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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과 미국의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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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상투적인 관찰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이번 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미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경선 내내 돌풍을 몰고 왔던 민주당 좌파 샌더스 후보는 장장 30분짜리 연설에서 힐러리 후보 지지를 역설함으로써 아름다운 승복과 당의 화합을 과시했다. 또한 다양한 배경의 평범한 당원, 지지자들이 전당대회 연설대에 서도록 배려해 민주당은 다양한 약자들을 끌어안는 포괄형 정당으로서의 전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를 맞음으로써 그 개방성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미국 대선의 한 축인 민주당 후보 지명 전당대회에 관한 이러한 관찰 가운데 어느 하나 사소한 것은 없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방송을 통해 민주당 전당대회를 지켜본 필자의 눈길을 특히 잡아끈 것은 전당대회 기간 중 발표된 민주당 정책공약집(2016 Democratic Party Platform)이다. 우리 정당들의 화려하고 무책임한 공약과는 달리 계약의 신중한 체결과 엄정한 집행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 사회에서 공약이 갖는 무게감은 말 그대로 지엄하다(예를 들면 미국의 초등학교는 새로 입학하는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정으로 빼곡한 수십 쪽짜리 규정집부터 나눠준다). 힐러리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이 공약집은 4년간 미국 시민과의 계약서 역할을 하게 된다.

51쪽에 걸쳐 13개 장으로 구성된 힐러리의 민주당 공약집은 하나의 핵심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1)소득을 증대시키고 (2)쓸 만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3)탐욕스러운 금융계를 통제하고 (4)공정경제를 활성화시켜 “일하는 중산층의 경제적 안전”(공약집 제1장 ‘Raise Incomes and Restore Economic Security for the Middle Class’)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소득증대, 일자리 창출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내용들이지만 실은 여기에 우리 정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각별함이 담겨 있다. 4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서 제시했던 2012년 민주당 공약집(2012 Democratic Platform)을 돌아보면 그때도 제1의 정책 목표는 중산층 안전의 재구축(제1장 ‘Rebuilding Middle Class Security’)이었다. 다시 말해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두고 격렬하게 경쟁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후보 사이에는 8년이 지난 지금에도 양극화 시대 미국의 과제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에서는 강철 같은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일관성을 우리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제도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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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우리 현실을 돌아보자. 시민들 대다수는 아마 의식조차 못하고 있을 터이지만 불과 열흘 후에는 새누리당이 전당대회를 연다. 이어서 8월 27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하고 새 지도부를 구성한다. 미국 정당들의 전당대회가 다양한 지지자들에게 열려 있는 참여의 한마당이면서 동시에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정책 목표를 승계하는 릴레이 마당이라면, 우리 정당들의 전당대회는 그저 친박-비박-원박 또는 친문-비문들끼리의 당내 권력투쟁의 무대일 뿐이다. 우리네 전당대회에는 시민도 없고, 에너지도 없고, 당연히 미래를 향한 고민도 없다.

미국 정당들의 활력에 대비해 우리 정당들의 후진성을 비춰보는 일 역시 우리가 오랫동안 얘기해온 상투적인 스토리일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미국 정당 역시 지금의 우리처럼 ‘중년 (백인) 남성들만의 리그’로서 전당대회를 치렀다. 미국 정당들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계기는 1968년의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유지되던 미국의 대안정기는 68년 무렵 붕괴됐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가 닥쳐왔고 깊어가는 월남전의 수렁 속에서 극심한 분열과 가치관 충돌이 미국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다. 이 와중에 그들끼리 치렀던 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는 혼란과 무질서의 표본이었다. 전후 황금기를 이끌어온 구조와 사상이 흔들리는 위기 앞에서 미국 정당은 중년 백인 남성클럽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오늘날의 개방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는 점차 여성·흑인·청년·소수자들도 함께 어울리는 참여의 마당으로 변화했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숱한 격랑을 헤쳐온 우리는 다시 한번 대격변기의 한가운데 서 있다. 우리 모두 4차 산업혁명, 격차사회, 희망절벽을 걱정하지만 이 모든 말들이 우리 정당들에는 그저 하나의 상투적인 얘기로 들릴 뿐이다.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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