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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꽃·예술과 하느님을 낭비하자


쪽마루에 앉아 줄기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바라본다. 그렇게 오랫동안 비 한 방울 안 내려 속을 태우시더니 오늘에야 무량무량 낭비하시는 하늘 폭포수, 정말 흐벅지게도 쏟아지누나. 텃밭이며 마당의 풀들도 빗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에라! 나도 오늘은 유유자적 쪽마루 위를 뒹굴며 빗소리나 들어야것다. 그렇게 뒹굴다 보니 문득 오래 전에 본 한 영상이 떠올라 노트북을 들고 나와 영화 한 편을 띄운다. 이자크 디넨센 원작의 ‘바베트의 만찬’. 몇 년 전에 보고 홀딱 반한 영화인데, 다시 보아도 좋구나.


무엇보다 나를 매혹시킨 건 주인공 바베트라는 여인. 프랑스에 살 때 어느 카페의 유명한 요리사였던 바베트는,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 하지만 이제 노르웨이 시골 목사관의 부엌데기에 불과한 그녀는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한 불모의 공동체를 여유로움과 나눔과 웃음이 번지는 공동체로 변모시킨다. 그 비결이 무엇이던가. 바베트는 어느 날 자기에게 찾아온 엄청난 복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남을 위해 흔쾌히 쏟아 붓는다. 낭비! 그렇다. 하지만 그건 거룩한 낭비. 그녀의 이런 행위는 값비싼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어 스승 예수의 발에 쏟아 붓고 머리털로 닦던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1만 프랑이나 되는 복권 당첨금을 단 한 번의 만찬을 위해 다 쏟아 부었으니 말이다. 절약과 금욕을 미덕으로 하는 청교도 정신에서 보면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지만 바베트가 베푼 만찬으로 인해 침울하고 메말랐던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활기를 되찾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뭉클했던 대목은 교회 지킴이를 자처하는 마르티네 자매와 바베트의 대화 장면이다. 만찬을 위해 돈을 다 써버려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자, 자매는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묻는다. “우리를 위해 가진 돈을 다 쓰다니!” 바베트가 자매에게 대꾸한다. “마님들을 위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계속 말을 잇는다.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 잠시 깊은 침묵이 흐른 뒤 마르티네가 묻는다. “그러면 이제 평생 가난하게 살려고?” “가난하다구요? 아니에요. 전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니까요.”


이런 예술 정신이 꿈틀대고 있었기에 바베트는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쏟아 부을 수 있었으리라. 그야말로 자기 안의 넘치는 부요(富饒)를 토해낸 것. 자기 속에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 아무리 물질이 넉넉해도 그 마음이 인색하면 아무 것도 내어주지 못하는 법. “삶의 예술 가운데 가장 충만한 예술은 자비가 넘치는 삶을 창출하는 예술인 것이다.”(매튜 폭스)


내가 섬기는 교회 블로그 대문에 나는 이런 글귀를 짱박아놓았지. “시와 꽃과 예술과 하느님을 낭비하자.” 그렇다. 지구별의 생태 환경이 위태로워지는 시절에 우리가 물질은 자린고비처럼 아끼며 살아야겠지만, 우리 마음의 생태 환경이 풍요로워지려면 ‘시와 꽃과 예술과 하느님’ 같은 비물질을 흥청망청 낭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진하 목사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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