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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가격은 상품 가치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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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많은 한국인이 중국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삼국지(三國志)』도 중국인 못지않게 읽었고 공자(孔子) 말씀 또한 중국인보다 더 잘 이해한다고 여기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유비(劉備)나 공자에 익숙하다고 해서 현대 중국과 현대 중국인까지 잘 안다고 할 수 있나. 중국 전통과 현대 사회주의가 결합해 묘한 이중주를 내는 중국의 독특한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중국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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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로 치면 읍에 해당하는 곳에서 공장을 운영한 우리 기업인이 겪은 일이다. “현지 법인 사장이 형광등을 사러 동네 가게에 갔다. 얼마냐고 물으니 주인이 16위안이라고 한다. 그 뒤 조선족 직원을 보냈더니 14위안에 사 왔다. 다음엔 산둥성 출신 종업원을 시켰더니 10위안이면 됐다. 마지막으로 그 지역 토박이 직원에게 부탁했더니 8위안이면 족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반응은 대개 이렇다. “중국 비즈니스는 조심해야 해. 걸핏하면 속인다고.”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어. 가격을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거래를 하나.”

중국은 평등이 아닌 차등의 사회
사람 간 관계는 자신을 기준 삼아
중심서 주변으로 갈수록 멀어져
가족 요구는 무조건 들어주지만
아는 사람과는 주고받기 식 거래
모르는 이에겐 법 따라 처리할 뿐


그러나 이 사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격을 달리 부르는 주인의 행태에 일정한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주목하면 해석이 달라진다. 주인이 엿장수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가격을 부르고 있는 건 아니다. 같은 동네 사람에겐 가장 싸게 받았고 이후 같은 성(省) 출신, 중국인 순으로 가격이 높아지기 시작해 외국인인 한국 사람에게 제일 비싸게 받았다. 가게 주인을 기준으로 삼아 자기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가격은 올랐다. 이것이 가게 주인이 가격을 정한 원칙이다.

이런 가격 책정을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가게 주인과 이 동네 사람에겐 지극히 합리적이다. 같은 마을 사람, 아는 사람에겐 당연히 싸게 팔아야 한다. 여기서 가격은 단순히 상품의 가치만을 반영하는 게 아니다. 인간관계까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은 중국 사회와 중국 문화의 원형을 설명한 『향토 중국』이란 책에서 중국인의 인간관계를 포함해 중국 사회는 차등적 서열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네트워크는 자기를 중심에 두고 차등 원리에 따라 서열을 구분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다.

마치 수면에 돌을 던졌을 때 생긴 동심원(同心圓)의 파문이 점차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작아지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중심에서 주변으로 나아갈수록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이 동심원의 중심은 개인이고, 동심원의 파문이 퍼져나가는 것에 따라 개인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이 분석에 따르면 중국인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시(關係)’란 것도 결국엔 동심원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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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한 개인의 인간관계 차원에서 보자. 나를 중심으로 동심원의 가장 안쪽에 친구가 있다. 중국인들은 친구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진정한 친구관계가 아니더라도 친구란 말을 쓴다. 아이에게도 뒤에 친구를 붙여 ‘어린 친구(小朋友)’라고 한다. 친구가 인간관계의 최고 경지여서 그렇다. 하지만 친구도 다 같은 친구는 아니다. 친구 안에서도 ‘좋은 친구(好朋友)’ → ‘오래된 친구(老朋友)’ → ‘마음을 나누는 친구(眞心朋友)’의 순으로 서열이 있다.

친구 다음으로는 ‘아는 사람(熟人)’에서 ‘낯선 사람(陌生人)’의 순서로 동심원의 서열구조가 이루어진다. 『좌전(左傳)』에 ‘하늘에는 10개의 태양이 있고, 사람에게는 열 개의 등급이 있다(天有十日 人有十等)’고 했는데 중국인의 네트워크는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자기 주위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중국인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동등한 개인으로 대하지 않는다. 순자(荀子)의 말처럼 먼저 차등을 분명히 한 뒤 이를 바탕으로 조직이나 집단을 이루는 ‘명분사군(明分使群)’의 원리가 인간관계의 토대를 이룬다.

이는 차등의 원리다. 사람을 구분하고 차등을 둬 대하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는 신 앞에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하지만 중국에선 다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에 따르면 ‘나면서부터 서로 연결돼 있지만 평등하지는 않다(生而關聯 非生而平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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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등의 원리는 유교 중심의 전통사회에서만 적용된 게 아니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차등의 원리는 작동했다. 출신과 사상에 따라 우선 홍색·회색·흑색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그 안에 각기 다섯 부류를 포함시켰다. 혁명군과 빈농 등 다섯 부류가 속한 홍오류(紅五類), 지식인과 도시민 등이 포함된 회오류(灰五類), 지주와 부농 등을 망라한 흑오류(黑五類) 등이 그런 것이다. 분류에 따라 대우를 달리했다. 전통사회의 차등 원리가 사회주의식으로 변용돼 작동한 것이다.

이렇게 주변 사람을 구분 지은 뒤에는 각기 다른 원리에 근거해 해당 그룹에 속한 사람을 다르게 대한다. 예를 들어 개인을 중심으로 한 동심원 네트워크의 가장 안쪽에 있는 사람은 가족과 친구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에겐 상대가 요구하면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는 ‘요구 법칙(need rule)’이 적용된다. 가족과 친구 사이에 법이 무시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인간관계의 원리는 중국인이 자랑하는 인정(人情)이 최고로 빛을 발하는 지점을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중국 사회의 고질병과 부패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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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아는 사람(熟人)’ 사이에는 ‘균등 법칙(equality rule)’이 작동한다. 상대가 한 번 밥을 사면 다음엔 내가 꼭 밥을 한 번 사는 것처럼 서로 균등하게 주고받으면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사회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내가 하나를 받았는데 거기에 상응하는 것을 상대에게 주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그것이 돈이든 은혜든, 선물이든 뇌물이든 왔으면 반드시 가야 한다. 상대가 나의 체면을 세워주었으면 나도 상응해 상대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그래야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친구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동심원의 가장 바깥쪽인 남과의 사이, 즉 모르는 관계에선 ‘공평 법칙(equity rule)’이 움직인다. 이 경우 상대를 비교적 냉담하게 대하면서 철저히 법과 규칙에 따른다. 일방적으로 주지도 않고, 오고 갈 필요도 없는 관계다. 규정과 법이 가장 철저하게 지켜지는 지점이 여기다. 중국 사회의 장단점이 이런 인간관계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만일 산둥성의 가게 주인이 친구를 외국인과 같이 대했다면 그 사람은 동네에서 인간 이하 취급을 당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그 가게 주인에게 친구처럼 대해 달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다. 가게 주인을 사기꾼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중국인의 인간관계 원리가 중국인의 비즈니스에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를 절감해야 옳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던 시절엔 중국 문화를 이해하느라 밤을 새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제품을 중국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 팔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이제 세계의 시장으로 변했고 중국인들을 상대로 내수를 개척해야 하는 현 시점에선 중국 문화와 중국인의 생각·행동을 이해하고 이런 것에 접속하는 문화적 현지화 노력이 절실하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중에서 문화적 현지화에 성공한 기업의 사례가 늘고 있는 건 고무적이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중국 문화의 핵심인 ‘인(仁)’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중국인의 마음에 접속하는 데 성공한 게 대표적 예다. 초코파이는 제품 포장에 ‘인’을 한자로 새기고, ‘인이 있는 곳에 친구가 있다(有仁有朋友)’란 광고 문구로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신라면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는 말을 빌려 ‘매운 맛을 모르면 대장부가 아니다(吃不了辣味非好漢)’는 광고로 중국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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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중국에 이웃 나라는 협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이다
② 중국 기업 혁신은 남방 상인의 도가 실용주의가 이끈다


많은 한국인이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긴 어렵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서구 문화를 빠르게 흡수했고, 중국은 전통과 사회주의가 독특하게 결합된 체제에서 살아 왔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 사이엔 거리가 생겼다. 중국 진출을 꾀하는 우리 기업이 중국 문화가 우리와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중국인의 마음에 접속하는, 즉 문화적 현지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욱연=서강대 중국연구소 소장을 겸하며 현대 중국문학과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현대중국학회 부회장으로 미 하버드대 페어뱅크중국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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