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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측천무후의 두통 없앤 녹차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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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채취하는 신양의 아가씨들.

신양마오젠(信?毛尖)을 마신 측천무후는 원기를 회복하며 와병에서 일어났다. 황실어의도 고치지 못한 측천무후의 두통을 단숨에 날려버린 신양마오젠은 중국 녹차의 최고봉으로 떠올랐다. 전무후무한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로서 측천무후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이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한 제국을 통치한 측천무후는 무인세력이 주도한 당(唐)나라를 없애고 공자(孔子)의 롤 모델인 주(周)나라를 재현한 대주(大周)를 건국해 16년 간 통치했다. 측천무후는 발해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685년 일본에 판다 한 쌍을 보내며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판다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 “강남의 어떤 차보다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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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갓 채취한 신양모첨. / 3. 측천무후는 신양마오젠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했다고 전해진다. / 4. 씨앗을 물고 있는 화미조 조각.

신양마오젠의 효능을 과신한 측천무후는 황실에 설치한 공학부(控鶴府)의 미소년을 매일 밤 불러 차와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 측천무후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뛰어난 관리였던 적인걸은 여황제의 건강을 위해 남색을 멀리하라고 직언했지만 측천무후는 82세까지 천수를 누리며 어린 남자와 동침했다. 측천무후가 늘 곁에 두고 총애한 신양마오젠은 중국 10대 명차로서 오늘도 중국 녹차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신양마오젠이 생산되는 허난성 신양에서 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3000년 전이다. 차를 재배하기 이전의 신양은 헐벗은 벌거숭이산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양에 차나무가 없던 시절 몹쓸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마을의 착하고 총명한 처녀는 가족과 이웃을 구하기 위해 치료약을 찾다가 신선을 우연히 만나 99개 산 너머에 있는 신비한 나뭇잎을 물에 우려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험준한 길을 떠났다. 갖은 어려움 속에 81일 만에 신비한 잎을 찾은 처녀는 이 나무의 씨를 구하고 기뻐했다. 27일 이내에 씨를 심어야만 나무가 자란다는 소리에 돌아갈 길이 막막해 울고 있는 처녀를 불쌍히 여긴 신선은 아름다운 화미조(畵眉鳥)로 변신시켜 고향에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화미조가 된 처녀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돌아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했다.

전설을 살펴보면 차나무가 외지에서 유입됐다는 정황과 약용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신양마오젠은 허난성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중국 명차다. 허난성은 중국 중북부에 있는 작은 성이지만 한족의 뿌리가 된 화하족(華夏族)의 발원지다. 허난성 동쪽은 안후이성과 산둥성이 있으며 서쪽은 산시성과 맞닿아있다. 남쪽 경계는 후베이성이며 북쪽은 허베이성과 산시성과 접한 중국 대륙의 중원이다. 한자의 조상 격인 갑골문자를 사용한 고대 은(殷) 나라 때부터 중원을 차지하면 천하를 제패했다.

허난성의 옛 이름 위를 사용해 신양마오젠을 위마오펑(豫毛峰)으로 부르다가 1913년 신양시에서 차를 생산하는 8대 차회사가 제차공법을 균일한 수준으로 완성하며 자신들이 생산하는 최우수등급 차에 ‘신양마오젠’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다. 신양 8대 차 회사 중 하나인 롱탄차업 관계자는 “특급 신양마오젠 100g을 만들기 위해서 2만8000개의 새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양마오젠을 탄생시킨 화미조의 전설을 기리는 황동기념상이 관광다원 중앙광장에 있으며 실제로 화미조가 신양에 널리 분포되어 살고 있다. 신양은 안후이성과 후베이성에 인접한 인구 641만 명의 2급 행정구역인 지급시다. 지급시는 우리 개념으로 보면 광역시에 해당하는 제법 큰 행정단위다. 사계절이 분명한 북위 32도에 위치한 신양은 연평균 15℃로 강수량도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산으로 둘러싸여 차 재배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신양을 둘러싼 5개의 산 이름에는 구름과 안개를 뜻하는 한자가 들어있다. 심지어 구름과 안개를 합친 윈우산도 있을 정도로 구름과 안개가 많은 지역이다. 당나라 때부터 황실에 차를 바치던 황가다원이 있던 처윈산에는 신양마오젠을 마시고 건강을 회복한 측천무후가 세운 천불탑이 남아있다.
 
| 100g이 600만원에 거래

신양마오젠은 차신(茶神)으로 추앙받는 당나라 사람 루위가 편찬한 세계 최초의 차 백과사전 [차경(茶經)]에서 13개 성(省) 42개 주(州)의 명차를 소개하는 단락에서 화이허 남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명품 녹차로 소개된다.

송나라의 대시인이면서 돼지고기 요리의 정점에 있는 동파육을 창안한 미식가로도 유명한 쑤둥포는 신양의 차를 마신 뒤 “강남(江南)에서 나오는 어떤 차보다 훌륭하다”고 치켜세웠다. 신양마오젠은 하얀 솜털이 많고 뾰족한 바늘처럼 찻잎 외형이 날렵하다. 향긋한 차를 우린 색도 맑고 담백한 감칠맛이 있다. 신양사람들이 소화제로 사용하기도 하는 신양마오젠은 혈압을 낮추고 면역력 강화와 피로 회복 및 미용 효과가 다른 녹차 보다 뛰어나다.

신양마오젠의 브랜드 가치는 9800억원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 가운데 서열 3위를 기록한다. 최고 등급의 신양마오젠 100g이 600만원에 거래되지만 총 생산량은 연간 5Kg에 불과하다. 금값을 상회하는 이 차는 사전 예약으로 전량이 매진된다고 한다. 마시는 차가 중국에서 사치품으로 등극한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런 병폐를 잘 아는 시진핑 주석이 취임 초기에 고급차를 선물로 주고받지 말 것을 당부했다가 업계의 반발로 최근에 이를 철회했다.

신양마오젠은 19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 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아 세계적 명성을 처음 얻었다. 1958년 중국에서 최초로 10대 명차를 선정할 때 신양마오젠은 당당히 선발됐다. 매년 중국각 지와 해외에서 열리는 녹차경진대회에서 최고상과 금, 은상을 번갈아 거머쥐는 신양마오젠은 모두가 인정하는 녹차의 제왕이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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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