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동화 구연 봉사하는 여고생들 “애들 돌보다 철들었어요”

기사 이미지

지난 2일 경남 통영시 초록우산마을에서 충렬여고 3학년생들이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김예지양은 “처음엔 동네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지나고 보니 스스로에게 큰 힐링이 됐다. 어른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고생들은 매주 토요일 3시간씩 동화 구연을 한다. [통영=송봉근 기자]

지난 2일 오후 경남 통영시 미륵도에 있는 초록우산마을. 이곳은 사회복지재단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민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다. 충렬여고 3학년 학생들이 4~6세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었다. 여고생들은 이날 어린이 인성교육 시간을 맞아 여름을 주제로 동화 구연을 했다.

아동 돌봄 공동체 초록우산마을
밥 짓기, 청소, 고민 상담, 놀이…
지역 주민·학생 재능기부로 운영
합창단 꾸려 요양원 등서 공연도
“남 돕기만큼 훌륭한 인성공부 없어”

“밸아, 이기 산딸기데이. 하나씩 묵고 가자.”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이수빈(18)양이 경상도 사투리로 할머니 연기를 펼쳤다.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덥네, 밸아, 내 더위 살래?” 손녀 별이 역할의 김예지(18)양이 물었다. “할무이요, 그게 뭔데예?” 곧이어 효과 담당인 김혜민(18)양이 입으로 ‘맴맴’ 매미 소리를 내며 무대 위에 슬라이드를 띄웠다. 새빨간 산딸기 위로 햇님이 방긋 웃는 모습이었다.

구연이 끝난 후엔 팥빙수와 부채도 함께 만들었다. 올 1월 재능기부를 시작한 여고생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더욱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저보다 약한 사람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동화 구연 아이디어를 내고 친구들을 모아 재능기부를 시작한 김예지양은 스스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고 좀 더 철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예지(18)양도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엄마와의 대화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안진철 충렬여고 교장은 “학생 스스로 선생님 역할을 하면서 매우 어른스러워졌다. 남을 돕는 것만큼 훌륭한 인성 공부는 없다”고 말했다.

초록우산마을은 이처럼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 ‘아이 한 명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실천하듯 주민 모두가 이곳에 등록된 30여 명 아이의 선생님이다. 초록우산마을은 통영 이외에도 경북 포항(구룡포)과 전남 나주, 경기도 의정부에 있다.

통영 초록우산마을에서 아이들 밥을 챙기는 권맹숙(55·여)씨는 아이들의 고민 상담도 한다. 친구와 다툰 일, 부모님께 잘못한 일 등을 함께 이야기하고 조언해 준다. 권씨는 건강한 음식을 위해 인공 조미료 대신 새우와 멸치 육수로 모든 간을 한다. 한 끼 준비에만 꼬박 네댓 시간이 걸린다.

초록우산마을 후원회장인 전두병(55)씨는 지난해 주민 30여 명을 모아 ‘산타원정대’를 조직했다.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 등 기념일에 산타 분장을 하고 통영시내 지역아동센터 9곳을 돌며 선물을 나눠 준다. 전씨는 “올 하반기부터 거주 환경이 열악한 아동의 집을 무료로 고쳐 주는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이 아이들의 일에 발 벗고 나서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초록우산마을이 위치한 미륵도는 다리 하나를 두고 육지와 연결돼 있지만 교육여건이 열악했다. 상대적으로 통영시의 다른 지역보다 낙후돼 있어 아이들의 안전사고도 잇따랐다. 특히 2012년 이 지역에서 초등생 성폭행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통영시와 미륵도 주민들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아동시설 건립을 요청했다. 재단은 2014년 시가 제공한 주민센터 부지 위에 지역민들이 모은 기금을 보태 2층짜리 건물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장난감도서관과 북카페, 강당 등을 갖췄다.

초록우산마을이 생기면서 지역민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청소 봉사자인 정명숙(49·여)씨는 “재단이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충렬여고 학생들의 재능기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9월엔 통영고 남학생들도 동화 구연을 시작한다.

2년째 운영 중인 초록우산마을의 어린이합창단은 이제 통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역의 스타가 됐다. 통영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를 비롯해 노인요양원과 학교 등을 찾아가 공연기부를 한다.

특히 합창단 활동은 아이들의 품성도 변화시켰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와 따로 살고 있는 지훈(가명·12)이도 합창단의 멤버다. 지훈이는 늘 친구들과 다투고 말썽 피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2년 전 합창단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후배들을 챙긴다.

지훈이는 “한마음으로 함께 노래를 불러야만 합창단 공연이 잘돼요.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저도 행복하단 걸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고주애 박사는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복원하는 게 가장 좋은 인성교육 방법”이라고 했다.

통영=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