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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케 수진’ 1400개 패널 물결…“완벽한 마무리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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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긴’을 마치고 강수진이 인사하자 ‘깜짝 2부 공연’이 시작됐다. 예술감독의 신호에 맞춰 ‘DANKE SUE JIN’(고마워 수진)이 적힌 흰 종이를 1400여 관객이 일제히 들어올렸다. [사진 Stuttgart Ballet]

밤 10시, 막은 내렸고 커튼콜이 이어졌다. 인사차 무대로 올라온 예술감독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객석을 응시하자, 1400여 관객이 기다렸다는 듯 흰색 종이를 일제히 들어올렸다. 거기엔 빨간색 하트 문양과 함께 ‘DANKE SUE JIN’이란 글귀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깜짝 이벤트였다. 무대 위 서 있던 강수진(49)도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22일 슈투트가르트서 고별 공연
강수진 세계에 알린‘오네긴’열연
“다신 무대에서 춤추는 일 없을 것
독일 생활 청산하고 한국 정착
두번째 인생 시작, 두렵지만 모험”

‘강철 나비’가 마침내 토슈즈를 벗었다. 22일(현지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하우스는 30년 현역 발레리나를 위해 오롯이 바쳐졌다. 작품은 ‘오네긴’. 드라마 발레의 대명사로 강수진의 존재를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강수진은 여전했다. 탄력있는 점프와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그리고 사랑에 아파하는 타티아나의 섬세한 내면까지 50이란 나이가 무색했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헌정의 의미보다 공연 자체의 완성도로 충분히 포만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짚는 ‘추억팔이’가 아닌,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마지막까지 각인시켜준 셈이었다.

공연 뒤 “이대로 보낼 수 없다”란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강수진은 “발레리나로 무대 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공연을 마친 강수진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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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은 눈물을 왈칵 쏟으며 30년 무대 인생을 마무리했다. [사진 Stuttgart Ballet]

소감은.
“감히 완벽한 공연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갈무리지을 수 있어서. 이런 축복 속에 무대를 떠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난해 11월 국내 공연 뒤 8개월만의 무대다.
“2014년초 국립발레단장에 취임하면서 현역 은퇴 무대를 2016년 7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갖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약속을 지켜 기쁘다. 공백 기간은 힘겨웠다. 이토록 오랜 기간 무대를 떠난 적도 없었고. 과거엔 연습만 했지만 지금은 단장직도 수행해야 하지 않았나.”
전성기 기량 그대로였다는 평가다.
“업무시간 이외인 오전 9시 이전과 오후 6시 이후에 개인적으로 연습했다. 파트너 없이 혼자 해야지, 연습 절대 시간은 부족하지, 딴일은 많아 집중력은 약해지고 리듬도 무너지고…. 그걸 버티며 이를 악물었다. 은퇴 무대라고 공연이 아닌 것 아니지 않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끝까지 서는 게 또한 프로 아닌가. ‘마지막 무대니깐 잘 못해도 조금 봐주세요’라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최선을 다했고 내 모든 것을 던졌다. 그래서 여한이 없고 미련이 없다. 발레리나로 무대에 서는 일은 절대 없다.”
팬들은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은퇴하고도 몇 년이 지나 무대에 컴백하는 무용수가 적지 않다. 그분들 나름의 선택이니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난 그런 성격이 안되더라. 한번 끝이면 그냥 끝인 거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객의 기억에 남고 싶다. 이제 강수진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일은 결코 없다.”

강수진은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다. 사실상 국내 무용수 해외 진출 1호였다. 입단 11년만에 수석무용수 자리에 오르고,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1999년), 독일 캄머탬처린(궁중무용수) 등극 등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발레의 개척사(史)였다. 현재 해외 무용단에 활동중인 한국 무용수는 무려 200여명. ‘수진 키즈’인 셈이다.
 
K발레의 활약상이 최근 두드러진다.
“한번 작정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마력 같은 게 한국인에겐 있는 듯싶다.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종신단원인데.
“이번 공연이 현역 은퇴만큼 개인적으로 중요했던 건 독일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정착한다는 거였다. 평생 보장받는 안정된 미래를 박차고 나가, 비록 고국이긴 하나 30년간 떠나 있던 한국을 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남편(터키인 툰치 소크맨)이 적응할지 걱정이었다. 이젠 남편이 나보다 한국을 더 좋아한다. 외국에 나가 있어도 ‘김치찌개 먹고 싶다, 빨리 가고 싶어’라고 한다. 해외에서 오래 지내왔고, 한국에서 2년간 살았던 제 3자적 시각으로 봤을때 대한민국은 충분히 멋진 나라다. 어느 나라든 문제점은 있다. 지나치게 자학할 필요는 없다. 무대위가 아닌 바깥에서,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두렵지만 삶이란 결국 모험 아닌가.”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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