 경제주의적 성격이 보인다. 900만의 당원을 가진 이 터키 집권당은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서구식 중도우파정당과는 다르다. 좌우라는 정치적 좌표에 더해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사회적 색채가 진하게 가미됐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터키 특유의 이데올로기가 포함됐다. 이 정당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보수적 민주주의에 사회적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운다.

독특한 것은 에르도안의 경제 정책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기업인의 활동과 투자를 촉진하는 강력한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운다. 여기에 이슬람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정책을 추진한다. 경제 발전과 복지가 독자적으로 이뤄져 서로 발목을 잡지 않는 시스템이다.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에 경제인으로부터는 찬사를, 가난한 사람으로부터는 사랑을 얻고 있는 것이다.

‘2023 비전’ 실현될까: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3 비전’이라는 이름의 국가 비전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터키 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3년을 제대로 맞을 수 있도록 나라를 개조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EU 가입과 경제난의 탈출, 쿠르드족 민병대를 해산하고 민족화합을 이루며 도로·공항·고속열차 등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로 주민 생활을 향상하고 경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더욱 다지는 거창한 내용이 포함됐다.

경제 정책이 에르도안 정치의 중심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정책에 따라 건설되는 고속철도는 중국이 거의 차지했다. 다른 인프라 투자에선 아직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

문제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있다 사회적인 부패와 타락을 막아야 한다며 다소 권위적인 보수주의를 앞세운다는 점이다. 인권이나 프라이버시, 개인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강력한 조치를 통해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부패와 도덕적인 타락을 막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그의 정신은 실제 통치에도 반영돼왔다.

이에 따라 상당한 경제적·외교적 업적에도 에르도안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국내외 여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에르도안은 이러한 정신을 반대파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숙청해 침묵시키는 데 사용해왔다는 평이다.

이번 쿠데타 실패로 그에게 집중된 무소불위의 권력을 반대파 제거와 권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그의 이런 전력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이를 극복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정책으로 터키를 성공적으로 EU에 가입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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