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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 주저앉기보다 싸워 이겨야죠”


올해는 연극계에 아주 특별한 해다.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과 우리 연극사의 큰 별 고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을 동시에 맞았기 때문이다. 두 거장의 접점은 ‘햄릿’이다. 1951년 전쟁통에 국내 최초로 ‘햄릿’ 전막 공연을 올린 것이 이해랑 선생이었고, 작고 직전까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작품 또한 ‘햄릿’이었다. 그러니 아주 특별한 ‘햄릿’(7월 12일~8월 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방문이 놀랄 일도 아니다.


국립극장과 신시컴퍼니가 힘을 합쳐 연극계 거목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유인촌·윤석화·손봉숙·한명구 아홉 명 배우 전원이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이다. 평균 연령 66세의 ‘고령화 햄릿’이다. 최고령 전무송이 혈기 왕성한 청년 레어티즈가 되고, 박정자와 김성녀가 남장을 하며, 환갑의 윤석화가 열일곱 오필리어에 빙의하는 등 흥미로운 캐스팅 중에서도 단연 주목되는 이는 생애 여섯 번째로 햄릿 역에 도전하는 유인촌(65)이다. 국내에서 각기 다른 프로덕션의 햄릿을 여섯 차례나 맡은 배우가 달리 없지만, 그를 ‘우리 시대의 햄릿’이라 부르기는 살짝 망설여진다. 파란만장했던 장관 재직 시절 ‘국민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흐려진 탓이다. 이순(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무대 정중앙으로 다시 ‘돌아온 햄릿’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연습실에서 거트루드 왕비 역의 손숙, 클로디어스 왕 역의 정동환과 함께


“이번이 영원히 마지막이 되겠죠. 어떻게 햄릿을 또 하겠어요?”


‘마지막’을 얘기하면서도 그는 무덤덤했다. 1981년 극단 현대극장의 ‘햄릿’을 시작으로 85년 호암아트홀 개관공연과 89년 이해랑 선생의 유작이 된 ‘햄릿’, 93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개관공연, 99년 유씨어터 개관공연까지 5차례 햄릿을 거쳐 2005년에 기획하다 무산된 ‘마지막 햄릿의 꿈’을 10여 년 만에 이루게 됐지만,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작품 완성도를 높이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일만이 유일한 관심사인 듯했다. 목을 아껴야 한다며 내내 조심하는 눈치였다.


“어쩌다 보니 여러 번 하게 됐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배역이니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죠. 시퍼런 배우들도 많은데…. 수상자들 기념공연 의미 때문에 참여하는 거지, 개인적으로 하자고 했으면 안 했겠죠. 부담되고 실패 확률도 높으니까. 장기 공연을 끝까지 잘 유지해야 하니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여섯 번째 햄릿이 영광스럽지는 않나요. “그런 건 기본으로 깔려 있죠. 이렇게 연륜 있는 선배들이 계신데, 더구나 나만 햄릿 하나 하고 다른 분들은 다 코러스를 겸하시거든요. 따지고 보면 정말 영광이죠.”


다른 분들은 들떠 보이시던데요. “초기엔 그랬죠. 지금은 책임감과 부담 때문에 다들 가라앉아 있어요. 연습장이 각자 고민의 장이랄까. 구석구석에서 다들 고민중이에요. 관객 반응도 걱정이죠.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 연극적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요. 완성도가 높을수록 보면서 그런 걸 잊게 될 테니,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어요.”


데뷔 때보다 힘들다고들 하시던데 정말 그런가요. “이렇게 모여서 그 어떤 공연보다 주목받게 됐으니 부담스러운 거죠. 연극에 관심없는 사람들까지 궁금해 하니까. 하지만 배우들에게 굉장히 좋은 장이 됐어요. 전무송 선생님도 말도 못하게 열심히 하시죠. 젊은이보다 소리도 훨씬 세고, 자세도 엄청 꼿꼿해요. 작품 하다 회춘하시겠다고 내가 그랬죠. 낮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러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도 힘든데 감히 힘들다 소리를 못하고 있어요.”


햄릿에 대해 이번에 새삼 깨친 부분도 있을까요. “예전엔 겁없이 뭣도 모르고 폼만 잡았다면, 이번엔 정말 사람 마음이 어떨까를 고민하게 돼요. 사느냐 죽느냐, 사실 유장하고 멋있게 할 수 있죠. 그건 내가 잘할 수 있어요. 제스처 쓰고 멋있게 할 수 있는데, 이 나이에 멋만 부릴 수 있나요. 내면의 정서적 흐름이 전혀 다른 햄릿이 될 거예요. 손진책 연출이 ‘시적 미니멀리즘’을 얘기하는데, 한마디로 연기하지 말자는 거거든. 그러려면 정말 진실해야 하고 내면에 응축된 힘이 세야 하니까 더 어려워요. 많은 고민이 다 쌓여서 결국 움직이지 않되 가슴은 들끓고 있어야 하는 거니까. 고통스러운 과정이에요.”


81년 첫 햄릿을 앞둔 유인촌과 2016년의 햄릿을 앞둔 유인촌은 얼마나 다를까요. “너무나 다르죠. 배우로서도 그렇고 중간에 8년 공직을 했으니 엄청난 변화지. 사실 연기 자체가 자기 삶과 뗄 수 없거든요. 자기 조건이 바탕에 다 쌓여서 연기로 표출되는 거니까. 아직 기운도 떨어지지 않고 그만큼 삶의 깊이도 더해 왔으니 지금이 무대배우로서는 전성기인 것 같아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다양한 경험과 환경 변화를 겪어낸 결과 이제 다른 일 안하고 딱 배우만 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교수로 돌아오란 것도 마다했고, 국립암센터 후원회장 말고는 다른 직함 하나 없이 집중하고 있잖아요.”

연습실에서 살짝 맛본 ‘햄릿’은 거장들의 응축된 기운이 들끓는 ‘정중동의 미학’ 그 자체였다.


“무대배우로서는 지금이 전성기” 그는 2012년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끝으로 공직을 접고, 그해 말 곧바로 유씨어터에서 낭독공연으로 무대로 복귀한 이래 ‘파우스트’(2013) ‘홀스또메르’(2014) 등 작은 무대에 꾸준히 섰다. 그래선지 지난해 ‘주류 연극계 복귀작’이라며 떠들썩했던 ‘페리클레스’에서는 언제 8년 공백이 있었냐는 듯 완연한 배우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극장에 자리를 꽤 오래 비웠지만 그런 느낌 없이 그냥 내 일이니까 자연스러웠어요. ‘페리클레스’ 때는 좀 신경이 쓰였지. 사람들은 예술의전당 같이 큰 무대를 복귀라고 치니까. 작은 데나 지방에서 한 공연들은 했다고 생각 안 하더군요.”


국공립단체의 공연을 하기는 껄끄럽지 않나요. “이번엔 극장만 국립이지 사실상 민간에서 하는 거니까. 별로 껄끄러울 것도 없어요. 다만 많은 사람들 오디션도 보고 오픈된 역할을 해야 하는 국공립에 내가 껴들어서 하는 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 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인 거죠. 내 입장에선 음지에서, 더 힘든 데 가서 하려고 해요.”

‘젊은 척’ 연기하지 않기 위해 천연 백발 그대로 무대에 선다.


관객이 다시 배우로서 좋아해줄까 걱정은 없었나요. “그런 걱정은 우리가 또 안해요. 거기는 또 다른 세상이니까. 지금도 비난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그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런다고 내가 위축되지는 않아요. 그랬다면 애초에 그렇게 소리날 일도 안하고 대충 바보같이 있다 나왔겠지. 난 그러고 싶진 않았고, 해야 할 일은 해야되는 거죠. 또 난 실제로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시끄러웠던 건 언론이 이미지를 그렇게 만든 측면도 있고. 물론 내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오만 방법을 동원해서 먹칠하려드니, 먹칠하려면 하라는 자세로 나갔던 거죠.”


쿨하게 말했지만 ‘국민배우’로 사랑받던 이미지 훼손이 적잖이 속상한 눈치였다. 사적으로 나눈 이야기가 일파만파 확대됐고, 일단 불이 붙고 나니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이 안 되고 잘한 일도 묻혀버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최장수 문화부 장관 기록을 세웠음에도 ‘잘한 일’이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가장 ‘잘한 일’이 뭐냐고 물으니, 컨디션 조절도 잊은 듯 열변을 토해냈다.


“우선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죠. 저작권 감시대상국 빨간 딱지를 내가 뗐고, 법개정도 선진국 수준으로 했어요. 그러느라 국회서 싸우다 엉뚱한 얘기 듣고. 법개정하면 국부만 유출한다고 난리였는데, 우리 걸 팔 생각을 않고 외국에 지불비용만 생각한 거죠. 이제 선진국과 대등하게 문화를 주고받게 됐잖아요.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될거라 누가 알았나요. 한류가 튼튼해지는 기초를 다져놨다고 봐요. 또 국립예술단체 예산을 100%씩 올리고, 국립현대무용단, 한글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만들었죠. 콘텐트 관련해서도 국책은행 글로벌 펀드 만들고 금융지원 법개선을 그때 다 해놔서 지금 많이 편해진 건데, 이런 얘기 해봐야 쓸데없지 뭐. 누가 알지도 못하는 얘기고.”


“공직은 연극에서 맡았던 한 역할 정도” 한참 열을 올리다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목을 가다듬으며 “오늘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걱정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배우의 얼굴 뒤로 마구 드리워지던 전직 장관의 그림자도 순간 자취를 감췄다. ‘두 얼굴의 사나이’가 따로 없었다.


‘난 누구인가?’라는 햄릿의 핵심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을 법 한데요.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 다하는 스타일이에요. 어떤 일을 할 때는 항상 그 일만 하죠. 행정은 내가 하지 않던 일이니 최선을 다하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 했고, 그런 생각할 시간도 없었어요.”


‘사느냐 죽느냐’는 고민도 해보셨겠죠. “예전에 ‘베니스의 상인’ 할 때를 절대 못 잊어요. 목이 쉬어서 말이 안 나와 공연을 완전히 망쳤거든. 도망갈 수도 없고…. 그때 정말 사느냐 죽느냐 할 정도로 자살하고 싶었죠. 그 후로 연극할 때는 정말 절제된 생활을 해요. 가장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오르기를 철칙으로 지키죠. 요번엔 기간이 기니까 끝까지 무사히 마치기 위해 피나는 노력 중이에요.”


공직 때는요. “그게 어찌보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시달린 거니까. 사실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죠. 고민은 많이 했지만 나는 주저앉자 보다는 싸워서 이기자는 쪽이거든요. 그러니 고민의 끝이 절망적이지 않죠. 뭔가 어렵거나 고민되면 정면으로 부딪치지 피하지는 않아요.”


그랬던 공직생활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저 한 연극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 정도로 생각해요. 장관해서 인생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생각도 안하고, 그저 주어진 역할을 진실하게 소화했을 뿐이죠. 그래서 지금도 지하철 타고, 스쿠터 타고, 아무데나 걸어 다니고, 오히려 훨씬 더 낮은 자세로 살고 있어요. 대단한 프라이드도 없고, 그저 공적인 일을 했던 사람이니 남에게 폐 안 끼치려면 행동을 조심해야 잖아요.”


한때는 ‘최고의 배우’로서 프라이드가 있었겠죠. “지금은 아니라고 봐야죠. 애초에 최고의 위치란 게 뭔가요. 그 당시 방송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던 건데, 스타의 개념이지 최고의 개념은 아니라 생각해요.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얘기랑 똑같은 거죠.”

청순한 열일곱 소녀에 빙의하는 윤석화의 연기도 관전포인트다.

병사 역 박정자가 굵직한 저음의 독백으로 막을 연다.


헌신하는 연극인으로 돌아갈 터 그렇다고 배우로서 그의 능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올해 초 연출가 이윤택도 ‘최고의 배우는 좌파건 우파건 무대에 서야한다’며 그를 게릴라소극장 무대에 세워 소극장 문화를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이윤택씨를 만났는데 별거 아니더라”며 흔쾌히 수락 의사를 밝혔다. 그 자신도 소극장을 운영하며 극장 문화에 대해 고민을 안고 있는 터다.


“연희단거리패처럼 집단 시스템이 아니고서야 소극장은 어차피 재정 문제 해결이 안되요. 유씨어터도 곧 형태를 바꿀 겁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니라 연습과 공연을 겸하는 스튜디오 공연을 하는 실험적인 공간을 구상 중이죠.”


그는 공직생활을 하며 순수예술 지원의 한계를 깨달았다며, 자신은 오직 배우정신만 갖고 다시 원초적 연극으로 돌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연극의 시작이 경건한 제의였던 만큼, 오락적이고 기술적인 요소를 빼고 순수한 배우 중심의 무대를 추구하겠다는 얘기다.


“초기엔 전기가 없으니 뻔한 대낮에 연극을 했거든요. 셰익스피어가 그래서 말이 많아요. 기술적 도움 없이 배우가 다 설명해야 하니까. 벌건 대낮에 별이 떴다고 믿게 하려면 얼마나 연기를 잘해야 하나요. 엄청 훈련이 필요하죠. 작년에 정선에서 대낮에 ‘홀스또메르’를 공연했는데 자신감을 얻었어요. 산골 마당이니 산의 울림도 있고, 훤한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집중해 보더군요. 그러니 배우가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요. 연극은 힘든 것이고 연극인들은 헌신할 수밖에 없지만, 헌신한다고 마냥 힘든 게 아니라 자부심도 느끼고 존경도 받으려면 사람들이 무대를 거울처럼 볼 수 있게 해야 하거든요. 나는 그런 역할로 돌아가기로 했고, 그러니 잘 지켜봐 주세요. 그렇게 하는지 안 하는지.”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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