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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사일로 규제’ 되풀이할 건가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불허했다. 아직 공정위 전체회의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지만 공정위 실무진의 판단을 뒤엎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인수 불허 결정은 해당 업체의 반발을 떠나, 대단히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0년전인 2006년 방송통신 융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이먼 윌키 남가주대(USC) 교수의 지적이 떠오른다. 당시 그는 “방송·통신·인터넷 등을 분야별로 나눠 관리하는 ‘사일로(silo) 규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일로는 시멘트·곡물·미사일 등을 담아 놓는 원통형 저장 시설이다. 그는 한국 통신업계를 가리키며 “통신업체 세 곳이 한국 시장을 5:3:2의 비율로 나눠 갖고 있지 않느냐”며 “이런 식의 점유율 규제로는 융합(컨버전스) 서비스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꼭 10년이 지났지만 그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젠 서비스 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탑을 쌓아 규제하려는 판이다.


공정위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이, SKT 자회사이자 인터넷TV(IPTV) 업계 2위인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하면 가입자 700만명이 넘는 거대 방송기업이 된다는 걸 문제삼았다. 특히 CJ헬로비전이 영업을 하는 23개 권역 가운데 21개에서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고, 이 중 15개에서는 시장점유율이 60%를 넘어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한국의 케이블 방송권역은 모두 78개다. CJ헬로비전이 담당하는 곳은 전체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SK와 CJ를 합친다고 해도 지난해 기준 가입자 수는 717만명으로 전체 유료방송(케이블+IPTV+위성방송) 가입자의 25% 수준이다. IPTV(올레TV)와 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을 합친 KT 가입자 819만명(29%)에 뒤진다. 공정위는 훨씬 시장 점유율이 높은 1위 사업자가 이미 존재하는데 권역별 규제라는 잘못된 틀로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을 막은 셈이다.


공정위 본연의 역할은 경쟁을 촉진해 시장을 활력 있게 하는 데 있다. 통신사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시장이 활성화되고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도록 유도하는 게 공정위가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대기업이 들어와 시장을 독점하면, 그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경쟁의 기회’를 사전 봉쇄한 것은 소비자 보호라는 작은 이익을 앞세운 소탐대실의 우려를 범하는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통신사들이 지금보다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면 소비자들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업계에선 SKT와 CJ헬로비전의 합병을 가장 반대한 곳이 KT와 LG유플러스란 얘기가 파다하다. 이동통신 시장 1위인 SKT가 유료방송 시장에서까지 영향력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SK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요금을 올린다면 유선전화와 초고속인터넷, 그리고 유선방송 1위인 KT가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가입자를 늘리면 된다. 공정위는 담합으로 인한 불공정 게임이 벌어지거나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면 그때 개입해도 늦지 않다. 공정위 스스로 지난해에 유료방송에 대해 ‘사후 규제를 통해서도 부작용 시정이 충분히 가능한 만큼 현행 시장점유율 사전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지 않았는가.


더 근복적인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방송통신 정책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케이블TV 업계는 CJ헬로비전을 비롯해 현대HCN·딜라이브·티브로드·CMB의 5개 회사가 전체 78개 권역의 80% 정도를 나눠 갖고 있다. 지역별로 쪼개진 이들이 전국 사업자인 IPTV·위성방송과 경쟁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할 판이다.


4개 케이블TV 업체가 44개 권역으로 나눠 사업을 벌이던 미국에서도 최근 3위 업체인 차터가 2위인 타임워너케이블(TWC)을 인수하는 등 덩치 불리기에 나섰다. 케이블 1위 업체인 컴캐스트는 TWC 인수에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제동을 걸자 최근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로 유명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와 제휴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190여개국에서 8000만명의 유료 가입자를 둔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 2위, IPTV 5위인 통신업체 AT&T는 유료방송 2위인 위성통신업체 디렉TV를 인수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한국은 늘 “인프라는 훌륭한데 서비스는 늦다”는 평을 듣는다. 10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인터넷 망을 갖추고도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에 시장을 내줬다. 이동통신업체들은 건당 20원짜리 문자메시지 요금을 받는 재미에 모바일 메신저 도입을 막았고, 자신의 영역을 내주지 않으려는 지상파 방송, 케이블TV 업체들은 IPTV 도입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또는 지상파 방송의 눈치를 보느라 명확한 가이드를 내놓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어 방송을 시작하고, 바이두가 한국 콘텐트를 사들여 인터넷으로 뿌릴 때도 지역별 점유율을 따져 가며 규제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한국 미디어 생태계의 미래에 대해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창우 경제산업 에디터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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