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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신의 강림


자동차에 서비스로 블랙박스를 달아준다는 것을 사양했다. 길 위에 돌아다닌 자동차마다 파란 불빛을 깜빡거리면서 사주경계를 하고 있는 블랙박스가 마뜩치 않았던 탓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데 나까지 눈 하나를 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치안을 목적으로 달려있는 CCTV와 차마다 달려있는 블랙박스. 사물인터넷이 더 촘촘해져서 이것들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면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가 완성되는 셈이다. 나 하나 블랙박스를 거부한다고 대세를 거스르긴 힘들다.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그것을 보는 눈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잡는데 도움이 된다. 아니, 경계하고 다잡도록 강제한다. 역사를 훑어보면,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보여줄 수밖에 없거나 보여줘도 좋은 경우는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하나는 절대자인 신이다. 전지전능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의 눈초리는 벗어날 수 없다. 불완전하고 약한 인간은 잘못을 반복하고 고백하고 용서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다. 절대자인 신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양심밖에는 없다. 자신의 행동이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자기밖에 없으므로 밖으로 내세운 간판과 달리 음험하고 냉혹한, 혹은 간사한 행동과 마음을 간파하고 삼갈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수양밖엔 방법이 없다. 동양의 고전, 『대학』과 『중용』에서는 이런 수양의 방법을 ‘신독(愼獨)’이라 했다.


여기에, 어디나 존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블랙박스라는 다른 눈을 더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블랙박스를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이든, 국가 권력을 위임 받은 관리이건 불편하다. 어린 시절 받은 철저한 반공교육의 효과 탓일까. 북한의 5호 담당제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우스꽝스러운 제도이고 그에 따른 가혹한 처벌 때문에 모두가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블랙박스로 감시하는 사회가 5호 담당제의 다른 버전, 혹은 상위 버전으로 보인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 감시하는 사회는 끔찍하다.


백 보 양보해서 블랙박스의 순기능을 생각해 본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을 때, 증거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사소한 접촉 사고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블랙박스에 담긴 교통 법규 위반도 신고하면 포상금도 받을 수 있고, 흥미로운 영상이 우연히 잡히면 제법 짭짤한 가격에 대중 매체에 팔 수도 있다. 더 좋은 점은 부러 촬영하기 어려운 광경들을 담을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TV 뉴스에서는 밤 사이 사건·사고를 방송하곤 하는데 만약 시시각각 제공되는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면 생동감도 없을 것이다.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만한 것이 없다.


이런 장점을 고려해도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블랙박스는 비행기의 경우처럼 사고가 난 경우에만 열어야 하는데, 자동차의 블랙박스는 언제든 저장 장치를 빼내서 영상을 확인하고 흥미롭거나 이득이 되는 장면을 추출할 수 있다. 인터넷에 보면 직업적으로, 혹은 자신이 고발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블랙박스에서 교통위반 차량을 찾아서 경쟁적으로 신고하는 사람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억울함을 넘어, 이익을 쫓아 신고는 전염된다. 사소한 사고에도 블랙박스 영상이 필요한 이유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갈등 해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회의 한 단면이다. 범죄 행위나 사고가 없는데도 재미나 돈을 위해 블랙박스 영상을 수시로 열어볼 수 있는 상황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회연결망서비스를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시대이다. 이미 주민등록번호가 공용으로 사용될 정도로 널리 퍼져버린 상황인데, 블랙박스의 눈앞에서 벌거벗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별일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르주아지에게만 허용되었던 신성한 사적자유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던 지난 세기의 어려운 싸움들을 떠올리면 허무함을 숨길 수 없다. 힘을 가진, 혹은 기득권을 가진 몇몇에게만 사적자유가 허용되고 그들을 위협할 수 없도록 다수를 투명한 공간에 가두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블랙박스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서글프다.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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