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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 (19)] 임금이 힘써야 할 9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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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억지로 몸을 추슬러서 충원(충주)에 이르렀으나 병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고, 5월 중순이 되어 다시 길을 나섰으나 풍기에 이르러 또 병이 났습니다. 열흘 동안 머물며 조리했지만 도저히 나을 가망이 없었는지라 고향에 돌아와 죽기를 기다린 지 언 한 달. 아직까지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나이다.’

1781년(정조5) 7월 1일,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소퇴계(小退溪)’라고 불렸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은 자신을 조정으로 부른 정조에게 사직상소를 올렸다. 출사하라는 명령을 따르고자 집을 나섰지만 도저히 올라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같은 해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
 
| 출사 못하지만 진언으로

그래서 이상정은 대신 임금에게 올리고 싶었던 말을 사직상소에 담는다. ‘삼가 듣건대 옛사람 가운데에는 말로써 임금을 섬기는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미 조정에 나아가 능력을 펼치고 힘을 바칠 수가 없는 상황이오니, 차라리 이를 본 받아 신의 보잘것없는 충성을 조금이나마 올리고자 합니다. 만약 신의 말 가운데 어느 정도 채택할 만한 점이 있다면 비록 신이 물러나 있더라도 등용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혹 취할 만한 것이 없다면 신이 조정에 나아가더라도 나라에 무슨 유익함이 되겠습니까?’(이하 인용은 모두 [대산집], 형조참의를 세 번째로 사직하며 아울러 임금의 덕을 면려하길 진언하는 상소(三辭刑曹參議仍陳勉君德疏)가 출처임). 충언과 간언을 올려 임금을 보좌하는 것 역시 신하의 임무니, 비록 직접 출사해 정무를 보지는 못하지만 진언으로써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상정은 사직상소를 올리면서 임금이 유념해야 할 9가지 사항을 함께 담았다. 모두 임금의 마음가짐과 관련된 것이다. 마음에 지녀야 할 것만 논했을 뿐, 정치나 제도의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나라의 근본이자 국정의 제 1조건으로 근본이 확립되면 말단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더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언행을 신중히 하며 구성원들의 모범이 된다면, 구체적인 실무야 담당자들이 알아서 잘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상정이 주문한 9가지 사항을 차례로 살펴보면, 우선 첫 번째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다. 뜻이란 사람이 이루고 싶은 목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이것이 정해져야 비로소 노력을 하게 되고 성과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뜻’은 높은 것을 지향해야 한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온 힘을 다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 즉 ‘도전적 목표(Stretch Goal)’여야 한다.

그는 정이천의 말을 인용하며 “학문을 논할 때는 ‘도(道)’를 뜻으로 삼아야 하고, 사람을 목표로 할 때는 성인(聖人)을 뜻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나라의 효문제(孝文帝)는 현명한 임금이었지만 “너무 높은 것을 논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하라”고 했기 때문에 끝내 성군(聖君)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당면의 과제에 힘써야 하는 것은 맞지만 높은 뜻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작은 성공을 편안히 여겨 떨쳐 일어나지 않고, 끝내 원대한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치를 밝히는 명리(明理)’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금은 만기총람(萬機總攬), 즉 하루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하고 수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 깊이 통찰하고 세밀히 살펴서 이치를 환히 깨닫지 못한다면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상황에 현혹되며 농간에 넘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임금은 평소 진리가 담긴 경전과 성공과 실패의 사례가 기록된 역사서를 두루 읽어 사려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경에 거하는 거경(居敬)’이다. 경(敬)이란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로 개인의 감정이나 사사로운 욕망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준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때도 행동을 삼가며, 생각이 싹트는 과정을 치열하게 살펴 정당함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만 너무 억제하다 보면 오래 지속할 수 없으므로 여유를 갖되 결코 태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상정의 주장이다.

네 번째는 ‘하늘을 본받는 체천(體天)’이다. 하늘이 만물을 살피듯 임금 또한 부지런히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의미와 함께, 항상 ‘하늘의 뜻’과 같은 보편적 도덕규범, 도리에 입각해 실천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 ‘간언을 받아들이라는 납간(納諫)’은 귀에 거슬릴지라도 충성스러운 말과 바른 논의를 기꺼이 수용해 임금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나라를 이롭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섯 번째 ‘학문을 일으키는 것(興學)’은 인재 육성과 관련된 내용으로 나라 안에 문화와 학술이 흥기되어야 좋은 인재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어 일곱 번째 ‘인재를 등용하라는 용인(用人)’은 이상정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총명하고 뛰어난 임금이 있어도 혼자서 나라의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다. 따라서 관직을 두고 직분을 나누어 능력과 특성에 따라 임무를 맡기고 책임을 지우라고 했다. 임금은 인재를 구별하는 마음과 눈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는데 모름지기 사람의 그릇을 잘 살펴서 맡기고 사람의 힘을 헤아려 부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충성스러운 사람을 등용하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해야 하며, 탐오한 자를 내치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충성스러운 인재는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 당연한 일을 제대로 완수하는 게 리더의 책무

여덟 번째는 ‘백성을 사랑하라는 애민(愛民)’으로 임금이 존재하는 이유는 ‘백성을 사랑하고 길러서 그들이 각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임금의 책임을 잊어버린 채 군림하고 통치하며 백성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조항인 아홉 번째는 ‘검소하라는 상검(尙儉)’이다. 하늘이 내어준 재물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람의 사용에는 끝이 없다. ‘절제하거나 삼가지 않으면 마음이 방탕해져서 스스로를 해치게 된다.’ 더욱이 임금이 사용하는 재물은 백성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빈곤한 백성들에게서 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해야 한다. ‘임금이 스스로 검소하고 절약하여 백성을 윤택하게 한다면 백성이 기뻐하고 하늘도 임금을 도와줄 것이며 백성들도 이를 본받아 절약과 검소를 숭상하게 될 것이며 자연히 나라는 부강하게 된다.’

이상 9가지 항목은 비단 전통사회의 임금뿐 아니라 오늘날의 리더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비전을 세우고 공정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조직과 구성원을 위해 헌신하며, 면밀하게 일을 살피고 결단하는 것. 인재를 육성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구성원의 모범이 되어 조직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 당연한 일 같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다. 진정한 리더의 품격은 이러한 당연한 일을 완수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 이것이 이상정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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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