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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자칫 쓸모없어질 자본확충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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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현
경제부문 기자

2009년 은행 자본확충펀드가 마련됐다.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시중은행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총 20조원 규모의 ‘실탄’을 마련했다. 그런데 실제 집행 규모는 3조9560억원에 머물렀다. 시중은행들은 사정이 어려웠지만 이 펀드를 찾지 않았다. 금리가 연 6~7%로 시중 금리보다 높았던 탓이다.

정부와 한은이 국책은행의 부실 확대에 대비해 조성한 11조원 한도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도 과거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국책은행펀드 대출은 시장보다 금리를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통화위원들도 “실제 대출 실행은 엄격하게 정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발권력이 동원되는 만큼 엄격한 집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원칙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쓸모’가 없어진다는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자본확충펀드는 국책은행이 발행하는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이 대출금리가 연 2.5% 안팎이 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하지만 현재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금조달 수단인 산금채나 코코본드 금리는 연 2.1~2.2% 수준이다. 국책은행 입장에선 시장에서 더 싼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굳이 비싼 금리를 물면서 자본확충펀드를 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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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무용론(無用論)’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는 정부와 한은이 자초한 결과다. 자본확충펀드는 ‘비상용’이다. 조선·해운업의 부실이 금융권으로 번져 경제 전체가 신용 경색에 빠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안전판’의 성격이다. 그렇다면 서두르지 말고 자본확충펀드의 설계를 보다 촘촘히 했어야 옳다. 그런데 정부와 한은은 조급했다. 금통위가 의결을 하기도 전에 자본확충펀드 조성을 발표해 버렸다. 금통위는 뒤늦게 도장만 찍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한은의 ‘기싸움’만 부각됐다. 정부가 국회 동의를 피하고자 발권력을 동원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 구조조정의 본질과 무관한 논란이 무성했다. 정작 정부는 조선업 등 구조조정 타깃이 된 산업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에 대한 ‘큰 그림’을 마련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본확충펀드가 출범한 만큼 정부와 한은은 실제 구조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고심해야 한다. 물론 한은 등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대출금리를 너무 낮게 잡으면 ‘퍼주기’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엄격하게 시행하겠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아직도 불확실한 대출 집행의 구체적 원칙부터 세워 시장에 투명하게 알리는 게 먼저다.

하남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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