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국민의 모든 선택은 다 이유가 있다

기사 이미지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네 살에서 여섯 살 사이의 아이들에게 마시멜로와 같은 좋아하는 간식이 담긴 그릇을 건넨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간식을 한 개 먹을 수도 있지만 만약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만 기다려 준다면 두 개를 먹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런 뒤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켜본다. 이 연구는 원래 쾌락적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언제,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규명할 목적으로 1960년대 후반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에 의해 진행됐다. 이 스탠퍼드대 마시멜로 실험은 20여 년간의 후속 연구를 통해 두 배의 간식을 위해 15분을 기다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더 높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했다는 결과를 보여 주면서 유명해졌다. 이 연구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개인차가 주목받았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개개인이 그런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이러한 고민은 쾌락을 지연시키는 능력은 원인이고, 성공은 결과라는 인과관계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반대현상이 오늘의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바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다. 이 두 현상의 공통점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과 상반되는 대중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일부 다른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많은 경제·외교·국제 전문가는 브렉시트가 장기적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전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는 도덕적·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기이한 언행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돼 공약을 지켰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힘들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근소한 차이지만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고, 상당수의 미국인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기사 이미지
일부는 대중이 우둔하고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에 오히려 ‘브렉시트가 무엇인가’ ‘EU를 탈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이 온라인 검색에서 급증했다는 코미디 같은 사실과 탈퇴에 투표한 일부 사람이 재투표를 원한다는 보도는 몽매한 대중의 일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인기를 소득 양극화와 이민과 같은 사회적 갈등에서 비롯된 좌절과 분노로 설명하는 논리에서는 일반 대중의 감정적 집단행동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원래 그렇게 멍청하거나 비이성적일 리는 없다. 화나고 욱해서 순간적으로 실수했다고 보기에는 그 선택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하다.

어떤 선택을 했건 모든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용하는 정보와 사고의 폭과 깊이다. 위에서 설명한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는 인간이 얼마나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는가와 관련돼 있다.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이득과 미래의 장기적이고 더 큰 이득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사고 과정이 핵심이다. 구성수준이론(construal-level theory)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는 시간/거리에서 가까운 것에 대해 피상적이고 즉각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낮은 수준의 구체적 사고와, 시간/거리에서 먼 것에 대해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높은 수준의 추상적 사고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추상적 사고가 바람직하지만 더 어려워서, 마시멜로 실험 결과처럼 그 능력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기 때문에 추상적 사고를 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현실적인 위협이나 가난과 같은 어려움이 추상적 사고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소득 양극화로 현실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이 미래에 대한 장기적이고 추상적 사고가 힘들어지고, 그 선택이 더 낮은 수준의 구체적 사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대중에게 100년 후 영국의 미래, 유럽과 전 세계의 국제정세, 유럽 통합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할 여유는 없다. 몇몇 일상에서의 자극적인 사건에 대한 선동적 구호가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브렉시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정치인의 선동적 구호에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멍청해 보이는 국민의 선택도 온전히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간혹 정치 리더들은 국민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섭섭해하고 비난한다. 만약 국민이 미래를 내다보고 본질을 고민하며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현실적으로 궁지에 몰리지 않도록 해 줘야 한다. 사흘을 굶는다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리는 아이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