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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 짠 이야기 나올까 걱정했는데…쓰다 보니 자꾸 새 얘깃거리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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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인터넷의 위세에 맞서 어떤 소설은 갈수록 짧아진다. 자구책, 일종의 가진 거 내려놓기다. 몇 해 전부터는 말 그대로 손바닥 만한 장편(掌篇)소설,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 조각이라고 할 만한 짧은 글 모음집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성석제·정이현·이기호 작가 등이 이 방면의 선구자들이다. 그 흐름에 21년차 작가 조경란(47)도 동참했다. 올 상반기 꼬박 매달린 ‘짧은 소설’ 모음집 『후후후의 숲』(스윙밴드·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열세 번째인지 열네 번째 소설책인지 헷갈린다”는 조씨를 지난 8일 오후 만났다. 늘 같은 검은색 옷차림에 20년 넘게 고수하는 같은 헤어스타일이다. 조씨는 “가볍고 자유롭게 쓰려고 노력한 결과물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독자로서 또 작가로서 이야기의 복원이라는 화두가 있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조씨 자신은 왜 소설책을 읽는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또 독자들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따져보고 싶었다고 했다. 조씨는 하루에 딱 두 시간씩만 쓰기로 했다. 안 써지면 굳이 쓰려고 하지 않았다. 자칫 쥐어 짠 이야기들이 나올까 걱정되서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싹 지우고 마음 가는 대로 썼다. 소설 쓰기의 출발점 같은 곳으로 돌아가 그 의미와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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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등단 21년차인 소설가 조경란씨. 짧은 글 모음 집 『후후후의 숲』을 출간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렇게 씌여 책에 실린 31편 가운데는 소설 같지 않은 글들도 꽤 있다. 주제나 소재, 등장인물의 잣대로 따지면 계통도 질서도 없어 보인다. 그만큼 다채롭다. 구도자 수준으로 물욕이 없어 구멍 숭숭 뚫린 언더웨어를 고집하는 바람에 사랑을 나눌 때 굳이 언더웨어를 벗을 필요가 없던 미영의 영국인 남자 친구 토니(‘토니의 고민’), 생일이라는 단 하나의 위안에 의지해 하루 종일 닭 튀기는 고단함을 잊은 치킨집 여종업원 영미 같은 사람이 나온다(‘해피버스데이’). 슬그머니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낸 작품도 여럿이다(‘정금마을 통신’‘딸기의 맛, 설탕의 맛’‘맥주의 여왕’ 등등).

표제작 ‘후후후의 숲’은 만년 취준생, 실직자, 퇴직자 등이 주로 모여 나뭇잎에 ‘후후후∼’ 입바람을 불어대는 느슨한 운동을 통해 삶의 용기와 희망, 숨만 제대로 쉬어도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인생철학을 공유하는 헐거운 얘기다.

조씨는 “쓰다 보니 자꾸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겨나 그걸 먼저 쓰다 보니 아직 못 쓴 얘기가 많다”고 했다. 소득도 있어 “쓰고 읽는 게 더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한 때 조씨는 변화하는 소설 풍경의 상징 격이었다. 1996년 한 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단편 ‘불란서 안경원’),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장편 『식빵 굽는 시간』)을 한꺼번에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그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 어떻게 하면 그 빛을 꺼뜨리지 않을까 애쓰던 야심찬 젊은 작가였다. 세월이 흘러 그런 조씨가 변한다. 이번 책의 ‘신지 않은 것뿐이야’ 같은 글에서처럼 밤커피가 부담스러워지고, 클래식이 점점 좋아지는 나이에 이르면서다. 그런 여유와 아량으로 새 책은 느릿하면서도 감칠맛 난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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