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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14개월만에 470여 페이지 '백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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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14개월만에 470여 페이지 '백서' 공개

"일할 사람 없는데 보고 많아" "컨트롤타워 부재 지속"


"일할 사람이 없는데 보고가 너무 많았다" "컨트롤타워 부재가 한동안 지속됐다" "역학 전문가가 없었다"

지난해 전국을 휘몰아쳤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 과정, 평가와 교훈 등을 담은 백서가 29일 공개됐다. 총 분량은 470여 페이지에 달한다. 백서 작업은 지난해 8월 민관합동 자문회의에서 시작됐지만 수 차례 연기를 거쳐 메르스 사태가 시작된 지 14개월만에 마무리됐다.

제작 과정은 보건복지부가 주도했지만 대응 평가와 교훈·제언 분야는 객관성을 위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맡았다. 백서는 메르스 대응에 참여한 보건복지부 관계자 등 46명의 면담조사(인터뷰)와 현장 대응 인력 245명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했다.

특히 메르스 유행은 총체적인 문제가 쌓여서 발생한 '예고된 사태'라는 점이 재차 드러났다. 아래는 메르스 대응 평가의 구체적인 항목별 내용.

◇감염병 사전 대응=메르스 대응 인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가 메르스 발생 전부터 신종감염병 대응을 충분히 했다는 응답자는 40.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사전에 신종감염병에 대한 교육이나 대응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비율도 10명 중 3명(30.2%)에 그쳤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감염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행정력을 보강하고 시스템 관리를 평소에 해야 한다고 생각을 못 했어요. (질병관리본부의) 맨파워가 왜곡된 데에는 복지부 인사정책의 책임도 있습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감염병 전문가들도 현장 상황에서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민간 전문가는 "(평택성모병원) 8층에 환자가 있고 7층에서 환자가 나왔으면 가정을 수정해서 분석했어야 하는데 수정할 생각을 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부재=메르스 유행세가 커지던 5월 28일 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가 세워졌다. 하지만 초기 혼란 속에 컨트롤타워와 리더십 부재는 상당 기간 이어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 참여가 사실은 '레디' 상태에서 들어간 게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장을 파악하고 책임을 지고 실질적 리더 역할을 하는 방역관이 없어서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설문에 따르면 보고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응답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특히 보고 대상이 불분명(33%)하거나 보고 대상이 많고(21.3%), 동일한 내용의 중복 보고가 많다(14.9%)는 이유가 다수를 차지했다. 또한 자신의 업무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을 묻자 '1주일 이내'가 21.9%인 반면 무응답이 54.4%에 달했다. 업무 역량에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각자 다른 업무를 하던 사람들이 모이면서 전체 그림을 보지 못 하고 파편들로 나눠져 있는 상태가 초기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역학조사="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질본 내에 메르스 대응반이 있는데 얼마나 대비를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한 민간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미 알려진대로 메르스 사태 당시엔 역학조사 인력이 매우 부족했다. 역학조사관 34명 가운데 2명만 정규직이고 나머진 공중보건의였다. 그러다보니 역학조사 실시 경험이 부족한데다 병원 내 감염병 전파를 조사할 병원역학자(Hospital epidemiologist)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질본 관계자는 "전체를 보고 정리를 하고, 답을 내고 그 다음에 지침에 안 나온 결론을 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걸 낼 사람이, 경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없었어요"라고 고백했다. 한 민간전문가는 "감염 역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5~6명 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병원 역학을 전공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미국 같은 경우 병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대형병원에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역학조사 도중에 새로운 방법이 우연히 나오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결핵 역학조사에서도 폐쇄회로TV(CCTV)를 종종 봅니다. 그 사람이 우리도 CCTV를 봐야 되지 않을까 해서 본 것이지 역학조사관 교육이나 매뉴얼, 지침에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공중보건의 역학조사관 한두 명이 창의적으로 일을 시작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위기소통=국민과의 소통 부족도 메르스 사태에 따른 불안감을 부추겼다. 위기소통 대응 인력부터 태부족이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한 이유 중에는 저희 인원이 몇 명 안 되는 상태에서 폭발적으로 언론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까 감당을 못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환자는 늘어나는데 대응 전략이 없는 상황이라 국민의 불신은 높아졌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는 늘어가고 있고 삼성서울병원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공기 감염이나 지역사회 감염 위험이 없다고 하는 말에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실제 설문에서도 국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등 위기소통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64.5%에 달했다.

◇지역사회 대응=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간의 호흡도 미진했다. 설문 결과 양측의 의사소통과 협력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응답자 비율은 37.9%였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일할 사람은 없는데 보고할 곳이 많다는 불만을 공통적으로 내비쳤다. 지자체 방역활동에 참여한 관계자는 "저희가 더 힘들었던 건 국민안전처, 복지부, 메르스대책본부 이렇게 있었는데 보고 자료를 너무 많이 요구했다"고 밝혔다.

백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종합해 앞으로의 과제와 제언도 담았다. 메르스 대응 과정에 참여한 관계자들에게 ‘신종 감염병 대응을 잘 하기 위한 중점 과제’를 물었더니 역학조사관 확충ㆍ양성이 16.8%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는 방역 컨트롤타워 재설계(14%), 의료기관의 감염관리 기능 강화(12.4%) 등이었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신종 감염병 각종 지침ㆍ매뉴얼의 개정, 효율적인 역학조사 방법론 정립이 제시됐다. 또한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는 질병관리청으로의 독립 추진 등을 포함한 질본의 역량 강화, 지자체 감염병 관리조직 확보와 역량 강화, 위기소통 역량 강화 등이 제시됐다.

한편 복지부는 이날 메르스 백서를 발표하는 동시에 39명의 메르스 유공자와 국립중앙의료원(NMC)에 훈·포상을 전수했다. 중앙거점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의 안명옥 원장, 민관합동태스크포스와 즉각대응팀 등에 참여한 김홍빈 서울대 교수가 훈장을 받았다. 포장은 3명, 대통령 표창은 15명, 국무총리 표창은 20명이 각각 받았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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