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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 버킷리스트] 벤처 CEO에서 요들송 가수로

 
김원섭씨가 2011년 유럽 여행 때 한 거리 공연.


2011년 4월 독일 쾰른. 우쿨렐레(작은 기타 모양의 4줄 악기)를 맨 한 한국인이 성당 앞 광장에 섰다. 그는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맑은 목소리로 요들송을 불렀다. 잠을 자고 있던 한 노숙인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짧은 공연이 끝나자 노숙인은 웃는 얼굴로 한국인 요들송 가수에게 돈을 내밀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준 동전을 노래삯이라며 그에게 건넸다.

동양에서 온 요들송 가수는 한국인 김원섭(61)씨였다. 그가 5년 전 은퇴 기념으로 떠났던 유럽 캠핑 여행 때 겪은 일이다. 21일 인터뷰에서 김씨는 “대학이 몰려있는 아헨에서 맥주 파는 카트에 걸터앉아 대학생과 함께 즐겼던 버스킹(거리 공연). 밤베르크에서 할머니ㆍ할아버지와 함께 부른 노래. 요들송 버스킹에 중독되게 한 행복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제 김씨는 ‘목장주인’이란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어엿한 요들송 가수다. 서울시에서 선발한 거리예술단의 일원으로, 서울 시민청 예술가로, 서울 신촌과 경기 용인을 오가는 거리 아티스트로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00회 넘는 공연을 했다.

 
김원섭씨가 멤버로 활동 중인 ‘실버그래스’ 뮤직비디오. 노래 제목은 ‘첫 번째 가출’. 왼쪽부터 만돌린 김구(63), 기타 장광천(58), 밴조 임영란(56), 콘트라베이스 김원섭, 기타 이웅일(62)씨. 


2011년까지 그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1981년 태화섬유(파크랜드 전신)에 취직해 수출 담당자로서 해외 판매 일을 10여 년 했다”며 “이후 의류 관련 상사회사에 과테말라, 도미니카 등에 머물며 지사장으로 근무했다”고 전했다. 그는 IT(정보기술) 붐이 한창이었던 2000년 전공을 살려서 섬유자재업체 수출 통합 관리 시스템을 전문으로 하는 아이작텍스닷컴이란 회사도 창업했다.

김씨는 의류 상사맨으로, 벤처 창업가로 30여 년을 쉼 없이 달렸다. 그리고 56세를 맞은 201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은퇴 기념으로 그는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캠핑 친구들과 두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대학시절부터 취미로 하던 요들송을 장기로 삼아 김씨는 거리 공연에 나섰다. 이때 경험이 그의 인생 2막을 바꿔놨다. 요들송 거리 공연과 함께 ‘실버그래스’라는 팀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실버그래스는 블루그래스(미국 컨트리 음악의 한 종류) 장르를 주로 한다. 50~60대로 멤버가 짜여졌지만 올 4월 ‘첫 번째 가출’(디지털 앨범 ‘노년반격’ 중)이란 곡으로 음원과 뮤직비디오까지 낸 엄연한 신인 그룹이다.

요들송, 컨트리 음악가로서의 삶. 그가 의류 상사맨으로 바쁘게 살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김씨는 “상사맨으로서 성취감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옛날엔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했다. 사회 생활에 치여 기타 치고 노래도 부르고 싶고, 캠핑도 가고 싶은데 못했다”며 “지금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상사맨 때와는 또 다른 성취감을 공연 때마다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가 마음 먹은 일도 있다. “유럽을 다닐 때는 한두 사람이 지나가면서 공연을 보더라도 호응하는 게 느껴졌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벽을 보고 공연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처음엔 많았습니다. 저도 직장 생활을 할 땐 그랬을 거다. 바쁘고 여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한국에서도 좀 더 여유있게 사람들이 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금은 저도 관객과 호응하는 노하우가 늘었다.”

이렇게 버킷리스트를 하루하루 지워나가고 있는 그가 반퇴인에게 하게 싶은 말은 하나다.
 

이젠 누릴 때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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