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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의 건축, 예술로 읽다] 공간으로 지은 시, 윤동주 문학관

청운동 옛 수도가압장 개조
하늘로 열린 우물과 암흑의 독방
낡은 콘크리트 물탱크로 시인 내면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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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시실 ‘닫힌 우물’.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들었다.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부끄러운 것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영화 ‘동주’에서 시인 정지용이 청년 윤동주에게 한 말이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치욕과 한탄의 세월을 지독하게 자책하며 보낸 이도 있었고 적당히 눈치 보며 목숨 부지하고 사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후자가 다수였다. 부끄러움을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청년은 그 감정을 시로 풀어놓았는데, 시는 아름다웠지만 행동하지 않고 반성하고 자책할 뿐이었다. 청년은 매번 자신의 시를 통해 부끄러워지고 슬퍼하며 내면 깊숙이 웅크리게 되었다.

영화는 혹독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한 청년을 통해 우리가 꽁꽁 숨기려 하는 자아의 민낯을 드러나게 한다. 윤동주라는 시인의 삶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비추어 보게 된다. 내 삶은 지금 얼마나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시인처럼 순수한 영혼이 아니다 보니 심각하게 부끄러움을 느끼진 못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답답해 온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걸까. 그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왜, 그렇게? 영화 속 청년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신에게(관객에게) 묻는다. 그래서 관객도 어쩐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로 홀로 찾아가선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자화상(自畵像)

시 속의 사나이는 드넓은 자연과 비좁은 자아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지는 무한한 자연을 하필이면 자신이 파놓은 작은 우물 속에서 발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운 사람으로서 행동하지 못하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것도, 폭력에 굴복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도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며 사는 게 쉽지 않았던 시대. 그래서 시인은 행동하거나 타협하거나 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하는 수 없이 자기의 우물을 파고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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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 외부 전경.


시인이 파놓은 우물 같은 공간이 서울 청운동 언덕 하얀 집에 있다. 집의 이름은 윤동주 문학관이다. 문학관 윗길은 젊은 날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며 하숙하던 누상동 집에서 산책길로 이용했던 ‘시인의 언덕’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서 윤동주라는 사람을 기억하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낡은 것들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공간이다.

오로지 시를 통해 느끼는 충만감이 존재한다면 그 느낌을 건물로도 전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특별한 공간이랄까. 언덕 위 옛 수도가압장이 있던 자리에 있는 문학관은 윤동주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시를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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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 ‘열린 우물’.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발해 마당을 만들었다. [사진 최준석]


청운 가압장은 인근 아파트 급수를 위해 1974년에 설치되었다. 이후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가압장은 버려졌다. 하지만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성곽 주변 아파트 터에 윤동주 언덕을 조성하기로 하면서 가압장을 문학관으로 바꾸는 계획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윤동주 문학관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콘크리트 물탱크실 두 개가 발견됐다. 가압장 후면 경사진 언덕에 묻혀있던 이 두 개의 물탱크는 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충만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물탱크 내부 벽면의 더럽고 낡은 질감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윤동주라는 사람의 짧은 일생을 잘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색 페인트로 단순하게 마감된 소박한 외관에서는 그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물탱크로 상징되는 시인의 ‘우물’은 건물 내부로 들어와야 만날 수 있다. 오래전 시인이 하숙했던 동네의 정취와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후쿠오카 감옥의 분위기가 오묘한 시어처럼 옛 물탱크실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공간으로 지은 시랄까.

시인의 각종 유품, 자필 서신,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는 전시 공간을 찬찬히 훑어보고 두 번째 공간으로 넘어가면 물탱크 천장을 뚫어 하늘로 열리게 한 작은 마당이다.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처럼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있고 파란 바람이 불며 계절이 불쑥 다가오는 공간이다. 물탱크에 담겨있던 오래된 물때 흔적이 벽면에 마치 지층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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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우물’을 밖에서 본 모습. 권혁재 기자


우물을 지나 둔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번엔 캄캄하고 축축한 방이다. 이곳은 깊은 자의식의 세계, 한편으론 시인이 고문받다 죽은 후쿠오카 감옥의 공간적 오마주다. 하늘로 열린 우물에서 암흑의 독방 사이에 놓인 둔중한 철문을 밀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윤동주 문학관 공간 체험의 백미다. 시 속에서 늘 충돌하며 때론 희망을 때론 절망을 노래하던 자연(自然)과 자아(自我)가 겹쳐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철문이 닫히자 시인의 일생을 담은 영상이 투박한 벽면에 되살아났다. 물탱크 점검 사다리가 달려있던 천정의 작은 구멍은 좁지만 강한 빛을 내부로 들여보낸다. 낡은 벽이 빛과 포개져 얼핏 주름살 같은 또렷한 세월의 흔적을 새긴다. 그러자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시 ‘아우의 인상화’에서 시인은 어린 동생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그러자 동생은 ‘뭘 그런 걸 물어?’하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답한다. ‘사람이 되지.’ 슬며시 잡은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봤다는 시인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라고 했던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평범하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조금만 부끄러워하고 조금만 용기 있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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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최준석(45)은 건축사사무소 NAAU 대표다. 주택, 어린이집, 기업사옥 등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삼육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출강 중이다. 『서울건축만담』 『어떤 건축』 등의 건축 에세이를 펴냈다.

※모든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건축, 예술로 읽다’는 건축물에 스며 있는 예술을 이야기합니다.


[최준석의 건축, 예술로 읽다]
▶생략과 절제의 미학, 사각형은 힘이 세다

김수근의 空間엔 세 개의 시간이 흐른다
▶칸딘스키 ‘원 속의 원’ 닮은 도심 속 추상화 한 점
▶문화 공간이 된 컨테이너, 예술은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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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