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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돈벌이 수단→신비롭고 똑똑한 친구 인식 바뀌며 고래 보호 활발해져

귀엽고 신비로우며 똑똑하다. ‘고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닐까요. 그런데 인간과 동물·자연의 관계를 연구하는 환경지리학자 최명애 박사는 “인류 역사에서 고래를 귀엽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고래잡이 포(gun)를 이용해 고래류를 잡는 근대적 의미의 상업포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300년에 걸쳐 인간은 열심히 고래를 잡아왔죠.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훈훈한 이야기도 있지만,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눈살을 찌푸리는 역사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고래와 인간이 함께 부대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바다괴물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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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돌고래 떼. 울산시 남구 장생포 앞바다에서 종종 발견된다.
2 한국계 귀신고래. 오호츠크해와 우리나라 동해안 그리고 일본 동부 태평양측을 따라 회유한다.
3 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 연안에서 참거두고래 한 무리가 수영을 하고 있다.
4 아름다운 ‘고래의 노래’를 부르기로 유명한 혹등고래.


정체를 모른 채 고래를 처음 맞닥뜨린 인간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책 『고래의 노래』에서 저자는 “고래는 공포의 대상이자 미지의 존재였다”고 그 당시를 짐작합니다. 지금이야 일부러 고래관광을 떠나고 해수면 위로 타이어 같은 고래의 몸 일부가 보이면 환호하지만, 고래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는 이런 모든 일이 공포였겠죠. 어마어마한 덩치에 물기둥을 뿜으며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바다괴물이라고 말입니다.

고래연구소 손호선 박사는 “바닷가에서 살던 인류는 문자가 발명되기 오래전부터 고래를 만났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뿐이라고요. 하지만 고래를 부르는 이름에서 옛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죠. 영어단어 Cetacea(고래류)는 그리스어 ketos를 라틴어로 번역한 cetus에서 유래했습니다. 손 박사는 “ketos는 바다괴물 또는 거대한 물고기를 뜻한다. 고래의 한자 鯨(고래 경) 역시 물고기(魚)와 큰 집(京)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졌다”고 설명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환경지리학을 전공한 최명애 박사는 인간이 고래와 접촉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한국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꼽습니다. 바위 위에 새겨진 그림을 암각화라고 하죠. 약 7000년에서 3500년 전 사이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와 호랑이, 사슴 같은 동물을 사냥하는 그림이 판판한 바위 위에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져 있습니다.

고래와의 만남을 글로 기록한 시대로 가볼까요. 484년 아일랜드에서는 어느 수도사가 버려진 섬에서 예배를 보다가 섬이 움직이는 바람에 그것이 고래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원나라가 고려에게 고래 기름을 구해오라는 『고려사』의 기록도 있습니다. 최 박사는 “당시 우리나라의 해양기술로 봐서는 포경이 아니라 좌초(stranding, 고래·물개 등 해양동물이 스스로 해안가로 올라와 죽음에 이르는 현상)한 고래 같다”고 설명합니다.

고래잡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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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살을 맞은 고래의 모습 등이 그려진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6 고래 스트랜딩을 묘사한 얀 산레담의 판화 ‘스트랜딩 알레고리’.


손 박사는 “약 10세기경 바스크족(이베리아 반도와 유럽의 경계인 피레네산맥 지역에 사는 민족)이 긴수염고래를 상업적으로 잡기 시작한 것이 15~16세기 유럽의 상업포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긴수염고래는 느리게 헤엄치고 작살을 맞으면 쉽게 수면 위로 떠올라, 인간에게 가장 괴롭힘을 많이 당한 고래로 꼽힙니다. 17세기 초반 주로 영국·네덜란드가 북극해와 캐나다 북극권을 오가며 본격적으로 상업포경을 시작했고, 미국이 가세해 남반구 바다를 누볐습니다.

서구 열강들이 상업포경에 열을 올린 이유는 고래 기름 때문입니다. 석유가 없던 당시 고래 기름은 공장의 기계를 돌리거나 등을 밝히는데 사용됐습니다. 미국에서는 포경선을 더 크게 만들어 배에서 고래 기름을 가공할 수 있게 아궁이를 두고 가마솥을 걸었다고 합니다. 1840년대에는 폭약 작살이 도입돼 고래를 잡는 게 더 쉬워집니다. 총을 쏘면 작살이 튀어나가 고래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죠. 상업포경이 과도해지자, 당연히 고래 수가 줄기 시작합니다. 16세기 중반부터 고래 개체수가 줄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고래가 잘 잡히지 않게 된 거죠.

1946년 노르웨이·영국·미국·소련·일본·네덜란드·아이슬란드 등 14개국 수산업 담당자가 미국 워싱턴에 모여 국제포경규제협약을 맺습니다.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시작인 셈이죠. 핵심은 ‘지속적으로 포경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어업 규제가 필요하다’입니다. IWC는 1960~80년대를 거치며 포경을 중단하자는 쪽으로 기울었고, 1986년 상업포경을 당분간 멈추기로 합의하죠.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인간이 고래 기름보다 더 유용한 ‘석유’를 19세기 들어 쓰기 시작한 이유도 있습니다.

고래 보호 캠페인의 시작

고래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입니다. 최 박사는 60년대를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자유, 사랑을 부르짖던 히피 문화의 시대다. 환경운동이 활발해지고 고래 보호 캠페인도 시작됐다”고 설명합니다. 300년간 남획(짐승·물고기 등을 마구 잡는 일)한 고래야말로 환경보존운동에 적합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죠.

큰 수조를 짓는 기술이 생겨 대형고래 중에 그나마 작은 범고래·돌고래를 수족관에 전시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수족관이 생기며 생태학자들은 고래의 생태를 가까이서 연구할 수 있게 됐죠. 돌고래가 영리하고 음파로 교신한다는 등의 논문이 나오게 많이 나온 배경입니다. 포경선에서 수족관으로 연구지가 옮겨진 겁니다.

연구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고래라는 동물의 신비로움이 부각된 겁니다. 여기에 TV프로그램도 한몫하죠. 한 가족과 어린이, 그리고 돌고래 플리퍼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TV프로그램 ‘플리퍼(Flipper)’는 돌고래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똑똑한지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죠. 1993년에는 영화 ‘프리윌리’가 전 세계에 흥행을 합니다. 한 소년의 도움으로 범고래가 수족관을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계기로 고래를 수족관에 가두면 안 된다는 캠페인이 생기고, 동물보호운동가들은 영화에 등장한 범고래 케이코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자고 주장하죠. 케이코는 1998년 고향 아이슬란드로 돌아가지만, 야생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2003년 12월 12일 노르웨이의 해안가에서 죽고 맙니다.

40년 넘게 이어진 포경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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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 고래로. 이곳 주변에는 50여 개의 고래고기 식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78년 IWC에 가입한 포경금지국입니다. 그럼 식당 주인들은 어디서 고기를 구해 판매할까요? 사람들은 혼획(특정 어류를 잡으려고 친 그물에 엉뚱한 종이 우연히 걸려 잡히는 것)으로 잡힌 고래들만 판매한다고 설명합니다. 정부 역시 이를 허가하고 있죠. 환경단체들은 이 부분에서 ‘관리의 허점’을 지적합니다.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대표는 “다른 물고기를 잡는 척 고래들이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치고 기다리는 어민들을 단속하지 않는다”며 “혼획 판단도 금속 탐지기로 작살이 박혔는지 정도만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말했죠. 또한 해경은 한 해 혼획 건수를 80회 정도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조 대표는 “판매 중인 고기의 양을 따지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 말해요. 실제로 그린피스는 2012년 보고서에서 ‘한국 식당에서 거래되는 고래고기 양은 연간 150톤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한 국가의 식문화를 존중할 것이냐, 개체 수 보존을 위해 포경을 금지할 것이냐. 이 논란은 ‘상업포경 일시정지안’이 처음 논의된 1972년 제1회 유엔인간환경회의 후부터 계속됐습니다. 같은 식문화를 가진 일본·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의 포경 허용 국가는 “연구를 위해서라도 포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죠. 미국·호주 등은 “생태 연구라는 미명 아래 고래를 마구 잡는다”며 반대합니다.

이밖에도 최근 우리나라엔 고래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장생포 고래체험관의 돌고래 폐사 은폐 논란, 돌고래 서식지인 제주 서귀포의 해군기지 건설 논란, 돌고래 학살로 유명한 일본 다이지 마을로부터의 쇼용 고래 수입 논란 등이죠. 이들 모두 ‘인간의 편익’과 ‘고래와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맞부딪히는 것들이에요. 이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선택으로 누군가 일방적인 희생을 치러야 했단 점은 잊어선 안 될 사실이죠. 논란의 현장에 모두 다녀왔다는 조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서도 “자연을 보전하기보단 이용해야 한단 목소리가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나요.
 

글=이세라 기자·이연경 인턴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국제자연보호연맹·국제포경위원회·세계자연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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