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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포켓몬 고’와 진경준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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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논설위원

1990년 무렵 ‘드래곤볼’이란 일본 만화가 인기를 끌었다. 소원을 이뤄주는 7개의 여의주를 찾기 위해 손오공이 모험을 떠난다. 길을 막아서는 괴물들을 차례로 물리치며 절대강자로 커간다. 이런 스토리가 꽤 중독성이 강했나 보다. 동네 만화방에서 이 만화를 빌려 보려면 제법 오래 기다려야 했다. 10여 년쯤 뒤 ‘포켓 몬스터’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아이들의 넋을 빼놓는 애니메이션을 곁눈질로 보니 큰 얼개가 드래곤볼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주인공이 잡아 길들인 몬스터가 악당 괴물을 물리치면 더 강한 괴물이 금세 나타난다. 이 과정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된다.

즐거운 경쟁 유발하는 게임은 가치를 창출하지만
공직자의 무모한 욕심은 자신과 사회 모두 망칠 뿐


자칫 지루한 무한도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가 있으니 인기를 끈다. 인간은 경쟁을 즐긴다. 보다 강한 아바타나 캐릭터를 확보해 남을 이기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리그 오브 레전드’ 모두 이런 요소를 갖췄다. ‘포켓몬 고’는 한 단계 더 진화했다. 게임 장소를 방 안에서 세상으로 확장했다. 키보드와 손가락 대신 휴대전화와 두 다리로 게임을 한다. 실감과 쾌감 모두 상승할 수밖에 없다.

‘포켓몬 고’ 열풍은 긍정적이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않아도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귀엽고 다양한 캐릭터는 기술적으로 무한정 공급할 수 있다. 기존의 것들이 식상해지면 새롭고 레벨이 높은 캐릭터를 추가로 만들어내면 된다. 재미와 쾌락이라는 심리적 가치가 사실상 무한정 제공된다. 수많은 이들이 경쟁하면서도 즐거운 무한도전을 할 수 있다. 피서지 속초가 때 이르게 북적거리는 걸 보면 경제적 가치도 꽤 쏠쏠하게 만들어내는 듯싶다.

하지만 현실에선 정반대 무한도전이 판친다. 정당하지 않은 것을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게임이다. 진경준 검사장은 최고 학벌과 권력을 손에 쥐고 살아왔다. 그러면서 검사장이라는 명예와 경제적 부를 함께 갖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의혹이 드러난 뒤에도 잇따라 말을 바꾸며 국민을 속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없었더라면 주식과 자동차, 처남 일감으로 이어진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졌을지 궁금하다.

친구에게 받았으니 별거 아니라고 여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게임과 달리 현실의 기회와 자원은 한정돼 있다. 그가 더 가진 만큼 누군가가 덜 가지게 된다. 해당 회사의 주주나 근로자, 혹은 회사 자체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해야 할 공직의 품위와 신뢰도가 땅에 추락했다. 열심히 사는 대다수 국민의 의욕도 한풀 더 꺾였다. 그가 누린 이익보다 사회·경제적 가치 하락분이 훨씬 크다. 그걸 몰랐을 리 없기에, 그의 무한도전은 더욱 질타를 받는다.

이런 고위 공직자가 그 한 사람만이길 바란다. 그런데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을 보면 잠재적 후보자가 여럿 더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망언의 배경엔 ‘나는 당연히 상위 1%’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런 사람에게 만약 1%에서 밀려날지 모르는 위기가 찾아오면 순순히 99%의 자리로 물러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진경준식 무한도전이 시작되진 않을까.

진 검사장은 1급, 나 전 기획관은 2급 공무원이다. 이들이 속한 고위 공무원단은 모두 1500명뿐이다. 100만 명이 넘는 전체 공무원의 0.2%가 채 안 된다. 상당수가 억대 연봉자다. 이 정도면 권력과 명예·부를 어느 정도 갖췄다. 큰 걱정 없이 나랏일을 수행하라는 국민의 배려로 누리는 혜택들이다. 분골쇄신까진 아니더라도 공평무사를 실천할 의무가 있다.

1996년 7월 27일. 서울지검 형사3부 진경준 검사가 6000원짜리 열차표를 1만원에 판 회사원을 구속기소했다. 암표상도 아닌데 이례적으로 구속한 이유를 기자가 묻자 진 검사는 “암표 판매행위는 피서객이나 귀향객들의 심리를 악용해 부당이득을 올리는 나쁜 범죄다. 휴가철을 앞두고 암표상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구속기소했다”고 말했다. 꼬박 20년 뒤인 지금 진 검사장이 고위 공직자들에게 울리고 있는 경종은 훨씬 무겁고 중하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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