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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병자호란 60년 뒤 한양 요새화 작전 펼친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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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년 한양으로 첫 시간여행을 다녀온 시간탐험대에게 새로운 공지가 떴습니다.
‘제3기 소중 시간탐험대 대원들은 모두 7월 3일 오전 8시 30분 사직단에서 모이시오!’ 두 번째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타임머신에 황급히 올라타 시간탐험대 2조 대원들의 뒤를 따라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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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세기 서울을 그린 가장 큰 도성도인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97호). 지도에 표시된 점선은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이 맡은 도성관리 구역이다. 1751년(영조 27)에 반포된 도성수비체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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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17세기 이후 작성된 이 법전에는 “도성문은 인정(人定)에 닫고 파루(罷漏)에 연다”고 나온다. 이를 통해 밤에는 성문을 닫아 통행을 금하고, 아침에는 성문을 열었음을 알 수 있다.


타임머신 안은 소란스러웠다. 시간탐험대 2조 대원들은 탑승 전부터 시간여행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었다. 특히 동갑내기 친구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임성민·김빛나라 대원은 시간여행 연도를 두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성민아, 어딜 것 같아?”

“1623년이 아닐까?”

“1623년이면? 인조반정? 근데 인조반정이랑 한양도성이란 무슨 상관이 있어?”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도성공사를 하러 온 군인들을 모아 훈련했거든.”

“난 도성보수공사가 크게 있었던 1422년.”

둘의 대화를 듣던 유수현 대원은 마음속으로 1422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왕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휘리리휘휘 띠리리띠띠. 요란한 소리가 멈추더니 안내판에 1.4.2.1.1.0.0.3 이라는 숫자가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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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자성석. 공사시기·책임자·감독자 등 성벽 축조와 관련된 사항이 각 구간별로 성돌에 새겨져 있다.


타임머신에서 내린 대원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주변은 온통 산과 들판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술상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술상 옆에는 매사냥을 이제 마친 듯, 사냥도구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한 남자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한양도성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큰 공사를 하면 백성의 원망을 듣겠지만, 잠깐의 수고로움이 없다면 어찌 오랫동안 편히 살 수 있겠느냐. 또 이로 생기는 괴로움은 내가 담당하고 주상에게는 편한 것만 남겨주는 것 또한 좋지 않겠는가.”

“도성은 집으로 말하면 울타리와 같은 것입니다. 금년에 벼농사가 조금 풍년이 들었으므로 도성보수공사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서둘러 진행하겠나이다. 태상왕 전하.”

태상왕? 순간, 이민정 대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태상왕이면 살아있는 전왕을 말하는데, 1421년이면… 세종임금 시절이고 그 전왕이면…. 아, 알았다!’ 이 대원은 옷에 달린 송신기를 통해 대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태종임금 이방원이야.’ 깊은 생각에 잠겼는지 미동도 하지 않던 유 대원 어깨를 정혜윤 대원이 살짝 치며 물었다. “아들에게 부담스러운 공사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 은근 멋지다. 그치?” 정 대원의 말에 유 대원은 맞장구쳤다. “세종이 능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태종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큰 공사에는 민심이 크게 요동쳤다. 태종은 도성 축조라는 큰 공사를 아들 세종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왕위를 물려줬으나 아직 권력이 남아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1422년 세종 4년, 태상왕 태종의 주도하에 한양도성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차원을 넘어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는 대대적인 공사였다. 한양도성을 처음 쌓았던 1364년보다 10만 명 정도 더 많은 32만2400명의 백성이 동원되었다. 공사는 철저한 구간별 책임제로 진행됐는데, 전체를 97개 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의 담당을 정해 공사가 끝난 후에도 책임지게 했다. 일종의 공사실명제였다.

공사 내내 태종은 민심에 신경 썼다. 동원하려는 백성의 수를 조절하고 부당한 동원이 없는지 살폈다. 또 평소에는 닫아두던 창의문과 숙정문을 열어 일하기 편하게 하고 혜민국 의원 60여 명과 중 300여 명에게 공사현장을 다니며 다치거나 병든 백성들을 돌보게 했다. 심지어 공사가 끝난 후에도 공사로 병들고 굶주린 사람을 찾아 진료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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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방위체계가 잡힌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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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신호를 받은 대원들은 차례로 타임머신에 올라탔다. 태종을 보고 와서인지 대원들 사이에서는 얼마 전 방영됐던 사극이 화제였다. “그 드라마에서 유아인이 맡았던 역이 이방원이었지?” 채지원 대원이 묻자 이혜민 대원이 말했다. “응.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태종은 권력에 눈이 멀어 형제를 죽인 잔인한 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개혁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둘의 대화를 듣던 지소윤 대원이 끼어들었다.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하여가로 묻자, 정몽주가 단심가로 답하는 장면이었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때, 안내판에 새로운 숫자 1.7.0.5.0.1.1.5가 떴다. 대원들이 서둘러 밖으로 나오자 임금과 대신들이 열띤 논쟁 중이었다.

“정축년 약조를 생각하시어 청나라에 자문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전하, 자문 보냈는데 만약 허락하지 않는다면 여태까지 돌을 떠내는 수고만 하고 공로가 없게 되니, 우의정의 말은 적당함을 지나친 듯합니다.”

“대신들의 생각은 알겠소. 하지만 지금은 정축년과는 정세가 다르오. 조선을 감시하던 칙사 행차도 뜸하지 않소. 하지만 내 대신들의 생각을 더 헤아려 보겠소.”

대신들 틈에서 이야기를 듣던 임 대원이 작은 목소리로 양승민 대원에게 물었다. “왜 우리나라 도성을 짓는데 청나라에 자문을 구하는 거야? 청나라 기술이 좋은가?” 양 대원은 씁쓸한 듯 말을 이었다. “병자호란 때문이야.”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준형 대원이 입을 열었다. “타임머신이 그때로 우릴 데려갔으면 좋겠어. 그 따위 조약 같은 것은 못하게 막을 거야.” 조우현 대원이 이 대원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타임머신에서 신속히 돌아오라는 소리가 울렸다. 타임머신에 올라탄 이 대원은 안내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새로운 숫자 1.6.3.7.0.1.3.0가 뜨자 이 대원은 소리쳤다. “병자호란 끝 무렵이야. 모두들 단단히 각오하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챙겨 나가자.”

대원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나왔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침통한 얼굴을 한 인조가 백마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성 안에는 신하들이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밖에는 후금의 사신 용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후금의 왕 태종의 말씀을 전하겠나이다. 지난날의 일을 말하려면 길다. 이제 용단을 내려 왔으니 매우 다행스럽고 기쁘다.”

“천은이 망극합니다.”

인조는 용골대의 안내에 따라 단에 앉았다. 그리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했다. 임금의 머리에는 피가 맺혔다. 그리고 책에서만 보던 삼전도 굴욕을 지켜보던 대원들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다.

1623년 후금(훗날 청)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고, 조선은 ‘명과 친하게 지내고 후금은 배척한다’는 친명배금 정책을 펼친다. 그 결과 후금은 1636년 12월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고, 인조는 침략 14일 만에 한양까지 밀고 들어온 후금을 피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지만, 세자빈 강씨와 원손 봉림대군, 인평대군을 대피시켰던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1637년 1월 후금의 11개의 요구가 담긴 조약에 승인하고 후금의 왕을 모신다는 굴욕적인 예를 하게 된다.

그런데 왜 타임머신은 숙종과 대신들이 도성공사문제로 고민하던 1705년 조정에서 이곳으로 안내했을까. 이유는 이때 맺은 조약에서 찾을 수 있다. 조약의 9번째 조문이 ‘조선은 앞으로 도성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라’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조선은 더 강해진 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조선과 청의 관계는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청이 패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숙종은 도성공사를 포기했을까. 아니다. 두 번의 전쟁으로 수도방위의 중요성을 안 숙종은 청의 간섭이 약해진 틈을 타 1704년 삼각산에 고유제를 지내고 틈틈이 공사해 1712년에 한양도성을 완성한다. 숙종은 세종 때와 다르게 백성들을 동원하지 않고 도성을 수비하는 직업군인 오군영에 공사를 맡긴다. 또 돌의 크기를 40~45㎝ 내외로 규격화해 더 견고하고 단단하게 쌓아 올린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을 쌓아 한양 밖 방어시설도 확충한다. 숙종의 한양도성공사는 한양을 요새화하는 공사였다.

타임머신 안은 조용했다. 처음과 달리 모두 말이 없었다. 타임머신이 움직이자 이 대원이 억울한 듯 말문을 열었다. “조금 일찍 우리를 데려다 줬으면 얼마나 좋아.” 속상한 마음을 알았는지 조 대원이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과거에 관여할 수 없어. 우리가 만약 미래를 알려준다면 그것은 미래가 되지 못할 거야.”

글=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사진=한양도성박물관
참고도서=조선왕조실록 공부가 되는 흐름, 한국사서울한양도성도록, 시간탐험대 2조=김빛나라(성남 장안초 5)·양승민(하남 미사강변중 1)·유수현(서울 동일초 5) 이민정(인천 청라초 4) 이준형(서울 금복초 6)·이혜민(서울 광남초 5)·임성민(성남 장안초 5)·정혜윤(고양 아람초 6)·조우현(서울 중원초 5)·지소윤(서울 광남초 5)·채지원(고양 정발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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