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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충격, 평화로운 ‘지구 공동체’ 이상 손상시켜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세계사적 사건이 많은 우려와 논평들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논평을 보태는 일은 어색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의 엄청남이 마음을 쉽게 떠나지 않기 때문에, 필자의 전문영역을 멀리 벗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생각나는 것을 간단히 첨가해 본다.


영국과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브렉시트에 따르는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은 당연하다. 다른 한편으로 예상되는 결과가 거대한 만큼 대책도 마련될 것으로 낙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이 유럽경제협력체(EEC)에 1973년 가입하면서 EU의 일부로 존재해온 지 43년이 됐다. EU 회원국이라는 것은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여러 규약들, 또는 상호 동의한 협약 망 속에 나라가 존재하게 됐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에 관계되는 문서는 수만 페이지에 이른다. 규약들은 말할 것도 없이 영국이나 다른 회원국의 중요한 이해에 관계된다. 그러한 협약들을 일시에 폐기한다면, 그것은 어느 쪽으로나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안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브렉시트의 결정이 정작 현실이 되는 것은 2년의 재협상 후라고 하는데, 그 기간의 협상이 끝나면 수정이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상당 부분이 원상유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처음부터 영국에 불리하기만 한, 또는 이익 되는 바가 없는 규약들이 일방적으로 강요될 수가 있었겠는가? 그 중요한 부분을 뒤집는 것은 43년에 이르는 동안에 누적된 현실을 일시에 말소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큰 일이, 적어도 밖에서 보기에는, 심각한 논의가 없이 행해질수 있는 것이 민주정치의 한 위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U, 미래 세계를 위한 체제의 한 단계”최종 해결에 대한 낙관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EU 탈퇴는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제적으로 세계 정치와 경제의 재조정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한국도 그 영향권에 들어 갈 것이다. 경제 관계나 국제적 세력 균형의 틀이 재조정된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이번 일이 인류 평화의 희망을 약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국가 간의 분쟁과 전쟁을 되풀이 해왔던 쉼 없는 분쟁의 땅이다. EU는 하나의 지역이 비극적 갈등의 역사를 넘어서, 또 좁은 의미의 국가적·민족적 이해를 넘어서 평화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인류의 역사가 익숙한 길을 떠나 새로운 전기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2012년에는 노벨평화상이 EU에 수여되었다. 수상 연설을 맡은 유럽위원회와 이사회의 수장들은 다 같이 그 창립에 크게 기여한 정치지도자들, 장 모네와 로베르 쉬망의 “세계평화에 대한 이상”을 언급했다. 그 인용문 중, “미래의 세계를 위한 체제를 이룩해내는데, 이 (유럽)공동체는 하나의 단계가 될 뿐”이라고 한 모네의 말은 유럽 공동체의 의미가 단순히 유럽의 지역적인 타협이 아니라 세계적인 평화 공동체로 나가는 한 단계라는 데에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이상에 비추어 브렉시트의 충격은 단지 경제나 정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고 높은 인간 이상, 즉 평화롭고 행복한 인간 공동체, 지구 공동체의 창조에 대한 이상을 손상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브렉시트는 정치 행위의 심각한 함의(含意)를 도외시한, 정당 간의 줄다리기의 결과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가 행해진 것은 그 나름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유럽주의와 영국 민족주의 사이의 모순이다. 그 민족주의는 브렉시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소수자 정당, 영국독립당(UKIP)의 당명(黨名)에서 추측할 수 있다. 2015년의 선거에서, 영국독립당이 영국의 실질적인 입법부인 하원의 의석을 확보한 것은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실제 득표한 표수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독립당이 확보하고 있는 상원이나 유럽의회의 의원 수는 적지 않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족주의는 국민 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삶의 전체성에 대한 이념이다. 그것은 물론 정치 전략에 쉽게 동원될 수 있는 힘의 요소이다. 민족에 대한 호소는 집단적 의무를 압력으로 작동하게 한다. 이것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밀어붙이는 데 정략의 일부가 될 수도 있지만, 문제가 있을 때, 그 해결을 촉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대체로 큰 것을 말하는 이념적 정치 공식은 공허한 추상 개념의 조합이면서도 그 아래 보다 현실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의 브렉시트 지지에는 외국인 혐오증, 인종주의, 민중주의가 작용했고, 유럽의 정책과 여론 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엘리트들에 대한 반감이 표현된 것이라고도 말하여진다. 여기에 더하여, 보수 세력들이, 다른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민중적 감정을 그들 자신의 세력 확장에 이용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이념과 감정의 복합적인 움직임의 저변에 놓여 있는 것은 생활의 문제이다. 경제성장률의 저하, 실업자의 증가, 기업과 노동인구의 이동의 자유에 따른 노동조건의 악화, 이민자와 난민의 증가, 대가가 분명치 않는 EU 기여금의 거대함 등 이러한 것들이 여러 계층, 특히 중하류의 노동계급의 불만을 커지게 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은 EU와 같은, 국민 일반으로부터 거리를 가진, 애매한 체제가 아니라, 신속하고 유연한 그리고 독자적인 대응 체제로서의 민족 정부가 맡아야할 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정부가 독자적인의 존재로서의 실체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진 것이다.


 영구 평화, 문화 발달·인간성 개발 선행돼야브렉시트가 이러한 현실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문제의 의미는 더 복잡해진다. 물론 EU가 국가와 같은 힘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엘리트층의 전유물이 되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EU가 지향하는 것은 평화 공동체이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국가 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지역 체제 또는 국제 체제이다. 그것은 또한 실질적인 번영의 조건을 내포하는 것이라야 한다. EU는 공동의 인간적·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EU의 여러 나라들은 소위 유럽인권협정과 유럽사회헌장에 조인(調印)한 바 있다. 이 협정들은 보편적 인권과 함께 고용·거주·건강·교육 등 다양한 사회보장의 수행을 약속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이러한 복지와 번영이 충분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사정은 그리스의 국가 부채 위기,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악화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EU가 가지고 있는 이상 자체가 간단한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국제 평화 그리고 세계 평화를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서구 사상사에서 중요한 기여의 하나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이다. 그는 여러 나라가 평화연합에 들어가는 것을 말했다. 이것은 물론 평화를 신봉하는 정치지도자와 국민이 추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유명한 관찰의 하나로, 국제 무역의 발달이 이것을 자연스럽게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후에 발족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EU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이 여러 경제와 정치 협력의 모태가 됐다. 그런데 또 하나 칸트의 생각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하나의 세계 평화체제를 구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등장하게 될 국제적 연합체가, 적어도 단기간에, 하나의 연방국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했다. 연합에 참여하는 국가는, 그의 생각으로는 공화국이라야 한다. 이러한 기초가 없이, 모든 나라가 하나로 묶여 하나가 되면,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제국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한다. 공화국은 국민 모두에게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자 하는 나라이다. 국정에 국민이 참여하면, 국민은 엄청난 전쟁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전쟁을 기피한다. 그러나 하나가 되어 있는 국가의 전제 체제 하에서는, 통치자 스스로는 전쟁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도 연회, 수렵, 환락의 궁전, 궁정 축제 등 온갖 쾌락을 즐길 수도 있다. 오늘의 시대에서의 과시소비의 부비판적 확대도 비슷한 테두리에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영구 평화를 위해서라도 일단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개별 국가가 그 나름의 주권을 행사하는 연합체제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국제 국가가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의 발달과 보편적 인간성의 개발이 선행한 다음에만 실현될 수 있는 이상이다.


 큰 체제는 불가피하게 관료적 조직 요구칸트는 영구평화를 위한 국가연합을 말하면서도 지나치게 강력한 단일 국가의 형성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대한 단일 체제의 문제는 정치 조직에만 해당되지는 아니한다. 사실 조직의 성격에 관계없이, 큰 체제는 불가피하게 관료적 조직을 요구하여, 사람들의 구체적인 필요에 유연하게 대등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브렉시트 찬성자들이 느낀 것이 이러한 관료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EU 회원국이 그 주권 또는 자치권 전부를 전제적 관료체제에 맡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그에 비슷한 것을 느끼지 않았나 한다. 사회헌장만으로도 사회보장은 보다 확실해졌다고 하겠지만, 분명히 커지고 있는 소득과 생활수준의 격차는 그러한 감정적 반응을 가져 왔을 것이다.


이러한 들고나는 사실들은 우리에게도 교훈적 의미를 갖는다. 냉전체제를 벗어난 지금의 시점에서 동아시아 지역은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있다. 여기에 대하여 EU는 하나의 좋은 모델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이제 그 모델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간의 평화의 질서는 재확인되어야 마땅하지만, 생각하여야 할 것은 거기에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여러 중간 단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인정하면서, 여러 단계를 참고 견디는 긴 안목의 노력은 다른 정치적 목표의 실현에서도 요구되는 필수 사항이다. 이것은 남북 관계의 평화적 해결 또는 국내에서의 진정한 인간적 질서의 수립 등에도 해당된다.


칸트는 영구 평화의 이상을 설파하면서도 그 실천은 단계를 포함하고 또 여러 가지 자연 세력들의 자체 조직화와 더불어 가능해진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문화와 도덕적 의식의 진화를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정치 경제와 더불어 문화와 교육의 보편적 진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경제와 정치에 모든 무게를 두면서, 그것을 완전히 경쟁적 세력의 길항(拮抗)의 관점에서만 파악한다. 그것도 자연세력의 한 부분이고 그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의 인간됨의 조건에 대한 도덕적 관점 없이는 그것은 참다운 의미를 갖는 것이 되지 못한다. 그 경우 그것은 참다운 인간 사회의 성취라는 핵심적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졌지만, 브렉시트는 이러한 인간 문제의 복합성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노력하는 지혜의 필요를 생각하게 한다.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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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