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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과 담판 벌일 ‘철의 여인’ 후보들 정면 충돌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주장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지난 2일(현지시간) ‘런던은 EU를 사랑한다’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이매진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국민투표로 결정된 지 2주가 지났다. 사후 대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채 브렉시트 국면을 맞은 영국은 카오스(혼란)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이 쇄도하고 있다. 영국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만큼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안도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난무한다. 국가 개조에 가까울 정도의 ‘신장개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각 변동이 가장 먼저 현실화된 쪽은 정계다. 총리를 비롯해 주요 정당 지도자들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퇴진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의를 표한 데 이어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당 대표도 당내 불신임이 커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브렉시트 운동을 이끈 정치지도자들도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물러났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보수당 당 대표 경선에 불출마했으며, 그의 측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독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지금 영국 정계는 새판 짜기에 한창이다. 차기 총리가 될 집권 보수당의 새 당 대표 선거에는 테리사 메이(59) 내무장관과 앤드리아 레드섬(53) 에너지차관이 맞대결을 벌이고 있다. 둘 다 여성 후보여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영국에서 다시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둘 중 한 명은 영국과 EU 미래를 놓고 EU를 사실상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탈퇴 협상을 벌이게 된다. 15만 보수당 당원이 우편투표로 참여하는 당 대표 선거는 올 9월 8일 종료되며 이튿날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국정 경험 앞선 메이, 일단은 유리한 고지현재로선 메이가 일단 유리해 보인다. 그는 지난 7일 보수당 하원의원 329명이 투표한 2차 경선에서 199표를 얻어 84표에 그친 레드섬에게 월등히 앞섰다. 메이는 관록의 5선 중진에다 6년째 내무장관(최장수 기록)을 맡고 있어 안정감과 중량감을 준다. 그래서 그는 영국의 정치적·경제적 대혼란기를 이끌 수 있는 ‘검증되고 준비된’ 지도자임을 자부한다. 대처 전 총리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05년 보수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가 캐머런 총리에게 패했던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메이는 (분열된) 당을 통합할 수 있는 후보”라고 말한다. 소극적이나마 국민투표 이전에 EU 잔류를 지지한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경험에 비해 카리스마는 약한 편이다.


남부 이스본에서 출생한 메이는 옥스퍼드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에 들어갔다. 12년간 금융컨설턴트 경력도 쌓았다. 보수당이 야당이었던 1998년 초선 하원의원으로 예비 내각에 기용된 이래 교육, 교통, 문화·미디어, 고용·연금담당과 원내총무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2년엔 보수당 첫 여성 당 의장이 되기도 했다. 2010년 보수당 캐머런 정부 출범 이래 줄곧 내무장관을 맡고 있다.레드섬은 메이에 비해 덜 알려진 재선 의원이다. 그는 존슨 전 런던시장과 함께 EU 탈퇴 운동을 적극 펼치면서 영국민들에게 두각을 나타냈다. 존슨 전 시장의 공개적 지지를 받으면서 급부상했다.


그는 워릭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후 바클레이스은행과 자산운용회사 등 금융업계에서 25년간 일했다. 2010년 하원의원이 됐으며 2014년 재무부의 경제담당차관을 지낸 뒤 2015년 에너지차관을 맡았다. 국정 경험 면에선 메이에게 뒤처진다.


레드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화려한 금융계 경력과는 달리 실제로 펀드를 운영하거나 실질적인 금융 업무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바이클레이스은행 동료들은 레드섬의 역할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투자펀드 인베스코 퍼페추얼의 전 동료 로버트 스티븐스는 “그는 크건 작건 간에 어느 팀도 운영한 적이 없다. 그리고 펀드도 운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레드섬은 “자신의 이력서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재무부 차관에 기용될 때 상속세를 피하고자 역외 펀드를 이용했던 점이 다시 불거져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레드섬이 메이를 누르고 역전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 대표 선출 투표에 참여하는 보수당원의 평균 연령이 68세인 점이 변수다. 지난달 23일 브렉시트 투표에서 65세 이상 60%가 탈퇴를 지지해 레드섬 측은 대역전극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메이와 레드섬의 성향이 대조적이어서 누가 차기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서 향후 영국의 진로와 운명은 달라질 전망이다. 먼저 EU와 공식적인 탈퇴 협상을 언제 시작하느냐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메이는 신중한 반면 레드섬은 신속 추진을 주장한다. 메이는 “(탈퇴 협상 개시를 공식 통보하는)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이 올해 안에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레드섬은 “시급하게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며 탈퇴 협상을 신속히 마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EU 출신 이민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메이는 8일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총리가 된다면 우리는 EU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며 그 일부는 자유로운 이동의 통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레드섬도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EU를 떠나는 날까지 사람들은 이곳에 자유롭게 머물 수 있겠지만 자유로운 이동 규정에 따라 이곳에 온 사람들이 계속해 머물러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며 영구적인 거주권은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는 현재 313만 명(2015년 말 기준)에 달하는 EU 이주자가 거주하고 있다.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 영국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모델이 거론되고 있다. 유력한 대안 중의 하나가 스위스 모델이다. 미슐린 칼미레이 전 스위스 대통령은 “영국은 스위스 모델이 아닌 스위스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EU 회원국으로서의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EU 시장에 접근권을 얻기 위해서는 개별 회원국과 120여 개에 달하는 양자협정을 맺고 있는 스위스의 경우를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적인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이민통제권 등을 원하는 영국으로서는 매력적인 옵션일 수 있다. 스위스 고립주의를 이끌었던 국민당 전 대표 크리스토프 블로허는 “92년 유럽경제지역(EEA) 가입 찬반을 묻는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모든 전문가들이 우리가 고립돼 망할 거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국민투표로 드러난 계층 갈등 극복이 과제사회적으로는 국민투표를 통해 드러난 계층 간의 괴리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특히 영국 출신 노동자들은 다른 EU 회원국이나 비회원국에서 이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우려해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의 이주 노동자들도 신규 이주자들이 들어와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좌파 성향의 신문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오언 존스는 국민투표 결과를 “노동자 계급의 봉기”라고까지 묘사했다.


경제는 불확실성의 위험에 전면 노출되고 있다. 한때 반등했던 파운드화는 다시 폭락하고 실물경제도 본격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부동산펀드의 잇따른 환매 중단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는 불과 2주 만에 13%나 폭락했다. 파운드화는 국민투표가 치러졌던 지난달 23일 1.49달러에서 지난 6일에는 85년 이후 31년 만에 최저인 1.28달러까지 20센트 이상 떨어졌다. 8일에는 1.2954달러로 소폭 올랐다. 앞으로 ‘1파운드=1달러’의 등가(等價)를 칭하는 ‘패리티(parity)’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파운드화 급락으로 영국이 프랑스에 31년 만에 세계 5위 경제대국 자리마저 내주게 됐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떨어진 환율에 맞춰 산정해 보니 6위 프랑스가 영국을 앞선 것으로 나왔다.


불확실성은 영국 실물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7일(현지시간) 영국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자산운용사 핸더슨 글로벌 인베스터 등의 부동산펀드 7개가 밀려드는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에 자금 인출을 중단했다. 전체 펀드 가운데 70%(자산 기준, 180억 파운드)가 환매를 중단한 것이다. 가파르게 치솟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2년 내 20%가량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에 투자자들이 돈을 빼려고 몰려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로이즈은행이 공개한 기업 신뢰지표는 지난 5월 32에서 지난달 6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12월 이래 최저치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법인세 인하 등 파상공세로 금융허브로서 런던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6일 법인세율을 기존 33%에서 28%로 5%포인트 내리는 방안을 확정했다. 파리 지방정부도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직후 영국 기업인 4000명에게 ‘숙련된 노동력’과 ‘세계 수준의 서비스’를 강조한 서한을 보내 파리의 비즈니스 장점을 홍보했다.


FT에 따르면 코르넬리아 이처 베를린시 정부 경제장관은 지난주 런던에 있는 기업들로부터 베를린으로 이전을 문의하는 e메일 수십 통을 받았다. 룩셈부르크·네덜란드·아일랜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런던을 대체할 금융허브 후보지로 나서고 있다.


영국 기업 중 앞으로 1년간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비율이 두 배로 늘어났다. 유고브와 경제산업조사센터(Cebr)가 영국에 기반을 둔 기업 1000 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2개월간 경제에 대해 비관하는 기업의 비중은 브렉시트 결정 전 25%에서 결정 이후 49%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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