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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사냥 대신 관광 사라져가는 전통 속 치솟는 자살률 고민

1 그린란드 수도 누크 도심의 주택가 아파트. 벽면 전체에 그린란드인의 정체성과 고민을 보여주려는 듯 전형적인 이누이트 원주민 노인의 얼굴을 그려놨다.

2 얼굴 모습이 다양한 그린란드의 젊은이들. 이들은 스스로를 이누이트라는 표현 대신 ‘그린란드인(Greenland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 그린란드 유일의 대학교인 그린란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스위니 요한센(26). 그는 다음달 10일부터 16일까지 부산 등지에서 개최되는 ‘제2회 북극아카데미’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북극권 대학생 12명을 포함한 외국인 20명과 한국인 대학생 등 28명이 참가한다. 태권도와의 인연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요한센은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은 지 300년이 되는 2021년 국방·외교권까지 갖는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독립”이라며 “이를 위해 관광산업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광적 측면이라면 모를까 기능적 측면에서 보면 전통문화는 이제 무의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 누크 시내 중심가의 한스에게데 호텔 건너편 공터에는 매일 장이 선다. 루이 암스트롱의 낡은 LP판이 75크로네(약 1만3500원)에 팔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고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는 크리스티나 루드비그센(26)은 3~4년 전부터 장에 나와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그의 좌판에는 우리 돈으로 5000~1만원쯤 되는 귀걸이·목걸이·반지 등이 깔려 있었다. 그는 “잘살게 되는 것은 좋지만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그린란드가 녹아 버리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루드비그센의 아버지와 남동생은 고기 잡는 일로 생계를 꾸린다.

3 이누이트 전통 복장을 한 여성. 바다표범과 순록 가죽 등으로 만든 전통 복장에는 마을마다 고유의 무늬를 새긴다. 최정동 기자


과거 강제 서구화 정책으로 전통 단절그린란드에는 전통과 현대가 혼재한다. 과거에는 이누이트(Inuit)들이 가족 단위로 살았기 때문에 이들을 통치할 별도의 기구도, 중심 도시도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전통적 삶을 포기하는 이누이트가 늘면서 시장경제와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들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높은 자살률이 그린란드 정부의 고민이다. 가족부 장관 출신으로 2008년부터 누크 시장을 맡고 있는 아시 나루프는 “그린란드 전체 인구 5만6000명 가운데 일주일에 한 명꼴로 자살자가 나온다”며 “20여 년 동안 꾸준한 노력 끝에 알코올 소비를 절반가량으로 줄였는데도 자살률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세계 1위(82.8명)다. 덴마크 본토와 비교하면 20배나 높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을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한국(2014년 기준 27.3명)보다 훨씬 높다. 전통사회 붕괴에 따른 우울증과 상대적 박탈감, 알코올 중독, 백야(白夜)로 인한 불면증 등이 자살 원인으로 꼽힌다.


스텐 룬드 그린란드 교육·문화·연구·종교부 연구 코디네이터는 “캐나다의 사례가 그린란드에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이누이트를 포함한 원주민 동화정책 차원에서 19세기 중반 기숙학교 제도를 도입했다. 원주민의 자녀를 부모로부터 분리해 서양식 교육을 시키는 게 이 제도의 핵심이다. 기숙학교들은 원주민 언어 사용을 금지하고 토착신앙을 무시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20세기 후반 이후 원주민들의 자생을 돕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룬드는 “그럼에도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도회지 이누이트들의 자살률·범죄율·알코올 중독 등은 캐나다 평균치보다 훨씬 높다”고 우려했다.


에게데 목사가 수도 누크 터전 닦아그린란드의 원주민은 시베리아와 캐나다를 거쳐 온 몽골계 중앙아시아인이다. 북극권 원주민은 언어와 문화를 기준으로 두 그룹으로 나뉜다. 시베리아부터 알래스카에 걸쳐 사는 이들은 유피크(Yupik)이고, 캐나다 북부와 그린란드에 자리 잡은 이들은 이누이트다. 북극 탐험대를 이끄는 리사 켈리 대장은 “북극권 전체 거주자 400만 명 가운데 원주민이 50만 명”이라며 “이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기후와 환경 차이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생활 문화도 이질적”이라고 설명했다.


맨 처음 그린란드에 이주한 사람들은 기원전 2400년께 캐나다에서 건너온 이누이트다. 이누이트 문명은 시기에 따라 인디펜던스·사카크(Saqqaq)·도싯(Dorset)·툴레(Thule) 등으로 나뉜다. 기원전 500년부터 번성했던 도싯 문화 시절 이글루가, 서기 900년께 툴레 문화일 때 고래 사냥에 용이한 카약과 한층 정교해진 작살 등이 만들어졌다. 그린란드에 개썰매를 도입한 툴레 문화 이누이트가 지금 그린란드인의 직계 조상이다.


북쪽에서 이누이트의 툴레 문화가 내려올 무렵 남쪽에는 유럽 문화가 상륙했다. 아이슬란드로 이주해 살던 바이킹 가운데 군비요른 울프손이 뱃길을 잘못 들었다 우연히 그린란드를 발견했다. 이후 스나에비요른 갈티, 붉은 털 에릭으로 유명한 에리쿠 프로발드손 등이 그린란드를 찾았다. 특히 에릭은 982년 추종자들과 배 25척을 타고 그린란드로 와 지금의 카시아수크에 터를 잡았다. 마침 그린란드에 중세 온난기가 왔다. 양을 기를 수 있었고 작물 재배도 가능했다. 그러나 15세기 유럽에 닥친 소(小)빙하기 때 이들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종말과 관련해서는 전염병설·기후설 등만 분분할 뿐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린란드에 다시 손길을 뻗친 유럽인은 1700년대 초 루터파 목사인 한스 에게데다. 노르웨이에 전도하러 갔던 그는 바이킹의 후손들에게 선교하려고 그린란드로 넘어갔지만 바이킹의 흔적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에게데는 대신 이누이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펴면서 1728년 지금의 수도인 누크 자리에 고트호프라는 도시를 세웠다.


백야 시작되면 고래 보려는 관광객 북적그린란드의 바다는 눈이 부시도록 푸르다. 하지만 18세기까지만 해도 붉은색이었다. 일루리사트에서 북쪽으로 22.5㎞ 떨어진 오카수크 앞바다가 특히 그랬다. 인근에서 잡은 고래를 이곳으로 끌고 와 해체하면서 엄청난 양의 피가 바다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카수크 해안에는 고래를 끌어올리기 위해 사용했던 도르래, 고래 고기 저장소 등이 남아 있다.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인 카나크는 바다의 유니콘’이라는 일각고래 잡이의 최적지다. 현대화된 사냥꾼들은 총으로 일각고래를 잡지만 이누이트들은 기동성이 좋은 카약으로 길목을 지키다 작살을 쓰는 전통 방식을 선호한다. 총을 맞은 고래는 가라앉기 때문에 건지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 작살 끝에는 물개 가죽으로 만든 부표가 달려 있어 고래가 깊숙이 잠기지 않는다.


46년째 배를 타고 있다는 젠스 토마센은 “일각고래의 뿔은 ㎏당 3000크로네(약 41만원)에 팔리지만 보호를 위해 그린란드 정부에서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누이트들도 1인당 잡을 수 있는 수가 제한된다”고 말했다. 해마다 6월 초가 되면 그린란드의 고래투어가 시작된다. 백야 기간인 만큼 하루 종일 고래를 보려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토마센는 “고래 투어가 이어지는 9월까지는 사냥보다 관광객들을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일루리사트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반쯤 가면 전통마을 일리마나크가 나온다. 이곳은 개썰매 등 이누이트들의 전통이 많이 유지되고 있다. 주민은 500명인데 썰매 개는 1000마리다.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개썰매만으로 빙원 1만2000㎞를 횡단해 북극점에 도달했던 일본인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巳)는 “그린란드의 썰매 개는 북극권 개들 가운데 가장 강인하고 충성심이 강하다”고 적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일리마나크를 개척했다는 우이 오빌리마크는 관광가이드 겸 어부다. 그는 일리마나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마을을 소개하고 자신의 집에서 고래고기 수프 등 전통음식을 대접한다. 그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물고기를 잡는 어부”라며 “더러 고래를 잡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에는 고래 사냥 대신 고래 투어로 먹고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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