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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 위기 뇌관으로 떠오른 이탈리아 은행

유럽 경제의 약한 고리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환매 중단에 나선 영국 부동산 펀드에 이어 이탈리아 은행이 유럽 경제를 뒤흔들 위기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후폭풍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이탈리아 주요 은행의 주가는 급락했다. 4월 이후 비실대던 은행주가 브렉시트 후폭풍에 다시 한번 타격을 입은 것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은행의 건전성을 우려하는 투자자가 주식을 내던진 탓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자 이탈리아 3위권 은행인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 주가는 올 들어 13일까지 73.48% 하락하며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이탈리아 은행의 상태는 ‘좀비’에 가깝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탈리아 은행이 보유한 부실대출은 전체 대출의 17%인 3600억 유로(약 457조원)”라며 “은행들의 대차대조표는 엉망진창”이라고 보도했다. 금융이론상 기준인 2%보다 8배나 높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부도 위기에 몰린 미국 은행의 부실 대출 비율(5%)과 비교해도 엄청난 수치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은행권의 부실 대출은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한다.

은행의 부실이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 조짐에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나섰다. 400억 유로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제금융에 나서기로 하고 EU에 승인을 요청한 것이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EU 규정 때문이다.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기 전 금융회사 부실에 따른 비용을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먼저 부담해야 하는 ‘베일인(bail-in)’ 조항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적용하기 어렵다. 이탈리아의 경우 은행 채권 투자에서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45%에 이른다. 기관투자자가 대부분인 다른 시장과 달리 베일인 제도를 적용하면 저소득층을 포함한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입는다.

WSJ은 “채권자에 부실 대출의 책임을 물리면 개인투자자의 채권 투매가 이어지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혼란은 10월 개헌 국민투표에 정치 생명을 건 렌치 총리에게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렌치 총리는 상원 기능을 없애고 국회의원을 100명 줄이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렌치의 힘겨루기도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드라기는 3일(현지시간) 렌치의 공적자금 투입 카드가 “EU 금융규제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실제 속내는 우파 진영의 유력한 차기 총리로 꼽히는 드라기가 정적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위험한 곳은 이탈리아 은행만이 아니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도 위태롭다. 도이체방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7일 252.1bp(100bp=1%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유럽 금융시장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로렌조 비니 스마기 소시에테제네랄 이사회 의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전체 은행 시장이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탈리아 은행 위기가 다른 유럽 지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도이체방크 자료를 인용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부실은행 자본 확충에 1500억 유로의 공적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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