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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신발 퍼주기 대장’

얄팍한 고무 밑창에 패브릭으로 발등을 수수하게 감싼 신발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탐스가 가진 ‘기부’ 철학 덕분이다. 1켤레를 사면 1켤레는 제3국에 기부한다는 ‘착한’ 콘셉트로 창립 10년 만에 5000만 켤레 판매를 달성했다. 기부 브랜드의 아이콘이 된 탐스의 창립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를 서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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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퍼주기 대장(Chief Shoe Giver)’ 신발회사 탐스(TOMS)의 창립자인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39) 명함에 적인 문구다. 지난달 초 한국을 찾은 그를 서울 성수동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회장이나 사장 같은 직함이 없냐고 묻자 마이코스키는 “내가 지금껏 해온 가장 중요한 일이 신발을 나눠주는 일이었다”며 “진짜 신발 퍼주기 대장”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이 농담 같았지만, 2006년 여름이 창업한 이래 탐스가 기부한 신발이 올해 초까지 무려 5000만 켤레다. 동시에 탐스가 지금까지 판매한 신발 수도 같다. 미국 LA에서 인턴 직원 세 명과 함께 시작했던 회사는 이제 전세계 1000여곳에서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초창기에는 아르헨티나의 신발 장인들이 맡아 하는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아이티·인도·케냐·에티오피아까지 6개 나라의 공장이 있어 나라마다 700개 이상의 일자리까지 마련하고 있다.

기부가 보여준 막강한 수요
배낭 여행을 즐기던 청년은 어느새 전 세계를 누비며 ‘기부’를 알리는 상징이 됐다. 그만큼 탐스라는 브랜드의 신발 자체보다는 ‘기부’한다는 마이코스키의 이야기와 가치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였다. 그 비결이 뭘까? ‘One for One’, 한 켤레를 팔아 또 다른 한 켤레를 기부한다는 철학 덕분이다. 탐스 창업 초기, ‘돈이 없어 신발을 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구호와 함께 에 기사가 실리자 신발 주문이 폭주했다. 그는 “당일 재고가 150켤레였는데, 그날 하루에 웹사이트로 주문받은 양만 2200켤레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탐스 신발의 디자인도 하나의 유행 아이콘처럼 화제였다. 그는 “‘알파르가타’라는 아르헨티나 전통 신발에서 본 따왔다”며 “아르헨티나에서 많은 사람이 신은 것을 보고 저도 직접 신어보니 매우 편했다”고 소개했다. 신발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던 그였지만 디자인도 손수 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라도 아껴서 더 많은 어려운 이웃과 신발을 나눌 수 있다면 모르는 일 투성이었던 ‘신발’ 사업도 마냥 즐거웠다”고 했다.

‘입소문’의 힘은 대단했다. 탐스의 기부 이야기를 듣고 신발을 산 고객들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해서 한 켤레라도 더 사도록 독려했다. 할리우드 스타까지 이 대열에 가세했다. 스칼렛 요한슨, 나탈리 포트만, 톰 크루즈 같은 거물급 배우들이 탐스 ‘기부 철학’ 전도사를 자처한 것.

영리와 자선, 두 마리 토끼 잡아
마이코스키는 “다른 회사들은 수백만 달러씩 내면서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 탐스는 ‘One for One’의 철학을 잘 지킬수록 홍보 효과가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기부’가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될 줄 몰랐다고 한 마이코스키는 ‘기부’를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보기 시작했다. 사실 기부 효과는 그 어떤 마케팅 효과보다 대단했다.

‘기부 여행(Giving Trip)’을 예로 들었다. 그는 “1년에 4번 정도 떠나는 기부 여행(Giving Trip)을 다니며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와 SNS 등에 올린다”고 했다. 실제 ‘신발 기부 여행’은 유튜브와 SNS 등으로 퍼지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눔에 동참하고 싶다’는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했다는 평도 이어졌다. 덕분에 마이코스키는 1년 중 200일가량을 해외에서 강연하며 미국 통신회사 AT&T의 모델로 활약 중이다.

물론 그를 둘러싼 의구심도 없진 않았다. 진정한 ‘기부’를 추구하는 사회운동가인지 ‘기부’를 가장한 마케팅 천재인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마케터’라는 말을 듣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과거에는 내가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에 활용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지금은 내가 탐스 브랜드 철학과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징이자 대표가된 마당에 브랜드 마케터를 자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만약 마이코스키가 빠져도 탐스의 ‘One for One’ 철학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일년 반 전에 자신의 지분 절반을 사모펀드에 팔았다. 다른 신생 기부 회사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도 그가 내건 지분을 넘기는 조건은 명확했다. 마이코스키는 “‘기부’ 철학을 종전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 법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분을 넘기는 핵심조건이었다”고 강조했다.

‘기부’라는 원칙에 집착하는 블레이크. 이유가 있었다. 그는 “탐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유명해지자 명성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회사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게 되더라”며 “탐스가 왜 탄생했는지에 대한 정체성과 신념이 흐려졌던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는 늘 ‘초심’을 생각한다고 했다.

영리와 자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탐스는 가방·안경·의류·커피 등으로 범위도 점차 넓히고 있다. 안경은 어떨까? 전 세계적으로 2억8500만 명이 시각 장애가 있다. 그중에서 90%가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그래서 탐스는 2011년부터는 안경과 선글라스를 출시해 신발과 똑같지만 다른(?) ‘One for One’을 적용했다. 고객이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하나 사면 안과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시력을 되찾아주겠다는 뜻이었다. 실제 지난 5년간 13개 나라(캄보디아·탄자니아 등)에서 32만 명이 앓고 있는 백내장 같은 안과 질환을 치료해줬다.

2014년부터 시작한 커피 사업은 ‘물’을 ‘기부’한다. 마찬가지로 고객이 커피백 하나를 사면 한 사람이 일주일 동안 마실 수 있는 물 140리터를 제공한다. 그는 “탐스 커피도 곧 한국에 출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글 김영문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탐스(TOMS)는… “Shoes for Tomorrow(내일을 위한 신발)”, 즉 “TOMorrow Shoes(내일의 신발)”를 줄인 말이다. 오늘 신발을 팔아 내일 기부할 신발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바탕이 되는 하늘색과 흰색의 줄무늬 사각형은 아르헨티나 국기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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