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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의 필드에서 만난 사람] “나만큼 골 먹은 키퍼 있나…754실점, 그게 내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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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는 프로축구 24시즌 동안 706경기를 뛴 ‘기록의 사나이’다. 그는 축구 인생을 돌아보며 “미생으로 시작해 완생으로 마무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기록의 사나이’가 떠났다. 함께 뛰던 동료에게서 ‘삼촌’ 소리를 듣던 선수. 프로축구 K리그에서 24시즌(1992-2015년) 동안 706경기를 뛴 ‘골 넣는 골키퍼’ 김병지(46)가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19일 은퇴 기사가 뜨자마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이 워낙 많다면서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22일 그를 만나 그라운드를 떠나는 심경을 들어봤다.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기록보다는 수식어에 더 애착이 간다. 기록은 숫자일 뿐이고, 숫자는 시간이 가면 채워진다. 하지만 ‘꽁지머리’ ‘골 넣는 골키퍼’ 같은 수식어에는 팬들의 사랑이 담겨 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을 때다. 팀에서 경기력이 엇비슷한 선수가 있다면, 누가 지도자의 신임을 얻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그 분’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 분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김병지는 2001년 1월, 파라과이전에서 중앙선 근처까지 볼을 몰고나오다 뺏겨 골을 먹을 뻔 했다. 히딩크 감독은 진노했고, 이후 국가대표 경기에서 김병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김병지는 “내가 지혜롭지 못했다. 그 때 경험을 통해 고참 선수가 팀 내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헌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됐다. 내가 롱런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쓰라린 경험 덕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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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이운재(43·올림픽대표팀 골키퍼 코치)다. 2004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 승부차기에서 김병지(포항)의 킥을 이운재(수원)가 막아내면서 경기가 끝났다.

그라운드 떠난 골키퍼 김병지
기록은 시간 가면 채워지는 것
수식어에는 팬 사랑 담겨 있어
‘꽁지머리·골 넣는 키퍼’ 별명 애착
2002 월드컵 벤치 지켜 아쉬워

 
골키퍼가 왜 승부차기를 했나.
“당시 최순호 감독님이 연습 때부터 ‘승부차기 5번 키커는 병지’라고 못박았다. 내가 경험도 많고 컨디션도 좋다고 본 것이다. 워낙 결정적인 장면에서 실축하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스토리들이 쌓였기에 팬들이 나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축구인생이 파란만장했는데.
“미생(未生)으로 시작해 완생(完生)으로 마무리 한 것 같다. 프로에 지명을 못 받고 용접공으로 축구를 계속 했지만 나중에는 K리그 최고 연봉 선수가 됐다. 늘 팬들을 의식하고 앞서가는 플레이를 했다고 자부한다.”
‘스위퍼 키퍼(스위퍼+골키퍼)’라는 모델을 만들었는데.
“지금 독일 대표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최후방 수비수 역할까지 해 내고 있다. 볼 컨트롤, 패스 능력, 스피드가 있어야 가능하다. 난 20년 전부터 그런 플레이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덕분에 K리그에서 3골(PK 2골, 헤딩 1골)을 넣을 수 있었다.”
선수 생활 내내 체중 78.5kg(키는 1m84cm)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살이 붙고 있는데 80kg은 넘지 않으려고 한다. 술도 한 잔씩 하려고 집에 와인셀러를 갖춰 놨는데 아직 시도는 안 해봤다.”
요즘 선수들은 야성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야성은 자기만의 독특한 스킬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선배들은 ‘김재한 헤딩’ ‘박경훈 스피드’ ‘이기근 골감각’처럼 자신만의 무기가 있었다. 요즘 선수들은 진정성은 있는데 야성은 좀 부족한 것 같다.”
축구 외에 즐기는 취미가 있다면.
“스타크래프트를 워낙 좋아해 PC방에 자주 갔다. 동네 꼬맹이들이 한 게임 하자고 들이대는 바람에 난처한 적도 있었다. 요즘은 골프도 가끔 한다. 스코어는 85타 정도다. 가장 즐거운 건 차를 몰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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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전남 드래곤즈에서 나온 뒤 잠깐잠깐 후배들을 지도해 줬다. 그 중에서 보인고 골키퍼 심민(18)은 전반기 고등리그 왕중왕전에서 세 차례 승부차기를 모두 승리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심민은 “승부차기에서 선방한 건 김병지 삼촌 덕분”이라고 했다. 김병지도 후학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후배 골키퍼들은 김병지가 ’골키퍼 출신 감독‘의 길을 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70년대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고(故) 함흥철 감독 이후 국내에는 골키퍼 출신 감독을 찾기가 어렵다.

헤어지기 직전 김병지에게 “중국 수퍼리그에서는 골키퍼가 좀 하면 이적료 100억원이 붙는다”고 귀띔했다. 김병지는 “내가 가면 10년 안에 100억짜리 선수 10명도 넘게 키워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만큼 골 많이 먹어본 골키퍼 있나.(706경기 754실점) 골 먹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게 가장 큰 자산이다.”

글=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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